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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검사가 뛴다] 조재빈 부장검사 "비리 근절하려면 내부협조자 형벌 감면해줘야"

공범 협조 없인 범죄규명 한계

자발적 진술 땐 혜택보장 필요

인권침해도 적어 美·日 등 도입

특검·특임·특본 근무한 특수통

부정부패 '블루벨트' 인증 받아

조재빈 부장검사(법무연수원 교수)가 22일 경기도 용인 법무연수원 사무실에서 부정부패 사건 수사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권욱기자




“기업과 관련해 벌어지는 구조적 부정부패 사건에서 내부자의 진술은 비리의 핵심에 근접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특수 사건을 맡은 검사들이 관련자들의 마음을 얻고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범죄사실을 범죄가담자가 스스로 털어놓게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법협조자에 대한 감면제도 마련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내부자 결속이 강한 부정부패를 와해시켜 나가야 합니다.”

기업이나 정부기관 등 조직 차원의 부정부패 사건은 여러 직급의 내부자들이 연루돼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탓에 관련 서류나 기록과 같은 직접 증거를 확보하기 쉽지 않아 검찰 내에서도 힘든 수사로 여겨진다. 이 분야에서 검찰 내에 실력 좋기로 소문난 부장 검사가 있다. 21일 경기 용인 소재 법무연수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조재빈(49·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 겸 법무연수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조 부장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평검사로 시작해 연수원 동기 중 유일하게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부부장 검사와 부장 검사까지 지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구조적 부정부패’ 분야에서 지난 2016년 블루벨트(2급 공인전문검사) 인증을 받을 만큼 ‘잘 나가는 특수통’으로 통한다.



수많은 사건을 다뤄온 조 부장검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피조사자가 수사기관에 처음 범죄 사실에 관해 조사받으러 왔을 때, 진심으로 그들의 입장이 돼서 진술을 듣는 것이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난 2012년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에 있을 당시 맡았던 삼성물산의 재건축 조합 뇌물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삼성물산이 마포구 염리3구역 재개발 현장의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약 10억원의 돈을 조합에 전달한 사건이다.

조 부장은 “주택사업본부의 서부사업소장이 자금조달이 지시된 경위를 이야기 하지 않고 본인이 혼자 다 떠안으려고 하시더군요. 최대한 선처해 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또 진실을 밝힌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삼성물산의 변호인들에게도 사업소장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법인 차원에서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노력 끝에 사업소장은 사실을 털어놓았고 사건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었다. 사업소장은 나중에 조 부장검사에게 수사 과정에서 배려해줘 고맙다며 편지까지 보내왔다고 한다.

조 부장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도 피조사자들의 인생을 위해서도 진심으로 대하고 처지를 잘 살펴드리는 것은 필수적”이라며 “저로 인해 구속되거나 실형을 사신 분들이 편지를 보내시거나 만나러 오실 때 감사함을 느낀다”고 당시 사건을 이렇게 회상하며 미소 지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범죄를 밝혀내는 조 부장검사의 노력은 삼성물산 사건뿐만이 아니다. 대우건설·대림산업의 임직원들이 용역발주를 가장해 법인자금을 횡령한 사건에서부터 북아현 뉴타운 시공사 선정 대가를 지급하고 그 돈 중 일부가 구청장에게 전달된 사건이나 구청장이 직권을 남용하여 용산구 신계동 조합을 압박해 조합 아파트를 지인에게 분양하도록 한 사건, 마포구의회 의장선거를 앞두고 의원들 간에 금품이 수수된 사건 그리고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경영진의 납품비리 등 조 부장의 손에서 모두 진실이 낱낱이 밝혀졌다.



조 부장검사는 국내에 구조적 부정부패 사건이 여전히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얻는 이익이 범죄로 인한 불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불이익은 ‘적발될 확률’과 ‘형량’으로 치환할 수 있는데 수많은 사람이 가담하다 보니 개인 혼자 걸릴 확률이 낮고 형량도 높지 않아 조직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조직범죄 해결 대안으로 ‘사법협조자 형벌감면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형량은 양형기준법으로 정해져 있어 당장 높이기 위해선 논의가 필요한 만큼 자발적 범죄 자백을 이끌기 위한 감면제도를 도입해 우선 적발률부터 높이자는 논리다. 조 부장검사는 “뇌물·조직폭력·마약 등 구조적 범죄는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 크지만 내부 가담자의 협조 없이는 범죄 규명에 한계가 있다”며 “공범의 범행을 진술할 수 있도록 형사정책상의 혜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에 이어 최근에는 일본도 이 제도를 도입했다”며 “혜택을 제공하고 진술증거를 확보하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요소가 적다”고 강조했다.

감면제도에 따른 형벌 감면의 범위는 기여도에 따라 불기소처분(소추면제)·기소 후 공소취소·공소장 변경·약식명령 청구 등으로 정할 수 있다. 또 실효성 확보를 위해 법원의 판결 선고 시, 필요적·임의적으로 형을 감면되도록 하는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내부 가담자가 허위 진술을 하거나 허위 증거를 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 부장검사는 이 경우에 면책 효력을 상실하도록 하고 별도로 사법방해죄로 처벌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해 법무연수원 교수 부임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신임 검사들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 만큼 부정부패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 조직범죄 근절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프로필

△1970년 경남 출생 △1989년 진주동명고 졸업 △1993년 서울대 사법학과 졸업 △1997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과정 수료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 합격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 △2011년 듀크대학교 로스쿨 법학 석사 △2013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부부장검사 △2016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 부장검사 △2016년 구조적 부정부패 분야 블루벨트 인증 △2017년 대검찰청 검찰개혁추진단 △2018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총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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