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두달 모아 25만원짜리 한끼 즐겨…'오늘'이 맛있으면 된거죠"

[밀레니얼 신소비 지도]

<상> 급증하는 온리싱글데이족

미래 꿈꾸기 어려운 '7포 세대'

현재에 집중하는 소비행태 뚜렷

스시조 이용객 절반은 20~30대

젊은층 몰리자 주말 2부제 운영

시그니엘서울 '프로포즈 패키지'

150만원에도 예약건수 2배 증가

소소하게 화장품 사는 소확행서

준비된 '버닝소비' 새 트렌드로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20층, 국내 최고의 일식당으로 꼽히는 스시조. 5성 호텔 중에서도 클래식한 멋을 추구하는 호텔 내 일식당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셰프 앞 9개의 자리는 저녁 홀 가격이 최소 16만원에서 최고 29만5,000원. 사케라도 한 병 주문하면 2인에 100만원에 가까운 금액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높은 문턱에 나이가 지긋한 은발의 시니어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풍경이었다면 이제는 20대가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린다. 스시는 특히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셰프가 만들어 주는 즉시 바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카메라로 찍기 바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20층에 있는 ‘스시조’


인스타그램에 스시조를 인증하기 위한 ‘공식’도 등장했다. 가장 고가의 코스의 경우 완두콩수프, 생선회, 스테이크부터 마지막 모나카까지 찍어야 인증샷이 끝난다. 20대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 고객은 식사 도중 옷을 갈아입고 나타나기도 했다. 한 번의 방문이지만 사진 상에서는 두 번 방문한 격이 되기 때문이라는 귀띔이다.

오늘에 더 집중하는 20~30대 ‘온리싱글데이족(Only Single Day 族)’이 급증하고 있다. 7포(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포기)세대로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어려워지자 현재, 오늘에 ‘올인’하는 모습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양세정 상명대 교수는 “오늘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현상은 일종의 ‘탕진잼’, ‘버닝소비’가 확장된 형태”라며 “무리한 소비의 경우 단계단계 밟아가는 즐거움이 아닌 보다 자극적인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20~30대가 버닝소비에 보다 몰두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버닝소비는 희열감과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효과를 주지만 결국은 내일의 불투명함과 현실의 어려움이 복잡적인 함수로 나타난 함수이자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오늘을 위해 몇 달을 준비하는 ‘온리싱글데이족’ =중소기업에 일하는 이남호 씨는 8개월 간 프로포즈를 위해 매달 20만원씩을 저축했다. 3년을 만난 그의 여자친구의 소원은 서울 잠실에 있는 시그니엘서울에서 프로포즈를 받는 것. 시그니엘 호텔 프로포즈 패키지는 객실에 케이크, 꽃다발과 꽃 장식, 샴페인, 치즈플레이터, 디터 풀코스 등을 제공해 150만원으로 일상일대의 이벤트를 위해 8개월을 준비했다. 프로포즈 패키지의 주 고객층은 20~30대로 지난해 전년도 대비 예약 건수 2배 증가했다.

온리싱글데이족 변화에 가장 민감한 곳은 호텔과 백화점 등 유통업계다. 서울에서도 일식명가로 통하는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는 저녁 시간을 통으로 이용하다 최근 주말마다 5시 반부터 1부, 7시 반에 2부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층이 급증한데 따른 것이다. 실제로 스시조의 20~30대 방문객 비중은 2013년 5%, 2016년 35%, 2017년 50%, 2018년 55%로 급증하며 20~30대가 전체 고객의 절반을 넘어섰다. 웨스틴조선호텔 로비층에 통유리로 환구단 풍광을 즐기면서 호텔 소믈리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컨템포러리 와인앤다인 레스토랑인 나인스게이트, 2017년 리뉴얼 이후 전체 방문객 중 40% 가량이 20~30대 고객이다.

진미로 꼽히는 더 플라자 호텔 중식당 도원, 저녁세트의 가격은 1인 12만원부터 최고 25만원이다. 20~30대 이용률은 2017년 대비 지난해 30% 이상 늘었다. 더 플라자에서 진행한 미쉐린 셰프 초청 갈라디너도 1인당 비용이 40만원, 최고 50만원 정도하는 고가임에도 전체 이용 고객 중 40% 정도가 20~30대였다. 호텔선물 이용에서도 20~30대의 약진이 눈에 뛴다. 올해 2월 설 선물세트는 명품 굴비는 천일염과 인진쑥 분말가루로 염장한 최상급의 영광 법성포 굴비로 22만원부터 170만원까지로, 20~30대 비중은 지난해 추석 명절 선물세트 대비 15%정도 늘어났다.



지난달 2030세대를 타깃해 롯데백화점이 준비한 명품 패션쇼는 그야말로 성황을 이뤘다. 지암바리스타발리·보테가베네타·오프화이트·몽클레르·셀린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고객들은 쇼를 보면서 바로 구매리스트를 체크하기도 했다. 한 벌에 300만원을 호가하는 지암바리스타발리의 경우 30대 비중이 약 25% 정도를 차지한다.

◇왜 ‘오늘’인가…건국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일본사회학자 미우라 아츠시는 2006년 ‘하류사회’를 통해 일본사회에서 새로운 계층이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1차 베이비붐 세대인 ‘단괴세대’의 자녀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의 등장이다. 경제가 더디고 한계에 도달하면서 상승의욕을 꺾인 세대를 이렇게 칭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건국 이래 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있다. 열심히 살면 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만 보면 한 끼가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호텔과 레스토랑에 20~30대가 넘쳐나면서 윗세대들은 ‘요즘 젊은것들은 돈이 쉽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은 ‘오늘’을 위해 몇 달을 준비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스몰럭셔리’라는 흐름으로 명품자동차나 의류, 가방 외에 보다 접근하기 편한 식료품, 화장품 등 비교적 작은 제품에서 사치를 부리는 형태의 ‘소확행’이 유행이었다면 이런 경향이 순간, 오늘에 더 집중하면서 압축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처음으로 20~30대를 위한 명품패션쇼를 개최했다. 고객들이 모델을 바라보고 있다.


20~30대의 좌절감은 부모세대와는 또 다르다. 취업 자체가 쉽지 않은데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었던 부모세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정권이 지날수록 주택 마련 기간은 최대 3년 이상 늘어났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집권 당시(2008년~2013년 1월) 서울주택구입소요기간은 15.9년, 박근혜정부 13.6년, 문재인정부는 15.1년에서 최대 21년, 17.3년으로 늘었다. 20~30대 사이에선 ‘집은 사는 게 아니라 물려받는 것’이란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취업 자체가 어렵다 보니 ‘N포 도미노’는 취업부터 시작된다. 국가통계 포털에 따르면 10년 전 8% 수준이었던 청년 실업률은 최근 10%에 육박하는 추세다. 그나마 이는 통계상의 수치일 뿐 비정규직과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을 포함하면 체감 실업률은 40% 수준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현실이 각박하다 보니 현재, 지금, 오늘에 집중하는 것은 이들의 돌파구다. 큰 것을 꿈꾸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어쩌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란 시각도 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