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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한국당이 '독재타도·헌법수호' 외치는 이유?

패스트트랙을 날치기로 규정

집권여당 장기집권 야욕 주장

날치기 1단계 직권상정도 없어

법안통과 아닌 협상에 최장 330일

패스트트랙 지정의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경부선 투쟁’에 나선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일 오후 대구시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 대구시민이 심판합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정국이 좀처럼 출구를 못 찾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독재타도’‘헌법수호’를 외치며 정부여당을 연일 성토 중입니다. 한국당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선거법 만큼은 여야 합의로 개정하는 전통을 지켜왔다고 주장하며 전국 순회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말 대낮에 광화문 한 복판에서 독재타도를 외쳐도 잡혀가지 않는 ‘자유 대한민국’에서 제1야당이 생경한 ‘독재타도’를 외치며 극렬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날치기’입니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사보임 문제나 ‘전자 발의’ 등의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던 원인을 포함해 후폭풍이 더욱 강하게 몰아치는 배경은 한국당이 패스트트랙을 ‘날치기’라고보기 때문입니다. 집권 연장을 위해 선거법을 날치기했다니 독재가 떠오를 만도 합니다.

2016년 당시 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수정을 요구하는 필리버스터 마지막 주자로 나서 발언하고 발언을 끝낸 후 이상민 법사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날치기’의 절차를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게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입니다. 가장 가깝게 날치기가 행해진 2016년 테러방지법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2012년 도입된 국회 선진화법에는 날치기를 방지하기 위해 의장의 직권상정을 까다롭게 규정했습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에만 직권상정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정의화 의장은 이 규정을 테러방지법에 적용합니다. 야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이고 반인권적인 법안이라며 그해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국회 본회의장에서 릴레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이어갔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물리적 방해를 통해선 법안을 저지시킬 수 없자 야당이 꺼낸 고육지책이었습니다. 192시간의 연설. 다리가 풀려 본회의장 연단을 붙잡고 버티며 연설을 하는 가하면, 헌법을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법안 저지는 결국 실패해 3월2일 한국당의 전신 새누리당 단독으로 법안이 처리됐습니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지난 2005년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사학법 개정안 수정안을 한나라당의 육탄저지 속에 표결을 강행해 통과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당만 날치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합니다. 김원기 국회의장 역시 이를 직권상정했고, 참담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강행 처리하려는 여당과, 육탄저지하려는 야당이 맞서며 국회 본회의장은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난장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본회의장 입구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고 일부 여야 의원들은 목을 조르고 발로 밟는 말 그대로 육탄전이 벌어졌습니다. ‘몸싸움’은 날치기의 또 다른 절차입니다.

사실 날치기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계속됐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사사오입’과 박정희 정부의 유신헌법 개헌, 79년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제명안 등 헌정사에 역사적인 기점마다 날치기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직권상정 후에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여당과 이를 막아서는 야당은 늘 몸싸움을 벌였고, 흔히 이를 두고 ‘동물국회’라고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이를 막아보겠다고 만든 법이 국회선진화법입니다. 앞서 설명한 2016년 테러방지법에 맞서 필리버스터를 이어간 야당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멋진 실패였습니다. 그해 총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새누리당을 상대로 압승을 합니다.



국회의원 선거법 날치기 사실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8년 3월 8일 1면. 1988년 민정당은 소선거구제 부활을 골자로 하는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동아일보


한국당이 독재가 부활할 듯 반발하는 이번 패스트트랙 지정에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없었습니다. 물론 심각한 몸싸움이 있었으니 얼핏 날치기 같긴 합니다. 하지만 법안 통과가 아닌 패스트트랙 지정은 본회의 부의까지도 최장 330일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당을 향해 ‘이제 시작이다. 협상을 해보자’라고 하는 여야4당의 말이 빈말이 아닌 겁니다. 330일 동안 한국당까지 포함한 합의안을 도출한다면 패스트트랙 지정안 대신 합의안이 본회의에 올라갑니다. 끝내 한국당과 합의하지 못한 채 패스트트랙 지정안이 본회의에 부의될지라도 문희상 의장이 표결을 미루고 협상을 끝까지 주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날치기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첫 절차인 직권상정은 커녕 의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알 수 없는 겁니다. 심지어 여야가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다시 말해 패스트트랙은 법안통과가 아닌 법안을 협의 심사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몸싸움이 있었다고 날치기와 혼동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사족을 달자면 현재의 소선거구제 선거법은 1988년 분열된 야당의 지리멸렬 속에 한국당의 전신인 민정당이 본회의장에서 1분만에 처리했습니다. ‘독재타도·헌법수호’를 외칠 만큼의 날치기란 무엇인가. 정치권을 향한 질문입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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