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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변하지않으면 추락..살아온 과정 다 드러냈죠"

■ 원로화가 박서보 회고전 18일 개막

다양한 '묘법' 연작으로 명성

'회화 No.1' 28년만에 전시 등

시기별 작품 160여점 선봬

박서보




박서보


“변하지 않으면 추락합니다. 그러나 변한다면 그 또한 추락합니다. 내가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훗날 내 비석에 이 문구가 적힐 겁니다.”

삶의 끝을 바라보는 태도마저도 담담하고 당당했다. 한국 추상화단을 대표하는 원로화가 박서보(88·사진) 화백이다. 그는 1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하는 자신의 대규모 회고전에 앞서 열린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화백은 전시에 대해 “내가 숨겨두고 싶었던 것들, 내가 살아온 과정들을 다 드러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시작한 ‘묘법(描法)’ 연작으로 확고하면서도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었다.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는 그의 말은 ‘묘법’을 추구하되 그 안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 자신의 화업을 반영한다. 1960년대만 해도 그는 기존 가치관의 전복을 경험한 전후 세대로서 절규와 생존의 몸부림을 재료의 물성 그 자체로 드러낸 앵포르멜 작업에 몰두했다. 전시장에는 최초의 앵포르멜 작품으로 꼽히는 ‘회화 No.1’이 28년 만에 내걸렸다. 이 작품이 파괴의 장이라면 이후 계속된 ‘원형질’ 작품들에는 절망을 딛고 일어선 자의 살고자 하는 외침이 반영됐다. 파리 체류 이후 작가는 폭넓은 자극을 받아 다채로운 실험을 펼쳤고 지난 1969년 인류의 달 착륙을 계기로 스프레이의 원리가 무중력 상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에서 ‘분사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때까지의 작품이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려는 노력이었다면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작가는 그리지 않고 비워내기 위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어린 아들이 노트에 서툴게 글씨를 써보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낙서하듯 연필을 마구 휘갈기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유명한 ‘묘법’ 연작의 시작이다. 전시장에는 ‘묘법’의 초기 그림인 1967년작들이 선보였다. 연필로 수백 수천 번 거듭해 그은 ‘연필 긋기’가 촘촘히 모여 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박 화백은 “그림은 수신(修身)을 위한 수행 도구”라며 작업했다. 그는 ‘묘법’이라는 같은 제목 아래에서도 1960~1970년대 초기 연필긋기 묘법, 1980년대 이후의 중기 지그재그 묘법, 1996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밭고랑 같은 후기 묘법으로 안주하지 않았다.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것은 작가가 초심을 잃거나 변칙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박 화백은 “술은 오래 담가야 숙성되기에 나는 새 시리즈를 전시로 공개하기 전 4~5년 정도 숨어서 연구하고 선보인다”면서 “종종 남의 것을 눈 도둑질로 훔쳐가는 이들이 있지만 머지않아 추락하고 만다”고 말했다. 작가는 2000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의 반쪽을 쓸 수 없게 됐다.

단색화 이후 채색 작업을 전개하는 도중 뇌경색으로 몸의 반쪽을 쓸 수 없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조수를 쓰게 됐다. 고민도 더해졌다.

“그림이 수신이고 수행인데 이것을 어떻게 남을 통해 대리 체험하게 할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그때부터 그림은 ‘치유’가 목적인 것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런 생활을 십수 년 하다 보니 ‘내가 양식주의에 빠지겠구나’ 하고 덜컥 또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때 색의 실험이 시작됐어요.”

홍익대 교수를 정년퇴직하고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작가는 평생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 독자적인 세계 개척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뒤늦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세계 최정상 화랑인 화이트큐브·페로탕갤러리 등의 러브콜이 잇따랐다. 그의 해외 전시는 ‘완판’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300만원 짜리 100호가 안 팔리던 게 40년 만에 300배의 가격에 ‘솔드아웃’을 이뤘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최신작 2점까지 총 160여점을 시기별로 선보인다. 특히 최근작은 연필 묘법과 색채 시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화가의 몸은 늙었으나 정신은 여전히 패기로 넘쳤다. 그는 과거 한 미술사학자와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죽기 전에 내 그림이 1,000만달러를 넘게 된다. 두고 봐라.” 전시는 오는 9월1일까지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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