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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농사꾼→5급공무원…이동필 전 장관 "농촌살리는데 자리가 중요한가요"

■권구찬 선임기자의 어떻게 지내십니까

주 3일 공무원·4일 농사꾼 '투잡'

농촌희망모델 찾아 매주 현장으로

못다한 숙제 이제서야 하는 심정

정책 수요자-공급자 간격 좁히고

농촌문제 '국토 넓게 활용' 시각으로

총리실 주관 범 부처차원 대응해야

지난 2월 경북 상주시청 직원들이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것이 화제가 됐다. 인구 10만명이 무너진 데 대한 애도의 표시인 동시에 인구 회복의 계기로 삼자는 결의 다짐이었다. 저출산 ·고령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농촌이 있다. 학생이 줄어들어 문을 닫는 시골 초등학교가 늘어나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귀농·귀촌 인구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귀농 행렬에는 이동필(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포함돼 있다. 그는 2016년 9월 장관 퇴임식을 마친 지 하루 만에 고향인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내려왔다. 농사꾼이 된 이 전 장관은 올해부터 경북도청 농업정책과 소속 5급 공무원으로 인생 3모작을 시작했다. 그를 지난 13일 안동시 경북도청에서 만났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퇴임 후 농사를 짓다 올해부터 경북도청 소속 시간선택제 5급 사무관으로 변신했다. 이 전 장관은 “농촌 희망모델을 찾아 확산시키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안동=권구찬기자




“오랜만에 뵙네요.” 반갑게 맞이한 그와 악수를 나누자 굳은살이 손바닥 끝으로 전해져왔다. 거무튀튀한 손톱과 상처 난 손등은 영락없는 시골 농부다. 그의 공식 직함은 농촌살리기 정책 자문관. 2년 계약직으로 주 3일(월·화·금요일) 근무한다. 공무원 신분이지만 근무하지 않는 날에는 10여종의 농작물과 씨름하는 초보 농사꾼이다. 그는 “주말에 경운기가 고장 나 수리센터에 맡겼다”며 “뿌린 대로 거둔다지만 농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부터 귀농을 생각했는가.

△딱히 언제라고 할 것도 없다. 연구원(농촌경제연구원)과 공직 생활을 할 때부터 늘 생각했다. 고향에 모친이 계신다. 어머니와 함께 식사한다는 게 귀향할 때 세운 원칙이다. 원래는 퇴임식 날 오후 바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아내가 숨이라도 돌리자고 해서 다음 날 내려왔다(웃음).

-장관을 하다 사무관으로 ‘자진 강등’됐는데.

△어느 지인은 ‘채신머리없다’고 하더라. 자리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선조들도 벼슬을 내려놓고 낙향해서 후학을 가르치고 하지 않았나.

-정책 자문관을 맡게 된 계기가 있었나.

△이철우 경북지사가 시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방붕괴의 위기에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고향으로 돌아와 자리가 잡히면 지방소멸과 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만한 글을 쓰려고 했다. 우리 시대 모두의 문제다. 고령화·저출산의 압축판이 농촌이 아닌가. 나름 농업과 농촌을 연구하고 정책도 했지만 공직에 있을 때 못다 한 숙제를 하는 심정이다. 행복한 농촌을 만드는 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정책 자문관의 역할이 뭔가.

△월요일과 화요일은 도청에 출근해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개발·6차산업 등에 대해 자문한다. 금요일은 농촌 현장을 간다. 애로사항이 있으면 도청에 피드백도 한다. 다음달부터는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전문가와 공무원·주민 등이 참여하는 ‘월례 농촌살리기 현장포럼’을 열 계획이다.

-금요일 현장에 가면 주로 뭘 보는가.

△농촌살리기 관점에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청년의 창농 사례에 관심이 많다. 농촌의 미래는 청년들의 손에 달려 있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잡고 일정한 소득을 내 가족을 꾸리는 것이 무너지는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여러 성공모델을 많이 접했다. 연 매출이 10억원씩이나 되는 젊은 농가도 있다. 지자체와 농촌 마을의 유기적 협력 사례도 유심히 살핀다.



-장관 때와 비교해 농부인 지금, 농정이 달리 보일 텐데.

△공직에 있을 때는 정책 공급자였다. 지금은 수요자 입장이다 보니 같은 사안을 다르게 보게 된다. 농업관측을 예로 들겠다. 작물별 생산량과 수요 등을 해마다 예측하지만 막상 농사를 지으려다 보니 당장 논밭에 뭘 심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더라. 현장은 멀리 볼 여유가 없다. 농정이 멀리 넓게 보는 망원경이라면 농사는 현미경이다. 간격을 좁혀야 한다.

-지금 농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젊은 층이 빠져나가 발생하는 농촌붕괴다. 내 고향 마을만 해도 60~70대가 젊은 층에 속한다. 올해 동네 초등학교에 입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이 이미 경험한 지방붕괴·농촌붕괴가 눈앞이다. 도시의 과밀인구를 지방 농촌으로 분산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농촌 문제도 시각을 넓혀야 한다. 국토를 넓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도 농식품부 한 부처의 업무여서는 안 된다. 총리실이 주관해 범부처 차원에서 풀 사안이다.

-귀농·귀촌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성과를 내려면 좀 더 세밀해야 한다. 개방화 시대에 농촌이 살려면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담당할 역량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자체도 이제는 인재를 유치하는 개념이 요구된다. 오죽 답답하니 그럴까만은, 무턱대고 인구만 늘리겠다는 방식은 곤란하다. 세금으로 외부 용역을 주고 붕어빵식 농촌개발사업도 적지 않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농지 300평만 경작하면 누구든 이런저런 명목으로 지원금을 주는데 무차별적인 지원은 곤란하다. 농업의 자원도, 시장도 한정돼 있다.

-귀농 희망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창농에는 제법 돈이 든다. 그나마 돈이 적게 드는 것은 6차산업, 다시 말해 농산물 가공과 체험관광 등이다. 요즘에는 농촌마다 공동 가공시설도 있다. 시제품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팔아보고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게 중요하다. 농업 인턴 경험도 좋다. 농촌에 살면서 차츰 농사로 확대하는 것이 좋다. 어느 땅이 좋은지, 어떤 작물이 유망한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동네 사람들과의 인화와 소통도 중요하다. 투자한 뒤 마을 주민과의 화합이 안 되면 큰 낭패다. 덜컥 땅부터 사면 안 된다. 귀농 전에 농촌생활에 대한 준비와 생각을 잘 정리하고 와야 한다. /안동=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5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영남대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업경제학 석사· 미주리대 농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등을 거쳐 2013년 3월부터 2016년 9월까지 3년 6개월간 역대 최장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퇴임 후 귀향해 농사를 짓다 올해부터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 자문관(5급)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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