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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봉준호 "어리숙했던 영화광에 이런 날 올 줄은…마치 판타지 영화 같다"

■ 소심했던 소년 봉준호, 젊은 거장으로 우뚝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

독특한 상상력 불구 흥행 쓴맛

'살인의 추억'으로 반전 드라마 써

'괴물'로 천만 감독 타이틀 얻어

작가주의·대중성 절묘히 결합

끊임없는 진화 속 영화계 평정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폐막식 직후 포토콜 현장에서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UPI=연합뉴스




“저는 그저 12세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 트로피를 손으로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메르시!”

25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호명된 봉준호(50·사진) 감독은 무대에 올라 벅찬 감격에 휩싸인 듯 이렇게 말했다. 영화감독의 꿈을 품은 어린 소년이 50세의 나이에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는 폐막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지금 (이 순간이) 마치 판타지 영화 같다”고 얼떨떨해했다. 그러면서 “폐막식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귀국해서 돌팔매는 맞지 않겠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하녀’를 만든) 고(故) 김기영 감독님처럼 많은 위대한 분이 있다”며 선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작가주의·대중성 결합해 흥행감독 입증=봉 감독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인생 최고의 환희를 경험한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시상식에서 다른 상들을) 차례대로 발표하니 허들을 하나씩 넘는 느낌이었다”며 “뒤로 갈수록 마음은 흥분되는데 현실감은 점점 없어졌다”고 돌이켰다. 이어 “이런 이변은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나 벌어지는 현상 같아 약간 쑥스럽다”며 “이런 순간을 17년간 같이 작업해온 송강호 선배와 함께해 더욱 기쁘다”고 주체하기 힘든 감동을 드러냈다.

지금은 세계 영화계의 젊은 거장으로 우뚝 섰지만 그의 영화 인생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진흥위원회 소속 교육기관인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배운 봉 감독은 지난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독특한 상상력을 지녔으나 대중과 접선하는 연결 통로를 찾지 못해 흥행에서 쓴맛을 본 그는 불과 3년 만에 기적의 반전 드라마를 썼다. ‘플란다스의 개’처럼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살인의 추억’으로 단숨에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부상했다. 이 영화로 봉 감독은 데뷔작에서 보여준 사회비판 의식을 한층 심화한 것은 물론 500만 관객의 선택을 받으며 흥행 감독의 자질까지 입증했다. ‘살인의 추억’은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와 함께 작가주의와 대중성을 절묘한 황금 비율로 결합한 대표적인 ‘웰메이드 장르 영화’로 꼽힌다. 이후 개봉한 ‘괴물’은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쾌감 안에 날카로운 정치적 풍자를 담아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봉준호(오른쪽) 감독이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폐막 포토콜에서 존경을 표하듯 무릎을 꿇고 배우 송강호에게 상패를 건네고 있다. /칸=로이터연합뉴스


◇끊임없는 진화 속 세계 영화계 평정= 그는 할리우드의 투자를 받아 2013년 상영된 공상과학(SF) 영화 ‘설국열차’를 시작으로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7년에는 세계 영화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플랫폼으로 부상한 넷플릭스와 손잡고 ‘옥자’를 만들었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봉준호의 작품 목록은 미학적 완성도와 대중적 흡인력이 점점 더 효과적인 합류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며 “봉준호가 발휘할 수 있는 영화적 파워는 곧 한국 영화가 구사할 수 있는 힘의 최대치”라고 평가했다.

봉 감독이 이처럼 젊은 나이에 세계 영화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힘으로는 ‘예술가 가정’에서 성장한 배경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으로 유명한 고 박태원 작가다. 2017년 작고한 아버지 봉상균씨는 영남대 미대 교수, 한국디자이너협의회 이사장 등을 지낸 원로 디자이너였다. 누나 봉지희씨는 연성대 패션스타일리스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예술적 교양을 듬뿍 쌓으며 자란 봉 감독은 언제가 관객들과 만난 행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릴러 장르의 대가인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만 63세가 되던 해에 ‘싸이코’를 발표했어요. 저도 히치콕처럼 나이 환갑에 ‘싸이코’ 같은 걸작을 크랭크인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 현역 감독으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세월이 흐를수록 무뎌지는 대신 날카롭게 진화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발언이었다.

봉 감독은 이번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환갑을 한참 남겨둔 50세에 영화 경력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뒤에 숨은 그의 야심을 생각하면 인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영화 팬은 그의 작품 세계가 오늘의 축복과 경사를 디딤돌로 삼아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리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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