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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19> 정치인·관료 빠지고…관영매체·학계가 '中 입장 설파' 전면에

■ 격화하는 중국의 무역전쟁 여론전

"무역마찰, 美의 패권전쟁" "대미흑자는 악의없는 결과"

당국 백서 '가이드라인' 삼아 공세..의견 다르면 규제

美는 정치인·관료가 총대 메고 "불공정 관행 탓" 맹공

지난달 30일 미중 무역전쟁을 놓고 미국 폭스뉴스의 트리시 리건(왼쪽) 앵커와 중국 CGTN의 류신 앵커가 TV 생방송 토론을 진행하는 모습을 중국 베이징의 중국중앙방송(CCTV) 직원이 지켜보고 있다. CGTN은 중국 국무원 산하 국영방송사인 CCTV의 영어뉴스채널로, 류신 앵커의 토론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주장을 대변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양국이 펼치고 있는 여론전이 관심을 끈다. 자국 국민과 해외 여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무역전쟁의 패러다임을 규정하려는 양국의 여론전에 더 몰두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는 중국이다. 특징이 있다면 공산당 일당독재인 중국 체제의 특성상 주요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뒤로 빠지고 관영 매체들이나 연구원, 학자들이 전면에 나서 자국의 입장을 전파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대변하는 중국의 논리에 따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역전쟁은 기존 패권국인 미국이 새로운 도전국인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일으킨 ‘패권전쟁’이다. 여기에는 미국이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호주의자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한 제도나 관행을 문제 삼는 데 집중한다. 산업보조금 지급이나 지식재산권 침해, 강제적 기술이전 등이다. 중국과 달리 미국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총대를 메고 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투박한 공격 방식은 이것이 미국식 패권전쟁이라는 중국 측 주장 역시 부인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학계, 관영 매체가 당국 입장 전파의 첨병=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소(KIEP) 베이징사무소 세미나에서 만난 숭훙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부소장은 미중 무역전쟁을 “세력 교체과정에서의 조정”이라고 규정했다. 신구 세력 간의 패권전쟁 양상을 보이는 무역전쟁은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흥 세력인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과정에서 발발한 것으로 미국이 일방적으로 자국 국내법을 악용해 중국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이 패권을 행사한다’는 말은 중국 매체들도 즐겨 쓰는 표현이다. 한국 내 언론이나 외신들이 쓰는 무역전쟁(trade war)에 대한 중국 매체의 공식단어는 ‘무역마찰’이다. ‘기술전쟁’은 그대로 ‘기술전쟁’이라고 부른다. 기술전쟁이라는 표현이 패권 갈등을 좀 더 부각하는 표현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숭 부소장은 무역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가장 큰 불만인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1990년대 이후 글로벌 제조업 네트워크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국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세계의 공장’ 시스템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는 “미 달러화의 패권 지위가 확고해지면서 미국 제조업이 대규모 해외이전과 아웃소싱에 나섰고 그 공장들을 중국이 받은 것이 이후 상품무역에서 중국의 흑자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미 흑자 축적은 악의가 없는 당연한 결과였다는 의미다.

중국의 성장도 무시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숭 부소장은 “상대적 힘의 변화가 대국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과거 영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다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은 무역전쟁을 거치면서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고 숭 부소장은 자신했다. 중국이 비교우위를 잃은 산업의 해외 이전을 촉진하는 한편 첨단 분야에서 중국 산업의 발전을 강화해 수입대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장과 첨단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국의 제재를 받는 화웨이 등 기술기업들이 일시적 거래 중단과 단기적 조정에 따른 고통을 겪을 수 있겠지만 이는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불공정한 제도·관행의 시정에 대한 설명은 모호하다. 숭 부소장은 “미국이 중국 경제구조의 변화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며 “산업보조금 등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규범이 현재 없는 상태로 이러한 규범을 먼저 만들어야지 미국법을 적용해 다른 나라를 규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당국 발표가 전문가 논평의 ‘가이드라인’=이처럼 숭 부소장을 비롯한 대다수 중국 내 전문가들의 주장은 지난 2일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미 무역협상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백서의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중국 당국의 발표가 중국 내 무역협상 관련 전문가들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앞서 발표된 백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원인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으며 “트럼프 미 정부가 2017년 출범 이후 관세인상을 무기로 위협을 가해왔다”고 비판했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된 것도 미국이 이랬다저랬다 하며 대화에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백서에 담긴 주장이다. 숭 부소장이 무역전쟁 발발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 “다시 세계화가 조정을 받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의 원인을 대미 흑자를 내는 중국 등 다른 국가에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숭 부소장은 미국이 “미국 내에서 문제를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또 “미국이 무역마찰을 촉발한 뒤 중국은 어쩔 수 없이 대응에 나섰을 뿐 줄곧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며 “무역협상에서 대부분의 내용에 합의를 이뤘지만 미국이 공동 인식에 반하는 태도로 협상을 깨뜨렸다”고 지적했다.

백서가 나온 후 중국 매체들도 이를 근거로 대미 공세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백서는 양국 무역갈등의 맥락과 양국 협상의 기본 상황을 잘 설명했다”면서 “중국은 협상이 시작된 이래 정정당당하고 포용적이었다는 점과 모든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특히 산업보조금 지급 등 미국이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공격하는 대목의 경우 상당 부분 공산당 일당체제 유지와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중국 매체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중국이 ‘핵심이익’에 대해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반면 중국 정부의 공식 의견과 다른 생각은 규제 대상이다. 시진핑 정부 들어 매체 보도와 학계에 대한 통제가 심해졌는데 특히 미중 무역전쟁에서 다소 불리한 입장에 처한 중국 당국은 여론전에서 조그마한 이견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내에서 이미 주요 해외 언론들의 인터넷은 차단돼 있으며 한국 포털사이트인 다음도 막혀 있다. 최근에는 네이버도 접속이 잘 안 된다. 중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소식에 어두워지는 것은 국제여론과 단절된 이런 ‘우민화’에서 비롯된 결과다.



◇美는 정부가 대중 비판 강화…주류 언론과는 온도 차도=무역전쟁에 대한 미국 입장은 최근 나온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재무부의 공동성명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미중 무역협상을 패권국의 횡포로 규정한 중국의 백서에 대한 반박인 셈인데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제도·관행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공동성명에서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태도는 일관적이었지만 중국이 마지막에 합의를 번복했다”며 협상 결렬의 원인을 중국에 돌렸다. 미국과 중국은 중국의 불공정제도·관행이라고 주장해온 △산업보조금 지급 △기술이전 강제 △지식재산권 침해 △사이버 절도 △위안화 환율 조작 △서비스·농산물시장 개방 등을 논의해왔다는 것이다. 성명은 수십년간 이어진 이러한 중국의 불공정 제도와 관행 때문에 대중 무역적자가 고착화됐고 이것을 해소하려는 것이 무역전쟁의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4,192억달러(약 497조원)로 10년 전인 지난 2009년 2,269억달러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동성명은 또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앞서 WTO에서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문제 삼았고 동시에 중국의 행위에 따른 미국 산업의 손실을 상쇄하려고 관세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이 그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건설적으로 협력하지 않고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미국의 추가 관세가 되풀이됐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와 달리 주류 언론들은 무역전쟁이 패권 다툼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한 미국 내 경계심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기획기사에서 “지난 1년간 계속된 미중 무역전쟁은 향후 수십년간 이어질지도 모를 경제전쟁 초기에 일어난 소규모 전투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현재 글로벌 지배력과 위상·부를 놓고 싸우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중국이 앞서 1980년대 미국과 경제패권을 다툰 일본과 비교되는 가운데 사례가 다르다는 주장도 강하다. 차이는 중국의 규모다. 중국의 국토면적은 미국과 거의 같고 인구는 미국의 세 배가 넘는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미국의 5분의1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미 중국 경제력 비중이 미국의 65%를 차지한다는 것은 앞으로 중국 경제가 더 성장할 여지가 무궁하다는 의미다. 급성장하는 중국을 누르기 위해 불공정한 제도와 관행을 제재하는 방식으로 무역전쟁을 발동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 셈이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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