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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아이] "커리어 누수 막자"…'이쿠맨' 장려하는 日

■생산성 저하 日 '고용방식'도 유연화

인구 2055년 1억명 붕괴 전망에

출산율·생산가능인구 제고 사활

자민당 男육아휴직 의무화 추진

정부, 특정 지역·시간·업무 국한

'한정 정사원제' 확대도 팔걷어

男, 육아휴직 급여 67%만 보전

전체소득 줄어 생계 타격 불가피

'사이비 육아휴직' 우려 목소리도

"잔업 축소 등 업무환경부터 개선"





“아직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출세를 포기한 남자’라고 할 만큼 직장에서 (육아휴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지난 14일 국빈방문지인 스웨덴에서 현지 육아휴직자들과 만나 이 같은 한국의 조직문화를 꼬집었다. 육아를 둘러싼 고정관념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약을 받는 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지난해 육아휴직 사용 비율은 남성이 6%에 그친 반면 여성은 82%에 달했다. 회사에서는 임신하거나 육아에 힘쓰는 워킹맘에게 차별이나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이른바 ‘마타하라(maternity harassment)’가 비일비재하다. 전문직 여성이 결혼과 함께 가사와 육아로 내몰리고 이들의 커리어는 사장되는 현실. 생산인구 한 명이 아쉬운 일본에서 ‘여성의 능력을 다시 끄집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재점화되는 이유다.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파고 속에 ‘인재 손실에 따른 생산성 저하’를 막으려는 일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년연장 카드까지 꺼내 들며 ‘일하는 인구 확대’에 팔을 걷어붙인 아베 신조 정권은 최근 남성 육아휴직 확대와 한정 정사원제도 활성화 등을 추진하며 ‘유연한 고용방식’을 마련하는 한편 경력단절 여성과 노년층의 ‘커리어 활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일본 전체 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1990년대 초 70%에 육박했으나 지난해 59%로 떨어졌고 오는 2060년에는 50.9%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여성의 경력단절과 이에 따른 출산기피 현상은 일본 경제의 생산성 저하를 부추긴다.

이런 상황에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이 바로 ‘남성 직장인의 육아휴직 의무화’ 이른바 ‘이쿠맨’ 확대 문제다. ‘이쿠맨’이란 육아를 뜻하는 일본어 ‘이쿠지’와 남성을 나타내는 영어 ‘맨(man)’을 합성한 신조어로 ‘육아하는 남성’을 의미한다. 집권 자민당의 일부 의원들은 최근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모임을 발족하고 모든 남성 직원에게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커리어 누수 방지와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수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모임 참가자인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은 “남성의 육아 참가에 대한 의식을 개혁해야 한다”며 “조속히 법 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육아간호휴직법’에 따라 여성은 자녀 출산휴가 이후 최장 1년간(사정이 있을 경우 2년까지 연장 가능), 남성은 자녀 출산 이후 최장 1년간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10년에 ‘남성들의 육아 참여 확대’를 내걸고 ‘이쿠맨 프로젝트’에 돌입해 남성의 육아휴직 장려에 나섰다. 2008년 1.38%였던 남성 육아휴직 비율을 2020년 13%까지 올리고 출산 여성의 ‘계속 취업률’을 2005년 35%에서 2020년 55%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목표였다. 이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6%대까지 올라오기는 했지만 기업과 당사자들의 사용 기피로 진전은 더딘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극심한 일손 부족과 생산성 저하 속에 기업의 인식도 점차 변하는 분위기다. 일본 건설회사인 세키스이하우스는 지난해 9월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3세 미만 아이가 있을 때 1개월 이상 휴직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제도 대상자는 약 1,400명에 달한다. 일본생명보험 역시 남성 육아휴직의 선례를 만들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생명보험 남성 직원의 육아휴직 취득률은 6년 연속 100%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남자든 여자든 모두 육아휴직을 쓰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소득감소 우려를 비롯한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육아휴가 중인 남성에게는 고용보험에서 급여의 67%에 해당하는 보조금이 지급된다. 사회보험료 면제와 함께 기존 수익의 80%는 보장되는 셈이다. 그러나 전체 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휴직이 의무화될 경우 생계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나라가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징병제와 다를 게 뭐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잔업을 줄이는 근본적인 업무환경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남성이 육아휴직 중에 집에서 일하는 이른바 ‘사이비 육아휴직’이 판을 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아베 정부는 ‘한정 정사원제도’ 확대에도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정 정사원제도는 근무지역과 직무·시간에 한해 일을 하는 제도다. 특정 지역과 시간·업무에 국한해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신분을 보장하기 때문에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근무가 가능하다는 게 장점이다. 2005년 도입된 이 제도는 최근 일하는 방식 개혁과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육아나 간호 등에 따른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한정 정사원 확대’에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가족의 간호를 위해 전근 시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둬야 하거나 육아를 위해 일정 시간 외에는 근무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한정 정사원 제도는 좋은 선택지가 되고 있다. 최근 일본 규제개혁추진회의는 기업들이 한정 정사원에 대한 근로조건을 의무적으로 서면화하도록 하는 내용의 제안 보고서를 아베 총리에게 제출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한정 정사원 제도를 실시하는 기업의 비율은 20% 수준이다.

이런 노력의 기저에는 ‘인구감소’라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2007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일본 인구는 2055년에 마지노선인 1억명도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고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절박감이 남성 육아휴직, 한정 정사원 제도, 여성·고령자 커리어 활용 등 다양한 노동·근로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 같은 시도는 역시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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