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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장제 도입·직원 교차활용…'눈물의 편법' 내몰리는 中企

[주52시간 근무 시행 1년]

<하>'발등의 불' 300인 미만 사업장

"매출 주는데 추가 인력 불가능

문 닫을 판인데 뭔짓 못하나"

자의반 타의반 범법자 내몰려

'생산향상·납기준수' 장점 상실

집중근로 필요한 바이오도 쇼크





경기도 안성시에 자리한 건자재 생산업체 A사의 김대우(가명) 대표는 2일 서울경제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직원 7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김 대표는 내년 이후 어떻게 회사를 꾸릴지 걱정부터 앞선다. 김 대표는 “공정상 용광로를 활용하기 때문에 현재 2조 2교대제를 통해 24시간 대응하고 있지만 업무가 고되다 보니 이직자가 많고, 사람 구하기도 어렵다”면서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작되면 공장을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경상도에서 주물업체 B사를 운영하는 정인호(가명) 대표는 최근 상당수의 직원으로부터 퇴직금 중간정산 요구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둘 테니 미리 퇴직금을 준비하라는 통보였다. 정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로 대기업에서 주는 일감은 줄고 근무일이 적어진 탓에 실질소득이 감소하자 미리 퇴직금을 정산해놓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는 얘기”라면서 “근로시간 단축발(發) 이직 쓰나미는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웬만한 제조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문제”라며 답답해했다.

“매출 주는데 추가 인력 불가능

문 닫을 판인데 뭔짓 못하나”

자의반 타의반 범법자 내몰려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아직은 터지지 않은 ‘뇌관’이다. 상당수 중소기업 대표들은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공장을 멈출 수 없어 각종 편법을 사용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범법자로 내몰리고 있다.

경기도 파주의 출판단지에서 인쇄전문기업인 C사를 운영하는 최현중(가명) 대표는 올 초부터 동종업계 친한 지인의 회사 직원과 자사 직원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법망을 피하고 있다. 이 회사는 80여명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3교대로 바꾸고 생산직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공장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추가 인력 채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최 대표는 비슷한 처지의 D사에 정규직 인력 교차활용을 제안했고, 일부 직원들에게 비밀 보장을 위한 서약서에 사인을 받고 실행에 옮겼다. 해당 직원들은 C사에서 주 4일 정도만 근무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에는 D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방식으로, D사에서는 반대의 방식으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C사와 D사는 내년에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기존처럼 공장은 계속 돌리면서 법의 단속망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편법이 아니냐’는 기자의 지적에 최 대표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장을 돌릴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기존 인력으로는 근로시간을 맞출 수 없고, 그렇다고 사람을 더 뽑을 처지가 안 되니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업 쪼개기인 소사장제도 만연하고 있다. 경남 마산에 위치한 주물업체 F사는 얼마 전부터 조형 파트와 후처리 공정 등을 중심으로 별도 법인을 만들고 도급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기존에 파트를 책임지던 부장급 직원을 소사장으로 앉혀 개인사업체로 등록시켰다. 서현태(가명) 대표는 “일감이 몰리면서 후처리 인력이 갑자기 늘어났는데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까지 적용되면 회사 안에서 끌고 가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별도 법인으로 떼어낸 후) 필요할 때 일감을 주고, 별도 법인 입장에서도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 일감을 받으며 급여 수준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한 식품용 포장용기 제조업체 역시 현재 20여명 수준의 사업장을 예외업종 적용을 받을 수 있는 5인 미만 업체로 회사를 쪼개는 지입 사업을 검토 중이다. 또 다른 인쇄업체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공인노무사에게 해결방안을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누구도 해고할 수 없다면 추가 수당을 주거나 5인 미만 사업체로 쪼개는 수밖에 없다는 것뿐이었다”며 답답해했다.



이처럼 주 52시간 근로제는 중소기업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꿔놓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 시 가장 큰 애로 사항은 ‘가동률 저하로 인한 생산 차질과 납기 미준수(31.2%)’로 나타났다. 고용난을 겪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주문량이 갑자기 늘어날 때마다 초과 근로를 통해 해결해왔다. 이런 이유로 ‘가동률 상승으로 인한 생산 향상과 납기 준수’가 국내 중소기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로 꼽혔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동률 상승은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위협 요소가 됐다. 실제 최근 중기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 경영 애로 및 하반기 경영전략 조사’에서도 경영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사안으로 ‘근로시간 단축(38.4%)’이 ‘최저임금 급등(51.6%)’에 이어 지목됐다.

‘생산향상·납기준수’ 장점 상실

집중근로 필요한 바이오도 쇼크



정부가 새로운 동력으로 삼겠다는 바이오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 산업은 특성상 임상결과 공개나 기업공개(IPO) 등을 앞두고 최소 3개월 이상 집중근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52시간 근로라는 규정에 막혀 업무효율이 급속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견 제약사의 한 관계자는 “연구원들의 경우 평상시에는 정시 출근과 퇴근이 가능하지만 원하는 임상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제약영업을 진행하는 영업직들도 현장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과 내근을 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계량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들의 업무 시간을 통계화하고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바이오벤처기업 기업공개(IR) 담당자는 “글로벌 학회에서 임상 데이터 공개나 교수 섭외 등은 모두 지원 업무 부서에서 진행한다”며 “학회에서 중요한 임상 결과를 발표하거나 IPO를 앞두고 있을 때는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한다. 52시간 제도는 사실상 허울”이라고 꼬집었다.

패션업계에서는 그나마 국내 대부분 공장이 50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점이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6월부터 근로 단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50인 이상 업체의 경우 50인 미만으로 쪼갠 곳이 많고 아예 규모가 작을수록 도급제로 계약을 맺어 이 같은 규제를 피해 가는 곳이 많았다. 디자인패션업체를 운영하는 이수정(가명) 대표는 “50인 미만이라 당장 내년 1월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우리보다 규모가 큰 기업들도 혼란한 상황인데, 우리 같은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물리적 시간 투입과 디자인 결과물이 단순 비례하지 않는 산업 특성상 주 52시간제를 어떻게 정착시켜야 할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궁극적으로 노사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무법인에는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로부터 노무상담을 많이 받는다는 김대성 노무사는 “2004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이 줄었을 당시에는 기업 입장에서 인건비의 가중이 문제였다”며 “주 52시간 근로는 인건비 부담보다 기업의 인력 운용이 어렵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마땅한 해법은 없고,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원치 않아도 불법·편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 노무사는 “사업주가 휴게 시간을 임의로 늘린 뒤 계약서에 반영한 후 지키지 않거나 연장근로 시간을 부풀릴 수도 있다”며 “근로감독관이나 직원의 내부고발이 있기 전에는 이런 행위를 사실상 적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병태 KAIST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노동시장에 강요된 규제를 만들면 결국 기업들은 아웃소싱(쪼개기 등)과 같은 선제적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면서 “근로시간을 줄인다고 해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단순 논리로는 지금의 복잡한 산업 환경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짚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일본처럼 특별법을 제정해 세제지원, 인력양성, 규제 완화 등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양종곤·박홍용·변수연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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