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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잔혹한 무기 'AK47' 어떻게 자유·테러의 아이콘 됐나

[AK47]래리 커해너 지음, 이데아 펴냄

역사상 가장 잔혹한 무기 'AK'의 전기

살상력, 내구성, 가격, 편리성 등 추종 불허

1947년 개발 이래 현대사·전쟁사 바꿔

아프간 전쟁, 베트남전 등에서 결정적 역할

전세계 퍼지면서 학살, 테러 빈번

매년 25만명이 이 총으로 살해돼

강대국 침략 당한 3세계엔 해방의 상징





1941년 독일 나치 정권은 전격전을 내세워 소련으로 밀고 들어갔다. 대규모 공습과 장거리 포격으로 적의 방어망을 무력화시킨 뒤 기갑부대가 적 방어선의 한 지점에 구멍을 뚫으면 뒤따르는 보병부대가 무차별 기관단총 사격을 가해 적들을 궤멸시켰다. 나치는 그 해 9월말 모스크바 서남쪽 브랸스크 지역에 다다랐다. 당시 소련군 전차장 미하일 칼리시니코프는 동료들이 학살당하는 가운데 부서진 탱크 파편에 왼쪽 어깨를 관통당하고도 살아남았다. 이후 그는 조국과 자유를 위해 신형 무기 개발에 매달렸다. 그 결과물이 이후 현대사와 전쟁사를 바꾼 AK47 돌격소총의 탄생이다.

신간 ‘AK47’은 미국이 우주 시대의 무기 개발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고 강대국이 핵무기로 무장한 시대에도 여전히 지구상 가장 잔혹한 무기로 남아있는 한 소총에 대한 이야기다. AK47은 소련군의 공식 병기로 채택된 해인 1947년을 기려 ‘1947년형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의 약자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래리 커해너는 개발자인 칼라시니코프의 영욕과 AK를 둘러싼 기술적·전술적·정치적 일화, AK가 20세기 중반 이후 전세계의 군사·정치·사회는 물론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을 추적한다.

AK는 2차대전을 끝내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에 개발됐지만 역사를 바꿀 정도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2004년 잡지 ‘플레이보이’가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제품’에서 AK를 4위에 올려놓았을 정도다. 1분당 600발을 발사하는 살상력에다 내구성, 저렴한 가격, 편리성, 대량생산 능력 등의 측면에서 다른 총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작 이래 8,000만~1억정 정도가 유통된 이 명품 소총에 매년 25만명이 살해당하고 있다. 한 자루 가격이 쌀 때는 닭 한마리 가격인 10달러 정도에 거래돼 ‘치킨 건’이라 불린다. 이 총은 테러와 학살, 분쟁의 아이콘만은 아니다. 제3세계 독재 정권에 저항했던 게릴라에게는 해방과 혁명, 자유의 상징이기도 했다.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는 소모사 일가의 독재자들을 몰아낸 자유의 투사들을 기리기 위해 하늘로 AK를 치켜들고 서 있는 산디니스타 게릴라 동상이 세워져 있다.

책은 이 매혹적이면서도 잔혹한 무기의 전기를 풍부한 사례를 들어 추적해간다. 미국 영화로도 만들어진 ‘블랙호크 격추’ 사건의 경우 미 육군 레인저 부대는 소말리아 반군의 AK 앞에 18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미 국방부 장관은 사임했고 미군 전체가 소말리아에서 철수했다. 이 소총은 미군의 베트남 철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군의 M16는 흙먼지가 쌓이면 총알이 발사되지 않아 전투 중 수리하다 죽는 일이 빈번했다. 반면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AK는 진창에 1년간이나 방치돼 있다가도 정상 작동됐다.



AK에는 강대국간 패권전쟁에 휘둘린 제3세계의 비극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련군은 AK의 존재를 서방에 감추다가 냉전 시대가 극에 달했을 때 미국과 일종의 대리전 차원에서 사회주의권은 물론 비동맹국가들에게 설계도면을 무상으로 배포했다. 아프리카에서 군사 쿠데타가 빈번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1989년 찰스 테일러는 AK로 무장한 경비원, 트럭 운전사 등 어중이떠중이 반군 100명을 이끌고 라이베리아를 침략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구소련 붕괴 전후의 혼란을 틈타 AK 수백만정이 암시장을 거쳐 테러리스트, 은행털이범, 반군 등의 손에 들어갔다. AK에 힘입어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부족간 다툼은 피를 부르는 전쟁으로 발전했다. 100만여명이 살해된 르완다 종족학살이 대표적이다. AK 총구 앞에는 아군과 적군이 따로 없었다. CIA는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때 AK를 무자헤딘에 공급해 소련의 서진을 저지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자 AK는 알카에다의 손으로 넘어가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

그렇다면 불멸의 명작을 남긴 칼리시니코프의 운명은 어땠을까. 가난했던 그는 1990년 미국 방문 길에 만난 M16 발명가 유진 M. 스토너가 한 자루당 1달러 정도의 로열티를 받으며 떼부자가 돼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자본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AK 브랜드를 보드카, 티셔츠, 벤처 등의 기업에 팔았다. 사상 최악의 공격용 무기를 개발했다는 비판에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농부의 작업을 돕는 기계, 예컨대 잔디 깎는 기계를 발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신뢰성 높은 총기를 설계한 죄밖에 없습니다. 내 총이 사용되어선 안되는 경우에 사용되는 것을 보면 정말 슬프지만 설계자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들을 비판해야지요.”

그의 항변대로 시에라리온의 소년병들이 AK를 들고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게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눈먼 권력자들이나 강대국 탓이지, 무기 자체나 설계자의 잘못이랴. 다만 이 책을 읽다 보면 AK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싸늘한 금속 총구의 표면 위에 인간의 탐욕이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동시에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2만원. /최형욱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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