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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십니까] "이념 개입된 탈원전은 비과학적...최적의 에너지믹스 추구해야"

정근모 前 과학기술처 장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첨단 과학기술 외면해선 안돼

AI가 원전 안전 획기적 해결...수명 100년으로 늘 것

KAIST 만든 일 기억에 남아...원전 美 수출하는게 꿈

“대통령이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탈원전 선언을 해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정확한 과학기술 지식을 갖고 사실을 검토한 다음 잘못된 정책이면 좀 고친다고 해서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탈원전 같은 강한 단어 대신 ‘에너지믹스(energy mix)로 가겠다. 원자력발전은 경쟁력이 강하니 수출을 계속 지원하겠다’고 하고 빠져나가면 됩니다.” 국내 원자력계의 대부인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탈원전을 선언한 만큼 방향전환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면서도 잘못된 정책은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민들도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최적의 에너지믹스를 추구해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을 원자력과 과학기술 인재양성에 힘써왔다. 한국원자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전력 국제원자력대학원대 사무실에서 정 전 장관을 만났다. 그는 현재 원자력계의 세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 대학에서 국제자문위원장으로 있다.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지난 1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한미 원자력동맹을 체결하자고 나설 정도로 우리 원전의 경쟁력은 세계 최강”이라며 “탈원전정책을 에너지믹스로 전환하고 원전 수출을 위해 미국과 손을 잡으면 전망이 매우 밝다”고 강조했다./성형주기자




-여든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것 같다.

△한국 원자력발전의 수출을 위해 바쁘게 보낸다. 11년 전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할 때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당시 국내에서는 UAE의 원전사업 의향이나 성향도 파악하지 못하고 UAE 원전 수출의 노력을 폄하했다. 그러나 수출에 성공하자 온 국민이 기뻐하던 감격적인 추억이 되살아난다. 지금도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해 다시 한번 원전 수출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는 9월 중순에 세계에너지총회가 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면 세계 최고인 한국 원전 산업의 능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우리 원전 산업계 일꾼들을 국민 모두가 격려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한전의 순이익이 지난 2016년 12조원 흑자에서 지난해 1조여원 적자로 돌아섰는데.

△공기업인 한전은 정부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 전력요금이나 에너지믹스도 정부정책에 좌우된다. 저렴한 원자력 전기를 더 활용하면 국민 모두가 편안하게 전기를 쓸 수 있다. 지난 반세기의 한국 경제 발전도 원자력발전을 안전하게 확대한 과감한 정책에 근원이 있다. 천연자원이 극히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인적자원을 활용해 원자력발전을 하는 것을 많은 나라가 부러워해왔다. 지금이라도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의 장기발전을 위해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정책을 펴나가기를 당국에 건의한다.

-탈원전 반대 서명운동이 50만명을 돌파했다.

△현 정부가 탈원전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이 원자력발전의 내용과 우리 원전 수준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특히 젊은 세대가 원자력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지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무지(無知)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이고 발전하는 세계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외면이다. 원자력 수출에 나서보면 경쟁국의 팀들이 한국의 탈원전 얘기를 한다. 국내에 짓지 않으면서 해외에 짓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원자력을 40% 정도 쓰고 나머지는 다른 에너지를 쓰면 된다. 재생에너지도 단점이 있다. 환경파괴 문제가 있고 장기적인 유지관리가 어렵다. 최적의 에너지믹스가 에너지정책의 핵심이다. 이념적으로 탈원전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전 18개를 짓는다면서 예비심사를 했는데 한국이 1등, 미국이 꼴찌였고 중간에 중국·러시아 등이 있었다. 원전 수입을 표명한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은 적극적으로 한국 원전 산업계의 진출을 원하고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한미 원자력에너지 동맹체결’을 우리에게 제의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 영향력과 투자능력·안보기능을 제공하고 한국은 원전 설계 엔지니어링 능력과 원전 기자재 보급, 건설능력을 제공해 한미 합작으로 중국·러시아와의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비공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한미 원자력동맹을 통해 선진국들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깨끗한 전기를 공급해주는 21세기 산전국(産電國)이 될 수 있다. 미국 원전의 대부분이 거의 100년 가까이 돌려 설계수명을 초과했다. 우리 원전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이 꿈이다.

-원자력 60년을 돌아보면 어떠한지.

△1959년에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그해에 발족한 원자력원에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사회경험을 시작했다. 초대 원자력원장이었던 김법린 박사의 보좌역으로 귀한 현장공부를 했다. 그해 7월14일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최초의 원자로(Triga-MarkⅡ) 기공식에 참석해 기공 부삽을 뜨고 미래 한국의 발전을 멀리 바라보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과학기술 인재양성의 요람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설립하고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장으로서 한국 원전의 표준설계 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번 하면서 미래 한국의 우주개발 계획을 구상해 실천하고 핵융합연구능력을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고 한국표준원전을 산유국 UAE에 수출하는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올 하반기 한국과학기술원 2학년 학생 중 원자력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데.

△음악가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최고의 행복을 가질 수 있고, 미술가는 미술을 좋아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대작을 만들 수 있다. 정부정책이 어떻든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는 젊은이들이 세계를 이끄는 최고 과학기술자가 될 수 있다. 탈원전정책으로 자신감을 잃고 전공을 기피하는 학생들은 한국, 나아가 전 세계를 이끌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 잘못된 정부정책에 개의치 않고 자기의 선택을 믿고 원자력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에게는 놀라운 성공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확정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을 오는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했는데.



△에너지정책의 핵심은 적절한 에너지믹스를 현실성 있게 설정하는 것이다. 2015년 파리에너지협정에서 환경오염·기후변화를 야기하는 화석연료(석탄·석유·가스)의 사용을 억제하고 각국이 설정한 목표치를 이룰 수 있도록 대체에너지(재생에너지·원자력에너지 등) 비중을 늘리자고 국제 합의를 했다. 재생에너지의 장점과 단점을 면밀히 검토하고 기술경제성과 전주기 환경경제성을 검토해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에너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원자력발전 능력을 보유한 나라는 좋은 조건을 갖춰 무리 없이 조화롭고 장기적인 에너지정책을 펼 수 있다.

-해외 탈원전 움직임에 대해 평가한다면.

△국제원자력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30개국에서 100기가 넘는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고립된 수요시장을 가진 나라는 원전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독일과 같이 주위에 많은 발전국가와 송전선이 연결돼 있는 나라들도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높아지는 전력비용과 신뢰도 저하를 걱정한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고립된 전력 수요망을 갖고 있고 전력 수요 비중이 높다. 따라서 탈원전정책 때문에 야기되는 전력 공급 신뢰도나 전력가격 급등을 심각히 고려해 섣불리 탈원전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에너지정책 방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국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21세기의 초일류국가는 많은 나라들에 산전국, 즉 전기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바탕으로 어려운 나라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우수한 두뇌자원을 갖고 있어 환경오염을 극소화하는 전력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고 국제무대에서 제공하는 세계적인 에너지 정책을 채택해 이를 꾸준히 실천할 것을 제언한다.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 산업에 대해 말한다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AI)의 개발과 활용으로 진행된다. AI의 핵심은 많은 데이터를 창출하고 정리·활용하는 것이다. AI를 통한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이용방법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거의 완벽한 안전공학과 신뢰성공학을 발전시켜 원자력 안전 문제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다. AI는 의료계 대변혁에 이어 안전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를 통해 잘못된 에너지정책을 바른 방향으로 바꿀 것으로 확신한다. 원전의 수명도 현재 60년에서 100년으로 늘어날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류 문화생활을 위한 핵심 요소는 깨끗하고 안전하며 신뢰도 높은 에너지다. 이런 에너지를 공급하는 나라, 세계를 이끄는 에너지정책이 꼭 필요하다.

-원전의 폐기물 처리에 문제는 없나.

△원전에서는 핵연료를 사용하고 부수적으로 생성되는 방사성물질을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완전히 생활공간에서 분리시키면서, 또한 유용한 방사성물질을 확보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는 핵연료은행 개념 실현을 추진 중이다. 즉 원전의 연료로 쓸 수 있는 물질을 개발·축적·보급하고 발전 후 생성되는 핵물질을 받아 저장하면서 재활용을 준비하는 곳을 전 세계의 주요 핵연료 생산 국가에 설치해 인류의 에너지 수요 공급기능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저준위·중준위 폐기물은 자국에서 사람들의 접근만 막으면 일정 기간 후 일반폐기물이 되고 고준위는 핵연료은행에서 재처리를 통해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재처리 때 나오는 플루토늄을 통한 핵무기 생산도 방지할 수 있다. 이미 기초적인 과학적 지식이나 공학적 방법은 알고 있기 때문에 핵연료은행은 실천 가능하고 유용한 기관이 될 것이다. 핵폐기장이 아니라 핵연료은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전향적인 과학기술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의 올바른 정책이다.

-살아오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KAIST를 만든 것이다. KAIST가 없었다면 삼성전자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과학기술정책과정을 다녔을 때 ‘개발도상국을 어떻게 과학기술 국가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라는 졸업논문을 썼다. KAIST 설립 제안서인 셈이다. 미국 유학을 위해 나를 데려간 존 해나 미시간주립대 총장이 1969년 미국 국제개발처(AID) 청장으로 임명된 직후 그분에게 이 논문을 보여줬다. 청장이 적극 동의해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고 미국이 600만달러의 재정지원과 기술지원을 하면서 KAIST 설립이 현실화됐다. 당시 한국에서는 대학교가 많은데 왜 새로 만드느냐 등의 반대여론이 있었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hhoh@sedaily.com

He is…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1959년 서울대 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미국 유학 2년반 만인 23세 때 미시간주립대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 강단에 서면서 ‘꼬마 교수(boy professor)’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프린스턴대·매사추세츠공대(MIT)·뉴욕공대 등에서 강의하다 귀국해 KAIST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고 32세의 나이에 초대 부원장이 됐다. 이후 한국전력기술 사장을 맡아 한국형표준원전의 기술자립을 주도했다. 한국과학재단 이사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을 거쳐 과학기술처 장관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호서대·명지대 총장도 지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미국 공학한림원 외국인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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