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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정치]6·25 유엔군 참전의 날 그리고 개도국 외교

전쟁 이어 가난극복에도 도움 받았던 韓

도움 있어 도움 주는 외교할 수 있게 돼

개도국 외교, 韓이 주기만 하는 것 아냐

현재 외교환경 어렵지만 크고 넓게 봐야

이낙연(오른쪽 네번째) 총리와 주요 인사들이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1950년 여름부터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이름도 위치도 모르는 나라를 전쟁에서 구하기 위해 한국에 오셨습니다. 전선에서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부상자를 치료하고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살아남은 청년, 소년, 소녀들이 집과 공장을 다시 지으며 국가를 재건했습니다. 그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27일 오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이낙연 총리가 남긴 기념사 일부입니다. 이날 기념식에는 미국, 호주, 태국, 에티오피아 등 16개 참전국 국기가 6·25전쟁 당시 전투병 파병국과 의료지원국의 국내 도착순으로 입장하고, 마지막에 유엔기와 태극기가 들어왔습니다.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서 참전국 국기를 든 장병들이 줄 지어 서 있다./연합뉴스


‘받는 나라 → 주는 나라’…세계 유일 국가, 한국

일제에 35년 동안 수탈당한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1950년 6·25전쟁이 터졌습니다. 3년 후 포성이 그쳤지만 국토는 폐허가 됐습니다.

총탄을 피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겐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독한 가난과의 전쟁. 빈 밥그릇이 목숨을 위협했습니다.

세계 최빈국. 너무 가난한 나라라서 손을 내밀기 전에 먼저 도와주는 나라도 많았습니다. 50년 전인 1969년 국가 예산의 25%가 해외 원조로 채워졌습니다. 다른 나라 도움이 없었다면 가난 극복 프로젝트는 진행되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DAC는 ‘원조 선진국 클럽’이라고도 불립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공식적으로 지위가 바뀐 겁니다. 전 세계 유일 사례입니다.

이를 두고 많은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들이 꿈꿉니다. 한국처럼 되고 싶다고. 한국을 ‘롤 모델’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6·25전쟁 중 식량 배급 받는 피난민들./연합뉴스


조부모·부모 세대, 빚 갚는 ‘국민 외교관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통령과 총리가 정상 외교를 분담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투톱 외교입니다. 대통령이 핵심 관계국에 초점을 맞춘다면 총리는 개도국과 한국의 연결 고리 강화 등 대통령 외교의 빈틈을 메우는 데 주력합니다. 지난 13~21일 방글라데시·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타르 4개국 총리 순방도 상당 부분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총리는 순방 도중 ‘국민 외교관’을 여럿 만났습니다. 한국을 배우고 싶어하는 현지인들에 경험을 공유하는 한국 청년들 말입니다. 멋진 청년들입니다.

이 총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습니다.

“사람은 1인칭, 2인칭, 3인칭 세 종류가 있습니다. 1인칭은 나. 2인칭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 너, 당신. 3인칭은 나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1인칭에 대한 사랑은 누구나 합니다. 심지어 동물도 합니다. 2인칭에 대한 사랑도 대부분의 사람이 합니다. 하지만 3인칭에 대한 사랑, 나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사랑을 합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들의 ‘3인칭 사랑’도 마냥 관계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과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던 부모세대, 조부모 세대를 대신해서 국제사회에 빚을 갚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한국 청년들에게 도움받은 이들은 후일 또 다른 이에게 빚을 갚을 수도 있겠죠.

이낙연 총리가 지난 18일 키르기스스탄 순방 중 코이카와 서울시립대학 봉사단원들의 기초보건 및 한국어 교육 캠페인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올챙이 적 잊고 큰 소리, 상대국 들을까 부끄러워

이런 ‘국민 외교관’들의 뒤에 부끄러운 어른들이 서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개도국과의 관계를 하찮은 일 취급하고, 정쟁의 도구로 삼기도 합니다. “바쁜 데 그런 나라 왜 가냐” “총리 순방 취소하라”던 일부 미성숙한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상대국 국민들이 전해 들었을까 걱정될 정도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역사’는 일제 시대에만 국한된 게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엔 전쟁으로 모든 걸 잃었던 아픔의 시간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식이 굶어 죽어도 가슴 칠 힘조차 없었던 고통의 기억도 각인돼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 이만큼 살게 된 게 불과 수십 년 밖에 안됩니다. 가난했고, 그래서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과거, 그 역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입니다.



27일 오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6·25전쟁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연합뉴스


개도국 외교, 일방 아닌 상호 협력

하나 더. 이들 국가를 찾는다고 해서 우리가 그저 경제적, 인적 도움만 주는 건 아닙니다. 한국 역시 이들로부터 도움받을 일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방문한 타지키스탄은 차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과 관련해서 상호 지지해주기로 했습니다. 또 키르기스스탄은 불행한 역사가 남긴 고려인에 대한 관심을 약속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현재 고려인 1만7,000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표 대결을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언제 어떤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는 게 국제 사회 분위기입니다. 우리 국민이 해외여행이나 체류 중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소홀히 대한 어느 곳에 우리에게 필요한 천연자원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원빈곤국인 한국의 기업들은 계속 새 시장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한국 외교는 늘 어렵습니다. 이만큼 경제를 키웠고, 민주화를 이뤄냈지만 그래도 늘 사방에 난제가 가득합니다.

특히 요즘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면서 미·중·일·러 주요국 외교의 어려움이 큽니다. 그렇다고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를 외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6월 미국과 일대 결전을 벌이는 중에도 13일이나 외교 현장으로 나간 것 역시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어려울수록 멀리, 입체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외교적 혜안이 더 필요합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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