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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쉽지 않은 소재 국산화의 꿈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물량 확보' 빠진 日 보복 대책

정부, 기술개발 강조·기업탓만

국가간 협업이 일군 '반도체 신화'

현실왜곡하며 폄하해선 안돼

한일갈등 근원적 해결 노력을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일본과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린 일본의 행태는 무모하고 졸렬한 것이다. 동맹국의 급소를 노린 비열한 일본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정부의 결기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 경제를 지키는 일도 역사 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가 경제가 무너져 국민 생활이 어려워지면 역사 문제도 의미를 잃어버린다.

공급이 중단된 소재의 물량 확보 방안이 빠져버린 정부 대책에서는 절박함을 찾아볼 수 없다. 기술 개발과 금융·행정 지원은 케케묵은 관료주의적 대응이다.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시설·설비·인력을 갖추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눈앞에서 번지고 있는 큰불은 외면하고 불 끄는 기술을 서둘러 개발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 형국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쏟아붓는 정부 지원금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가 된다. 전문가가 빠진 컨트롤타워도 공허하다.

지난 한 달 동안 정부가 해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순도불화수소(에칭가스)의 세계적인 수급 상황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에칭가스라고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반도체의 종류에 따라 요구되는 것이 다르다. 일본이 공급을 중단한 초고순도 에칭가스의 세계 시장은 스텔라와 모리타가 독점하고 있다. 일본의 전략물자 관리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에칭가스 생산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에칭가스가 약방의 감초이기는 하지만 반도체의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놀라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세계 D램 시장의 72%를 생산하는 우리 기업이 소비하는 에칭가스는 연간 4만톤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독성과 부식성이 강한 에칭가스는 다루기도 어렵다.

대기업이 소재산업을 육성하지 않았고 과학기술계가 기술 개발을 소홀히 했다는 일부 정치인의 지적은 자신들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일 뿐이다. 일본과의 갈등은 소재 산업이 취약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자유무역 체제에서 국가 간 분업·협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함부로 폄하·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반도체 신화는 소재·부품 대신 반도체 생산 기술에 집중해서 이룩한 자랑스러운 성과다. 일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보다 일찍 시작했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오늘날 지리멸렬한 상태다. 그동안 소재·부품 산업에 ‘올인’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부품산업을 통해 우리 몫을 착취했다는 지적도 분업·협업의 실체를 무시한 가당치 않은 현실왜곡이다.

소재의 탈일본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소재를 국산화하겠다는 꿈은 환상이다. 소재를 국산화하면서 반도체는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놀라운 자가당착이다. 더욱이 자원빈국인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소재는 어차피 수입할 수밖에 없다.

모든 소재는 화학공장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극심하다. 환경부는 화평법·화관법을 앞세워 지난 3년 동안 25%나 몸집을 키웠다. 환경부의 엄격한 규제 속에서 소재산업 육성은 그림의 떡이다. 데이터센터의 고압선까지 거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12년 구미에서의 끔찍한 누출 사고를 기억하는 지자체들이 맹독성 불화수소 정제 시설을 반길 이유가 없다.

일본과의 갈등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빠진 것도 황당하다. 세계 최고의 원자력이 싸구려 중국산 태양광에 밀려나고 세계적인 업적을 쌓은 과학자들이 검찰을 드나들고 장관 후보자도 내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과학기술계의 비참한 현실이다. 국정에서 완전히 밀려나 관료들의 관리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과학기술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일본과의 갈등은 소재·부품의 탈일본이라는 장기적인 대증요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갈등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노력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와 정치·경제가 별개라는 고집은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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