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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관점]뛰는 WADA에 나는 선수...약물은 기본, 뇌 자극·유전자 변형까지

<진화하는 도핑 세계>

"특정 근육 더 발달하도록" 유전자 도핑 연구 이미 진행중

기술력 뛰어난 선진국 선수들엔 도핑 검사·규제 무용지물

불법 스테로이드제·호르몬 주사 등 유소년 스포츠도 오염

두뇌 도핑 등 새형태까지 포함 반도핑시스템 전면 개선해야





최근 막을 내린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 남자 계영 800m 예선에서 지난해 도핑논란을 빚었던 중국 쑨양 선수가 악수를 요청하자 브라질 주앙 드 루카 선수가 거절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지난달 말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선수는 6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딴 미국의 케일럽 드레슬 선수지만 최고의 이슈메이커는 중국의 쑨양 선수라는 데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쑨양은 지난 2014년 도핑 검사에서 금지약물인 트리메타지딘에 양성 반응을 보인 전력이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자신의 도핑 검사용 혈액 샘플을 망치로 깨뜨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검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이에 대해 “검사 절차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며 쑨양에 대해 가벼운 경고 처분 징계만 내렸다. WADA는 이에 반발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쑨양은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쑨양 앞에는 항상 ‘도핑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이번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는 함께 수영한 선수가 그와 같은 시상대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그의 악수 요청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도핑은 경기 성적을 올리기 위해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을 뜻한다. 선수 건강을 해치고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나쁜 행위다. 스포츠에서 공정성(fairness)은 가장 큰 덕목이다. 공정성이 없다면 스포츠는 존재할 수가 없으며 이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도핑은 금지된다. 이번 쑨양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체로 쑨양은 불의의 편에, 쑨양과 불화한 다른 선수는 정의의 편에 두는 이유다.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 한 꺼풀만 벗겨 들어가 보면 선과 악으로 확실하게 구분하기 힘든 요소가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역도 종목에 출전한 김민재 선수는 당시 8위를 기록했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김 선수보다 기록이 좋은 7명의 선수 가운데 1위를 비롯한 무려 6명의 선수가 모두 도핑 검사에 걸렸기 때문이다. 김 선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다른 선수들이 너무 쉽게 들어 올리니까 혼잣말로 약 먹었나 했다. 근데 진짜 약을 먹었을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때는”이라고 말했다.

국제적 도핑 감시기구인 WADA가 세워진 것은 1999년으로 이때부터 도핑 검사가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런던 올림픽에서조차 이렇게 많은 선수가 약물을 복용할 정도면 그전 올림픽에서는 도대체 약물 사용이 얼마나 흔했을까. WADA가 생기기 전 스포츠 세계는 그야말로 약물 천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핑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조차 희미한 시절이었다. 1980년대가 돼서야 미국에서 비로소 도핑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할 정도였다. 그나마 도핑 기사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자제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도핑으로 자기 능력 이상의 기록을 내거나 남을 이기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일인데 이를 드러내는 기사를 쓰면 해당 선수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WADA가 생겼는데도 도핑은 여전했다. WADA는 매번 금지약물을 지정하고 리스트를 작성했지만 뛰는 WADA 위에 나는 선수가 있었다. 선수들은 WADA의 금지약물을 복용해도 검사에서 걸리지 않는 방법을 항상 찾아냈고 이에 더해 WADA 리스트에 없는 새로운 약물을 복용해 도핑 검사를 피해 나갔다. 도핑 검사가 도핑 기술이 뛰어난 선진국 선수들에게는 무용지물이 되는 반면 도핑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만 규제로 작용한 것이다.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는 “WADA의 역할을 보면 도핑을 못하게 하는 반도핑이 역설적으로 스포츠의 필수 요소인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도핑 검사라는 게 능력 있는 선수는 빠져나가고 그렇지 못한 선수만 걸리는 잘못 만든 그물망”이라며 “결과적으로 선진국이 자기는 충분히 활용하고서는 뒤따라오는 나라는 못하게 막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도핑으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선수는 아마도 미국의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이다. ‘사상 최고의 사이클 선수’ ‘고환암을 이겨낸 감동의 인간승리’ ‘투르 드 프랑스 7연패 대기록’ 등 그에 대한 모든 찬사는 그가 도핑을 인정한 순간 사라졌다. 그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무려 500번에 가까운 도핑 검사를 아무 일 없이 통과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가 도핑 검사를 무력화한 방법은 다양하다. 처음에는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이라는 혈액증폭 호르몬제를 사용했다. 이 신종 호르몬제는 당시만 해도 금지약물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다. 이 호르몬제가 금지약물 리스트에 포함될 것 같자 나중에는 그때까지 누구도 쓴 적이 없는 신묘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세계 최고 권위의 도로 사이클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기 한 달 전 혈액을 뽑아 냉장 보관했다가 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다시 주입했다. 이렇게 하면 혈액 내 적혈구가 증가하면서 산소 흡수력과 힘이 급격히 향상된다. 이런 방법이 경기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WADA가 이를 금지하고 도핑 검사를 통해 이를 적발해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도핑 검사를 하면 할수록 선수를 차별하는 결과만 낳을 뿐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암스트롱의 예에서 보듯 도핑은 어느덧 단순히 금지약물 복용 수준을 넘어선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공식 등장한 전신 수영복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제 기술 도핑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수영복은 상어 비늘의 원리를 적용해 물의 저항은 줄이고 부력은 높이도록 만들어졌다. 전신 수영복이 처음 나왔을 때 FINA는 반대했다. 이유가 기술 도핑이 아니라 미관상이라는 게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논란 끝에 FINA는 전신 수영복의 착용을 허용했고 그 결과는 대단했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수영 종목에 걸린 금메달은 모두 33개. 이 가운데 83%인 28개의 금메달이 전신 수영복을 착용한 선수들의 목에 걸렸다. 수영 경쟁이 아니라 장비 경쟁이 아니냐는 비난이 줄을 잇자 FINA는 2010년 전신 수영복을 금지했다. 수영복 재질은 직물로 한정하고 남자 선수는 허리부터 무릎까지, 여자 선수는 어깨부터 무릎까지로 수영복의 면적도 제한했다. 전신 수영복 금지에 대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비로소 수영복이 아니라 수영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됐다”고 찬성했지만 과민반응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후 기록은 어땠을까. 세계신기록은 전신 수영복이 허용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26개, 이듬해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3개가 나온 반면 전신 수영복이 금지된 2011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작 2개였다.

올해 윔블던 테니스 대회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루마니아의 시모나 할레프는 과거 가슴 축소 수술을 받았다. “가슴 무게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기가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수술 뒤 그의 세계 랭킹이 가파르게 오르자 사람들은 수술을 입에 올렸다. 치료나 미용이 아니라 경기력 향상을 위해 수술하는 것은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것과 같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른바 수술 도핑(surgical doping) 논란이다.

도핑 검사에서 걸릴 확률이 가장 낮은 도핑은 아마도 두뇌 도핑(brain doping)이다. 두뇌 도핑은 뇌의 특정 부분에 전기자극을 가해 운동능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두뇌 도핑에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내놓은 “선수들이 전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할 때도 뇌는 과부하를 막기 위해 힘의 여유분을 남긴다”는 논리가 적용됐다. 약물을 복용하면 흔적이 남지만 두뇌 도핑은 단순히 뇌를 자극하는 것이어서 이를 적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최근에는 특정 근육이 남들보다 더 발달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하는 유전자 도핑 연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면 스포츠는 인간이 아니라 초인이나 사이보그의 경쟁으로 변질되는 셈이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도핑 방법이 있고 선수들은 주위에 손만 내밀면 바로 도핑을 통해 경기력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선수들은 “그래도 도핑은 나쁜 것이니까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과거 미국의 한 잡지가 ‘특정 알약을 먹으면 반드시 금메달을 딴다. 그러나 7년 뒤 부작용으로 죽는다. 당신은 이 약을 먹겠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응답자의 80%는 “먹겠다”고 답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지도자가 대학 진학이나 프로야구 입단을 원하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불법 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 등을 주사하거나 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소년 선수 7명 가운데 2명은 양성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5명은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유소년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은 선수나 학부모가 잘 몰라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도핑이 이제 유소년 스포츠에까지 스며들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도핑은 이처럼 세상에 만연해 있고 유혹의 강도도 엄청나다. 아이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도핑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의 반도핑 시스템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반도핑 정책은 WADA를 중심으로 추진하는데 두뇌 도핑 등 다른 도핑에 대한 대책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공정한 스포츠 경쟁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유 교수는 “현재의 반도핑 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기술적 우위에 있는 국가들에 면죄부만 주고 결국 ‘도핑 제국주의’가 판을 칠 것”이라며 “도핑의 개념을 단순한 약물 복용에서 두뇌 도핑 등 새로운 형태까지 포함해 새로 규정하고 이에 맞춘 반도핑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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