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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뺨 맞은 정부, 기업에 분풀이하나

이현호 사회부 차장

이현호 차장




조선시대 종로에 있던 시전(市廛)은 궁궐에 물건을 판매할 정도로 상인들의 위세가 대단했다. 당시 사람들은 시전 상인과 흥정을 벌이다 봉변을 당해도 아무 말을 못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한강 나루터의 난전 상인에게는 흥정할 때 큰소리를 치고 화도 냈다고 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어떤 일을 당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위세에 눌려 말 한마디 못하고 엉뚱한 곳에 가서 화풀이한다는 뜻이다.

한국과 16년에 걸쳐 악연을 맺고 있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LoneStar)로 인해 이 속담과 유사한 모습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7년간 끌어왔던 5조3,000억원대 투자자국가소송(ISD)의 선고가 이르면 다음달이나 오는 10월께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데서 촉발된 금융권의 관측이다.

지난 5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되팔고 나가면서 하나금융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낸 소송에서 완패했다. 정부는 이 소송에서 론스타 측 주장이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정부에 유리한 정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ICC가 판정문에서 정부 측 (가격 인하) 압력이 있었다고 시사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정부가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ICC와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진 ISD 재판부가 정부 압력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판결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정부가 맞대응할 상대로 론스타가 아닌 하나은행을 타깃으로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검토하는 대응 카드는 구상권 행사로 알려졌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하나은행이 부담해야 할 몫을 정부가 대신 변제해 재산상 이익을 얻은 만큼 이를 상환하도록 하겠다는 방안이다. 또 다른 미국계 펀드회사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8,7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역시 ISD에 중재 의향서를 제출한 것도 검토 대상에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간 만큼 구상권 청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논리에 따라 매물을 사들이고 합병을 시도한 기업들로서는 1차 대상이 된다면 억울할 수 있다.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안겨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치인·관료들과 매각 승인을 미룬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정치인·정책 당국자들에게 가장 먼저 그 무거움 책임을 물어야 타당한 이치다. 사실 론스타 소송은 시장경제 원칙과 국제 상거래 규범을 경시해 정부가 초래한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거대 외국계 투기자본 앞에서 나약한 채 기업을 희생양 삼으려는 정부의 행태는 속담을 답습하는 것으로 비쳐져 국민에게 씁쓸함만 안겨줄 뿐이다.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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