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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카루나] 主·客·지역공동체가 함께 채워가는 '여백같은 건물'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카루나(Karuna)’ 전경. 콘크리트의 수수한 색감을 그대로 유지해 주변의 자연경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사진제공=텍스처 온 텍스처




강원도 양양군. 이곳은 바다와 접한 면에 작은 해수욕장이 펼쳐진 소도시다. 그 바닷가 한편에는 콘크리트 특유의 거친 질감과 색상이 살아 있는 건물이 한 채 서 있다. 형형색색의 상가, 그리고 숙박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수수한 외형이지만 주변의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고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풍경 속에 녹아들어 오히려 더욱 세련돼 보였다. ‘카루나(Karuna)’로 이름이 지어진 주상복합 건물이 그 주인공이다.

카루나는 ‘자비’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다. 건축주인 김소영씨는 이 건물이 도시생활에 지친 자신에게 베푸는 카루나(자비)가 되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김씨가 제시한 카루나의 콘셉트는 ‘치유와 여백’이었다. 자신에게 치유를 주고, 또 그것을 넘어 숙박객·지역주민들에게까지 힐링이 될 수 있는 건물을 요구했다. 또 자연풍경과 지역의 공동체를 해치지 않는 ‘여백’ 같은 건물을 원한다고 말했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끝없는 소통, 그리고 개방적인 군청의 태도 덕에 카루나는 김씨뿐 아니라 외지에서 오는 숙박객에게 일상생활에서 오는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자 지역과 풍경에 녹아든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카루나 건물 1층에 위치한 오픈형 테라스./사진제공=텍스처 온 텍스처


■공공·사적영역 공존 ‘하이브리드 건축물’

1층엔 지역주민 배려한 열린 통로와 쉼터

게스트하우스·가정집과 입체적 구성 돋보여

카루나 1층에는 긴 공공복도와 더불어마당·공용주방·카페 등이 위치한다. 2~3층은 숙박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4~5층에는 건축주의 가정집이 위치한다. 작은 건물이지만 지면에는 골목·공용테라스와 같은 공공성이 강한 공간이 존재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개인의 사적 영역이 있는 입체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공공성을 강조해 철저하게 열린 공간으로 설계된 1층은 외부에서 거리낌 없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계획됐다. 마을에서 건물을 바라봤을 때 복도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이 공간이 통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1층의 주방과 카페에는 통유리를 사용해 개방감을 극대화했다. 반면 건축주가 거주하는 4층과 5층의 경우 철저히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강조한 사적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달과 파도를 좋아한다는 건축주를 위해 5층은 앞뒤로 통 베란다를 배치, 각각 산과 바다를 열린 뷰로 볼 수 있게 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면 약간 기묘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내에서는 주변 풍경을 담아낼 수 있는 최적의 구조라는 것이 건축주의 설명이다.

카루나의 내부 인테리어는 무채색의 도장과 노출 콘크리트가 주를 이룬다. 빛과 시선, 그리고 풍경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뺀 결과다. 재료가 주는 거침과 황량함은 공간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자연의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여백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카루나’의 공공복도. 복도 저편으로 바다가 보인다./사진제공=텍스처 온 텍스처




카루나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필로티 형식으로 이뤄진 50m 길이의 열린 통로다. 이 통로를 통해 주민들은 마을에서 해안가로 가로질러 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당과 테라스·쉼터 등 건물 1층의 대부분을 개방했다. 많은 건축주가 건물을 지으면서 주변을 벽으로 막아버리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준석 나우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카루나의 필지는 오랜 기간 공터로 있으면서 지역주민들이 통로나 텃밭으로 이용했다”며 “이 공간이 갖고 있는 기억을 훼손하지 않고 최대한 복원하는 방향으로 공공통로의 설계를 제안했고 건축주 또한 흔쾌히 응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이 지어지기 전, 필지가 ‘공터’로서 갖고 있던 기억을 최대한 복원한 셈이다.

이 같은 대담한 결정은 건축주와 설계자의 공공에 대한 고려가 바탕이 됐지만 관청의 적극적인 지원과 검토가 있었기에 실현 가능했다. 공공통로를 인정받을 시 건축 연면적을 낮출 수 있어 각종 세금 감면 등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현호 소장은 “양양군청에서 공공복도라는 개념과 건축 의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줘 설계를 보다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며 “허가권자 대다수가 이러한 건축적 시도에 대해 보수적인 만큼 우려를 많이 했는데 오히려 열심히 경청해줘 시원하게 소통했던 경험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지역주민에 대한 작은 배려에서 탄생한 이 복도는 이제 숙박객과 지역주민이 최고로 꼽는 카루나의 매력포인트다. 김씨는 “처음 설계도에서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완공된 지금 공공복도에서 느끼고 있다”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건물 반대편에서 바라본 ‘카루나’의 공공복도./사진제공=텍스처 온 텍스처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모델로

자연·문화유산과 어우러진 개성있는 건물

천편일률 숙박업소 벗어나 지역명소 기대

설계자와 건축주는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변해가는 동해안 일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외지 자본을 유치해 리조트와 같은 고층빌딩만을 짓는, 관(官)이 주도하는 지역발전 속에 지역만의 특색과 개성이 잊혀가는 문제를 제기했다. 근사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갖춘 지역이라 하더라도 과거의 개발논리하에서는 성수기에만 반짝하는 유령도시를 양산할 뿐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카루나는 이러한 세태 속 하나의 반항이자 새로운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실험인 셈이다.

그들은 카루나가 인근 다른 토지 소유주들의 새로운 도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차 소장은 “단순히 건물의 가치만이 아니라 지역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긍정적 사고의 전염을 통해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갖춘 건축물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그런 건축물들이 모여 지역에 좋은 이미지를 견인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 또한 “수천 평짜리 호텔보다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에 이바지하는 건물을 짓고 싶다”며 “틀에 박힌 숙박업소보다는 색다른 건물들 그 자체가 명소가 돼 지역발전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카루나를 시작으로 지역에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들이 더 생겨나고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는 건축주·건축가, 그리고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해주는 공무원이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권혁준기자 awlkwon@sedaily.com

카루나에서 바라본 강원도 양양 바다 전경./사진제공=텍스처 온 텍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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