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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31> '샤오야오즈' 장융 시대...신유통 혁신으로 '제2 광군제 신화' 쓴다

■ 마윈 이후의 中 알리바바

총매출 70조원 알리바바 이끈 마윈 약속대로 10일 퇴임

후계자 장융, 온+오프라인 결합 상품 거래 '유통 재정의'

신금융·신제조 등 '5新' 통한 경영 전략으로 생산성 확충

집단지도 체제 안착 속 관시·G2전쟁 등은 넘어야 할 산





# “만일 당신이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나. 996을 해보지 않은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지난 4월 중국 기술기업에 만연한 장시간 근무를 옹호하는 이 같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996’은 오전9시에 출근해 오후9시까지 일주일에 6일 근무한다는 의미다. ‘열정페이’ 옹호가 중국 청년들의 비판을 받자 마 회장은 이후 “(996이) 인도적이지 않고 건강에도 해롭다”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장시간 근로 옹호가 마 회장의 지론이었음은 분명하다. 덩컨 클라크의 저서 ‘알리바바’에 따르면 마윈은 1999년 창업 이후 회사 직원들에게 “일에 몰두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첨단기술 기업은 오전8시에 출근해 오후5시에 퇴근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늘 말했다고 한다. 마윈이 개척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사고방식은 노동력의 대량투입으로 생산량 증대를 이끌어낸 20년 전 중국 상황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경영이 필요한 형편이다.

총매출이 70조원에 육박하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그룹의 수장이 오는 10일 바뀐다. 창업자이자 현 이사회 회장인 마윈은 지난해 9월 내놓은 약속대로 이날 퇴임하고, 장융 최고경영자(CEO)가 그의 뒤를 잇는다. 중국적인 기업 풍토에서 경영자가 한창 일할 나이에, 특히 가족이 아닌 남에게 회사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장융의 시대가 주목되는 이유다. 20년 만에 ‘창업 시대’의 막을 내린 알리바바는 이제 ‘수성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마윈은 통상 창업주가 죽을 때까지 경영권을 쥐고 있는 중국 산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일찍부터 자신의 퇴임을 공언해왔다. 전직 영어교사인 그는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줄곧 말해왔다. 1964년 9월10일생인 마윈은 이제 겨우 만 55세다. 마윈은 결국 지난해 9월에 1년 뒤 생일에 퇴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후계자로 장융을 지명했다. 일부에서는 창업 멤버도 아니고 마윈과 성격도 판이한 장융을 후계자로 지명한 데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하지만 마윈은 “다른 선택은 없다”며 일축했다고 한다.

마윈에게 후계자로 확신을 준 장융은 상하이 출신이다. 1972년생이므로 마윈과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고향인 상하이재경대에서 금융학을 공부했고 공인회계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대학 졸업 이후 미국 회계사무소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상하이지점 등에서 근무했다. 이후 샨다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회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던 그를 2007년 마윈이 알리바바로 스카우트했다.

달변가이자 수다쟁이인 마윈과 달리 장융은 과묵하다. 그와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항상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알리바바 사람들은 무협지에서 따온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마윈이 ‘검술의 달인’인 펑칭양(風淸揚)이라면 장융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뜻의 샤오야오즈(逍遼子)로 불린다. 즉 말은 적지만 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가족을 상하이에 둔 채 단신으로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 근처의 한 호텔에 머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지시를 내린다고 한다. 때때로 심야회의도 소집해 직원들을 독촉한다.

마윈처럼 개성이 강한 인물은 당연히 장융 같은 사람과 잘 맞지 않는다. 마윈은 평소 숫자만 알고 사람을 모르는 이가 알리바바를 경영할 수는 없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장융의 업적이 마윈의 생각을 바꿨다.

지금은 알리바바 자체를 상징하는 ‘광군제(光棍節)’를 구상하고 지금과 같은 대대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게 한 이가 장융이다. 당초 독신자들이 선물을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풀던 11월11일을 쇼핑 행사와 연결한 광군제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에 비교되는 중국 최대 세일 행사다. 기업과 소비자간거래(B2C) 사이트 ’타오바오‘에 가짜상품이 나돌아 알리바바가 고전하던 2014년에 고급상품을 취급하는 별도 인터넷사이트 티몰을 성장궤도에 올리며 실적을 회복시킨 이도 장융이었다.

이런 일련의 업적이 마윈 회장에게 강렬한 인상을 줬던 듯하다. 결국 2015년 장융은 마윈에 이어 CEO에 취임했다. 최근 장융이 중점을 둔 것은 이른바 ‘신유통’이다. 신유통은 단순 전자상거래에서 더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함으로써 오프라인 상점,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자유롭게 상품을 주문하고 배달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장융은 “애플이 휴대폰을 재정의했듯이 알리바바는 유통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유통을 포함해 핀테크 등 신금융, 신제조, 신기술, 신자원 등 ‘5신(新)’이 알리바바의 미래 혁신전략으로 통한다.

이미 알리바바는 장융 체제가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장융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조직인 ‘경제체발전집행위원회’다. 주요 사업 부문 책임자 13명으로 구성되는데 일종의 집단지도 체제다.



알리바바가 ‘포스트 마윈’ 체제로 순조롭게 이행하게 된 데는 카리스마 경영자 마윈이 알리바바를 창업하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만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이유도 있다. 마윈의 능력과 개성이 알리바바 성장의 핵심 원동력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두 가지 점에서 그는 국가와 시대의 도움을 받았다. 공산당원이라는 점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전후한 시기에 이뤄진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이다.

마윈은 평소 “정부는 정부의 할 일을 하고 기업의 일은 기업에 맡겨두라”면서 마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듯이 말했지만 이는 그가 공산당원이라는 점을 전제하면 모순이 있다. 마윈이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대학생 때로 알려졌다. 항저우사대를 졸업한 후 동기생들은 대부분 중학교 영어교사로 나갔지만 마윈만 그대로 대학에 남아 강사가 됐다. 이후 인터넷 업체를 운영하다 베이징에 불려와 중국 대외경제무역합작부 인터넷 자회사의 책임자가 된다. 공산당원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이후 관료적 삶을 거부하고 항저우로 돌아와 기업간거래(B2B) 사이트인 알리바바를 창립했지만, 회사 운영에서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경제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은 저장성과 항저우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2007년 7월 당시 저장성 공산당위원회 서기였던 시진핑 현 중국 국가주석이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은 지금도 회사의 VIP 접견실 입구에 걸려 있다고 한다.

다만 그의 튀는 개성만은 숨길 수 없었다. 마윈은 중국 정부의 규제에 잇따라 쓴소리를 하며 눈총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15년 가짜상품 규제에 대해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뒤로는 중국 정부기관이나 지도급 인사들과 마찰을 종종 빚어왔다. 해외에서 온 정치가들이나 기업인들이 공산당 지도부를 무시하고 마윈을 먼저 찾는 일로도 시기의 대상이 됐다. ‘관’이 전방위로 ‘민’을 통제하는 중국식 체제에서 마윈은 이단아처럼 행동했다.

장융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마윈 같은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없는 장융은 정부에 바짝 엎드렸다. 창업보다 더 어렵다는 수성의 임무를 맡게 된 장융은 공식석상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가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공산당 지도부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올해 추진한 홍콩증시 상장계획도 그중 하나다. 성사되면 뉴욕시장과 중복 상장이 되지만 어쨌든 중국 정부는 환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력기업이 해외에서 돌아와 중국 본토나 홍콩에서 거래되는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마윈과 달리 마주쳐야 하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 우선 중국 지도부와의 관계에서 마윈만큼의 ‘관시’를 갖지 못한다. 장융이 공산당원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중국 내외에서 그의 지명도는 한참 떨어진다. 해외 공략의 제1목표인 미국 시장이 미중 무역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문제다. 앞서 마윈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선자였을 때 약속했던 ‘“미국 내 100만개 일자리 창출’ 계획을 무역전쟁을 이유로 지난해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에게 미운털이 박힐 만한 행동이다. 차선책으로 미국 이외의 자금조달 통로로 삼았던 홍콩증시 상장도 최근 홍콩시위 사태로 무기한 연기됐다.

중국의 저성장 시대 돌입과 미중 무역전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알리바바의 성장세를 꺾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매출은 2018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 377억6,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60.5%였던 데서 2019회계연도에는 561억5,000만달러(약 68조원)로 48.7%에 그쳤다. 2020회계연도 1·4분기(2019년 4~6월) 매출도 167억4,000만달러로 증가율은 32.0%였다.

알리바바가 신유통 등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고 하나 중국 내 소비 증가세가 주춤하면서 향후 도전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무역전쟁이 불확실성을 높이는 가운데 징둥·핀둬둬 등 중국 내 업체들과의 경쟁도 심화하면서 알리바바에 고난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이징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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