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서초동 야단법석] 무엇이 안희정을 실형으로 이끌었나





“초범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니 예전 같으면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도 있었겠죠. 성범죄에 대한 우리 법원의 판단이 피해자 중심으로 바뀌는 계기로 보면 될 것 같아요.“(판사 출신 변호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실형 확정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4) 전 충남지사에게 징역형이 최종 내려졌습니다. 지난 9일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그간 법조계 안팎에서는 안 전 지사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의 효력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김씨를 네 차례 성폭행하고 여섯 차례에 걸쳐 성추행했다는 김씨의 진술과 이를 전해 들었다는 전 수행비서의 진술이 유일했기 때문이죠. 검찰 역시 안 전 지사의 범행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기에 혐의 입증에 난항을 겪었습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강제추행 5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1회 등 모두 열 차례의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해 4월 기소됐습니다. 유력 대권후보로 꼽히던 현직 도지사의 성범죄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번 재판은 적잖은 사회적 관심과 논란을 낳았습니다.

지난 2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남부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심 재판서 나온 증언이 결정타

논란이 큰 사건인 탓이었을까요? 하급심 재판부의 판단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1심은 ‘범행이 발생한 당일 저녁 김씨가 안 전 지사와 와인바에 동행한 점’을 들어 김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공소사실 10건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며 진술 자체에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며 10건 중 9건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1심에서 진술을 꺼리던 증인들이 2심 비공개 재판에서 피해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잇따라 진술한 것이 결정타였습니다.

A4 용지 144쪽 분량의 2심 판결문을 보면 안 전 지사의 비서실장이었던 A씨는 “1심 때는 공개 재판이라 말하지 못했는데 피해자가 수행비서에서 정무비서로 옮길 때 호소한 취지는 ‘공무원들이 자기를 깔본다. 한직인 거 아니냐’였다”고 진술했습니다. 피해자는 10번의 성범죄 피해 가운데 9번이 정무비서로 옮기기 전 수행비서 시절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전 수행비서 B씨도 “안 전 지사의 4번째 성폭행 직후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1심에 등장하지 않았던 증언과 진술이 쏟아진 것이 2심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입니다.





◇성범죄 재판의 주요 법리로 부상한 ‘성인지 감수성’

이번 재판에서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 폭넓게 인정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가해자와의 관계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용어입니다. 성범죄을 당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 법원에 성인지 감수성이 등장한 것은 지난해 4월입니다. 제자를 상습 성희롱한 혐의로 해임된 한 대학교수의 상고심에서 2심 재판부는 여학생이 성희롱 피해 이후에도 해당 교수의 수업을 수강한 점 등을 보면 성적 굴욕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며 성희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 원칙에 따라 성범죄 재판을 할 때는 남성 중심적 시각이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안 전 지사의 2심 판결문에도 성인지 감수성이 등장합니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후에도 평소처럼 행동해 ‘피해자다움’이 없었다”고 주장해온 안 전 지사 측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목입니다.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상고심 기각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

여성단체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안 전 지사의 형이 확정되자 “이번 판결은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라며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들에게 이 판결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재판부의 판결에 피해자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판단한 근거에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이번을 계기로 성폭력 사건에서 비동의 간음이나 위력의 정도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김씨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 입장문을 보내 “세상에 안희정의 범죄를 알린 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파하며 지냈는지 모른다”며 “이제는 온갖 거짓을 정리하고 평범한 노동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