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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문화재 나무의 존엄한 최후

정재숙 문화재청장

정재숙 문화재청장




판소리 ‘춘향전’의 무대인 전북 남원 광한루원(廣寒樓園)은 나무가 좋기로 이름났다. 명승 제33호답게 조선 중기 조경(造景)의 인문학적 미감을 잘 보여준다. 올해는 광한루원의 상징이라 할 누각인 광한루 건립 600주년이다.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온 이몽룡은 이 광한루에 올랐다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다. 600년 세월이 흐르는 새 광한루는 젊은 연인의 연애이야기에 풍부한 살을 붙여 애정이 꽃피는 신성한 정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600돌을 기리는 춘향축제 현장을 가보고 안타까웠던 것은 몇 군데 그루터기만 남기고 사라진 늙은 나무의 죽음이었다. 태풍 ‘링링’과 ‘타파’가 지나가면서 바람에 취약한 노거수(老巨樹) 몇 그루가 쓰러졌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이 썩어들어간 나무들은 꼭 골다공증 걸린 사람마냥 강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광한루원의 느티나무뿐이 아니었다. 9월 들어 연이어 한반도를 강타한 두 태풍 탓에 전국에서 수령(樹齡)이 높기로 이름났던 늙은 나무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문화재청 안전기준과와 천연기념물과가 조사한 집계를 보면 두 태풍으로 피해를 본 국가지정문화재 56건 가운데 수목이 쓰러진 사례가 35건이었다. 합천 해인사 학사대의 전나무, 서울 창덕궁 회화나무 군, 경남 하동군 송림의 소나무 등이 가지가 부러지거나 넘어졌다.

사적·명승·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이 나무들뿐이 아니다. 각 지자체에서 돌보고 있는 보호수도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강화도 연미정(燕尾亭)의 상징이었던 500살 먹은 느티나무도 속절없이 부러져 그 자태를 흠모했던 많은 이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다행히 연미정이 다치지 않게 옆으로 쓰러졌는데 이를 두고 주민들은 느티나무가 안간힘을 써 그리됐다고 칭송했다. 소목장 이수자인 양석중 명인은 느티나무의 갸륵함을 기려 강화반닫이로 재생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강화군과 토지주의 폐목재 처리방침을 몰라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수명을 다한 천연기념물 나무도 자연스럽고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생각이다. 6일 오전 생물학적 가치를 상실한 천연기념물 제541호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의 경우도 기념과 활용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뿌리를 보존처리하고 후계목(後繼木)을 심어 역사를 기리는 방법이다.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지정 해제된 천연기념물 제290호 괴산 삼송리 소나무도 한 예다. 뿌리째 뽑혀 옆으로 쓰러진 모습 그대로 보호막을 설치해 600여년간 마을을 지킨 용송(龍松)의 위용을 기리고 있다. 자연 고사(枯死)로 2006년 천연기념물 제425호에서 해제된 문경 존도리 소나무는 대전 천연기념물센터에 줄기만 표본 전시됐다.

하루가 다른 기후변화,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사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천연기념물도 평화스럽고 자연스러운 최후를 맞도록 보살펴야 한다. 그들의 존엄한 죽음 속에 인간도 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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