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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양극화의 민낯]유통가 초저가경쟁 '치킨게임'…e커머스 '승자의 저주' 빠지나

유통업 경기전망 5년來 최대낙폭

수익악화 악순환에 적자폭 늘어

e커머스 자본잠식에 빠질 수도







#두 돌이 지난 아이를 재우고 살짝 눈을 붙이던 김예지(35)씨는 자정을 5분 앞두고 울린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밤12시 티켓몬스터에서 열리는 ‘특가딜’을 놓치지 않으려 알람을 미리 설정해둔 것. 김씨는 이날 5만원짜리 아이용 로션과 크림 세트를 2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구매했다. 그는 “50% 할인은 기본이고 가끔 80~90%까지 할인된 가격에 득템할 수 있어 이제 정가로 사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티몬이 제공하는 타임 특가딜은 10여개가 넘는다. 최근에는 오전10시에 단 10분간 판매한 싹보리미숫가루 상품이 12만개나 팔려나가며 최다 판매 신기록을 썼다.

소득 양극화 심화로 서민층의 지갑이 더욱 얇아진 가운데 장바구니 물가는 속없이 상승하는 오랜 불경기가 만들어낸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프리미엄 상품이 아니라면 1원이라도 더 싼 것을 사려는 소비심리가 유통가에 ‘초저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가격’ ‘극한가격’ ‘최저가 보상제’ 등 이름은 다르지만 온·오프라인 업체들은 앞다퉈 경쟁사보다 한 푼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며 치열한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 살 깎아 먹기 식 초저가…‘승자의 저주’ 목소리=유통업계의 경기전망은 지난 2014년 2·4분기 이후 L자형 침체를 지속하고 있어 제 살 깎기 식 출혈경쟁이 계속될 경우 수익성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초저가 전략으로 매출과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도 결국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통가에 초저가 경쟁의 불을 지핀 것은 e커머스다. 매입가보다 싸게 파는 역마진 정책부터 동일상품을 다른 e커머스보다 비싸게 구매한 경우 차액의 2배를 보상하는 ‘최저가 보상제’까지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급기야 하루를 시간 단위로 쪼개 매시간 파격적인 할인가를 제공하고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활용한 ‘실검 마케팅’으로 가격을 깎아주는 등 날로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이에 소비의 주 무대가 온라인으로 이동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오프라인 업체들도 가격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프리미엄 상품군으로 활로를 유지하고 있는 백화점과 달리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긴 대형마트는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량매입이 가능하다는 이점을 살려 최대 40~50%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내놓았다. 상품군도 생필품에서 가전제품까지 확대했고 이벤트성 특가는 물론 상시 특가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투보틀 와인’은 2병에 1만원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인기를 끌면서 최근 1년간 전체 주류 상품 중에서 와인이 소주와 맥주를 제치고 가장 높은 매출 증가세를 기록하는 데 일조했다.

◇대형마트 출혈 악순환에 e커머스는 자본잠식 우려=유통가의 치열한 가격 전쟁에도 유통업계 전망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소매유통업체 1,0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 4·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전 분기 대비 2포인트 하락한 91로 집계됐다. 지난 분기에 소폭 회복세를 보인 경기전망이 오히려 한 분기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온라인과 초저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마트는 최근 5년래 최악의 낙폭을 보였다.

이처럼 어두운 산업 전망 속에서 유통업계가 출혈경쟁에 몰두하자 일각에서는 수익성이 나빠지는 악순환만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요가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대형마트는 재고물량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고 e커머스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위메프만 적자폭을 줄였고 여전히 모든 업체가 적자구조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에 직매입 비중을 줄이고 중개 사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지만 이는 협력업체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또 다른 피해를 낳고 있다. 최근 한 e커머스 업체에서 특가딜을 제안 받은 협력업체 판매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판매가는 20% 이상 내려놓고 배송도 무료로 하라고 한다”면서 “완전 손해 보면서 팔라는 식”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여러 업체가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품목에 대해 초저가 딜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번 저가로 판매되면 정상가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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