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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모피





상류사회 사교모임이 활발했던 17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비버 모자가 대유행했다. 당시 신사 복장에는 타조 깃털로 장식한 검은색 비버 모자가 필수품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할 때 우아한 동작으로 모자를 벗는 것이 예절이었다. 1638년 비버 모자 애호가인 영국 왕 찰스 1세가 “모자를 만들 때는 비버 가죽이나 털 외에 다른 것을 써서는 안 된다”는 포고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영국·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비버 모피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유럽 대륙에서 비버의 씨가 마르자 18세기 들어 아메리카로 눈길을 돌렸다. 어찌나 아메리카 비버를 남획했던지 1720년까지 북미 동부에서 죽임을 당한 비버 숫자가 200만마리가 넘었다. 이것도 부족해 사냥꾼들은 비버를 찾아 로키산맥을 넘어 태평양 연안인 미국 서부까지 이동했다. 미국 서부 개척사가 ‘골드 러시’이자 ‘모피 러시’의 역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인류가 원초적인 모피를 사용한 것은 구석기시대로 전해진다. 북방 민족이 방한용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로, 이것이 남하해 기원전 1,500년께 그리스에 전파됐다고 한다. 어설프나마 의복 형태의 모피가 등장한 때는 무두질 기술이 발달한 기원전 1,000년께 중국 주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00년이 지나 무두질 모피가 유럽으로 건너와 보급됐다.



모피 소재로는 비버의 뒤를 이어 북해 해달이 인기를 끌었으나 멸종 위기에 처하면서 그 자리를 검은 여우가 차지했다. 이즈음 야생동물이 귀해지자 모피용 사육이 시작돼 은여우가 길러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자랑하는 밍크가 모피의 여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고급제품은 중앙아시아산 어린 카리쿨양(羊)의 솜털로 만든 모피라고 한다.

영원할 듯싶던 인간의 모피 사랑도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소비자 취향이 혁신적인 섬유소재 등으로 옮겨가고 동물 복지에 더 신경 쓰면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 최대 메이시스백화점과 블루밍데일스백화점이 2021년 초 모피 판매중단을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도 열흘 전 모피 신제품의 판매·제조·기증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미국 연방 주로는 처음으로 2023년 1월 발효될 예정이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도 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어 갈수록 ‘모피=럭셔리’ 인식이 무뎌질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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