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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재정퍼주기 계속땐 진보든 보수든 차기정권 심각한 위기 봉착"

■ 권혁주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서울대 교수)

양극화·경기침체·신포퓰리즘으로 국제사회 갈등 첨예화

불평등 쌓인 개도국, 복지축소·세금인상에 시민 저항 확산

반환점 도는 文정부 국정관리능력 부족...결과 신통치 않아

조국사태는 시민덕성 강조하는 공화주의·민주주의의 위기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 5일 서울대 교수회관 앞뜰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확장적 재정정책이 지속되면 차기 대선에서 진보나 보수 정권 중 어느 쪽이 들어서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권욱기자






전 세계가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다. 칠레·레바논 등 남미와 중동에서는 경제난에 따른 불만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미국·영국 등 상당수 선진국에서도 정치적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적 격변기에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권 교수는 해외의 다양한 현장활동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들의 민주주의와 리더십, 경제·사회 발전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는 전문가다. 권 교수는 지난 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세계는 양극화와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신(新)포퓰리즘이 나타나면서 국민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이 지속된다면 차기 대선에서 진보나 보수 정권 중 누가 들어서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성적표에 대해 “국정관리능력 부족과 진영논리 집착으로 결과가 신통찮다”면서 낮은 점수를 줬다.

-권 교수가 회장을 맡고 있는 국제개발협력학회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방안을 연구하는 학자와 현장활동가들로 구성된 학술단체이다. 우리나라가 원조 공여국이 되면서 이 분야에 대한 학술적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적절한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전 세계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에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칠레와 레바논·이라크·에콰도르·볼리비아 등 남미와 중동 등에서는 “더 이상 경제난을 못 참겠다”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시민들의 집단행동과 정치적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누적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거나 정부 보조금과 복지혜택 축소, 세금 인상 등으로 반발이 거세지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에콰도르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긴축재정을 위해 연료보조금 등을 대폭 삭감하자 서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을 볼 수 있다. 방만하게 재정을 운영한 정부의 신포퓰리즘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칠레는 지하철요금 50원 인상을 추진하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저항하는 바람에 이달 중순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취소하게 됐다.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시장경제를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칠레의 소득 불평등이 매우 심하다는 점이다. 칠레 내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를 나타나는 지니계수는 2018년 기준 0.46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지하철요금 인상안을 발표하자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대규모 시위로 나타났다. 칠레 정부는 APEC 정상회의를 갑자기 취소하면서 국가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레바논에서는 ‘와츠앱’ 등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에 하루 20원의 세금을 부과하려다 대규모 시위로 실권자인 총리가 물러났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중동의 진주’로 불리는 레바논은 지중해 연안의 관광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를 지탱해왔지만 최근 관광 산업 불황에 따른 재정적 어려움과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레바논 정부는 손쉽게 재정수입을 올리기 위해 국민들의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메신저 앱에 대한 세금 부과를 추진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레바논 국민들이 보인 분노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 그리고 해결되지 않는 실업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중남미·중동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정치적 시위가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는가.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따른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국·후진국을 막론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됐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불안정과 빈곤에 고통받는 사람들도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미에서 잇달아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들이 재정을 쏟아붓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쓰면서 국가 재정이 악화됐을 뿐 아니라 국민 편 가르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신포퓰리즘 현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게다가 사회 갈등이 증폭돼 폭력 사태로 이어지면 그동안 쌓아온 개발의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중남미와 중동처럼 경제위기와 관련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로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기 때문에 안심해도 되는가.

△우리나라의 경제난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지난 8월과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경기 후퇴를 넘어 불황이 우려되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개발도상국처럼 곧바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다양한 수당과 보조금 지급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다 재정적 지원을 통해 단기 일자리를 비롯한 고용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광화문 등에서 열리는 대규모 정치집회가 경제적 이슈로 연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난 뒤 차기에 진보 정권 또는 보수 정권이 들어설 경우 경제위기나 세금 인상 또는 보조금 인하와 관련한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은.

△우리나라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민적 불만은 두 단계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들과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은 정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이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을 메웠던 사람들과 결합한다면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물론 현 정부 정책인 기초연금과 근로장려금·아동수당 등으로 혜택을 보는 사람이 1,200만명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만이 쉽게 고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정부의 확장적 재정지출이 지속된다면 오는 2022년 대선에서 진보나 보수 정권 중 누가 들어서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진보 정권은 재정지출의 속도를 조절하고 보수 정권은 재정개혁을 선택할 것이다. 어느 쪽 현상이 나타나든지 서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때 민주주의 모델로 통했던 미국과 영국에서도 민주주의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요즘 세계는 양극화와 경기침체라는 두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화를 이끌어왔던 미국과 영국도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와 같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정치현상들이 이어졌고 일종의 신포퓰리즘이 대두하면서 국민들과 여야 정치권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조 전 장관 의혹과 관련된 사태로 두 달 이상 국론분열이 확산됐다. 조국 사태의 의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자녀 입시 특혜와 웅동학원 비리, 사모펀드 투자 의혹 등으로 이어지는 조국 사태에서 국민들은 특권의 남용과 권력 주변의 비리 의혹을 목도했다. 기회의 평등, 정의로운 결과와 같은 가치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나의 이익을 스스로 챙기지 못하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관념이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국민들이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립과 싸움을 선택할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위기이며 더 나아가 민주주의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가 합리성에 근거한 정책을 펴고 양보와 타협을 통한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이달 9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등산에 비유하자면 하산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집권 2년6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든다면.

△집권 초 문재인 정부는 탈권위주의를 내세우면서 국민과 소통하고자 했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불안정한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의 비핵화를 시도했다. 이 같은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임기 반환점을 맞는 시점에서 그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한마디로 국정관리능력 부족과 진영논리 집착 때문이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고 국론이 분열하고 있다. 경제적 침체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북한 비핵화에서는 진전이 없다. 정부는 앞으로 북핵 폐기 원칙을 고수하면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이번 정권 내에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순리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 그러면 정책의 지속 가능성도 높아진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외원조와 개발도상국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하는 나라로 전환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다. 그러나 우리의 자부심을 위한 원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국제개발협력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개발도상국의 공공 부문 역량 개발을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사회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발도상국은 우리에게 단순히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기회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광덕 논설위원 kdkim@sedaily.com

He is…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우신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스위스에 있는 유엔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조정관과 미국 하버드대 방문학자를 지냈다. 영국의 유명 학술지 ‘글로벌 소셜 폴리시(Global Social Policy)’ 공동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성공하는 정부를 위한 국정운영’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공화주의 관점에서 사회 갈등의 해법을 찾는 정치이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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