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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WTO 개도국 포기, 농민의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려면…

3%도 안되는 농업예산 4% 이상으로

미국·일본·EU처럼 직불금 늘려야

'농업 공익적 가치' 헌번 반영 추진

농어촌 상생 위한 제도적 보완장치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 소장(전 농협중앙회 이사)




창 너머 눈에 들어오는 황금빛 들녘 풍경이 수확의 계절 가을을 새삼 느끼게 하며 삶에 찌든 마음마저 풍요와 충만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가을풍경과 달리 농업을 둘러싼 농정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아 암담하기까지 하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개도국)지위를 공식 포기함으로써 외국농산물에 대한 수입관세율과 농업보조금 지급에 대한 특혜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 전국의 250만 농업인은 깊은 좌절감과 함께 농업·농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 2018년까지 농축산물 수입액이 69억 달러 수준에서 274억 달러로 무려 4배로 증가하였고, FTA(자유무역협정)협상 이행으로 수입량이 계속 늘어나 국내 내수시장이 잠식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던 상황에서도 외국산 농축산물의 수입증가로 피해를 입어 왔는데 이번 정부의 결정으로 농업인들의 추가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은 기우(杞憂)가 아닌 현실로 나타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수입농산물 관세를 갑자기 내리거나 농업부문 보조금을 축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는 있다. 하지만 향후 농업협상이 진행되면 기존의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비록 정부가 국익차원에서 내린 국가적 결단이지만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다른 산업분야의 협상우위를 위해 농업분야를 일방적으로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와 맞물려 차제에 농업부문을 보호·육성하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전체 국가예산의 3%에도 못 미치고 있는 농업예산을 4% 이상 수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간 국가예산은 75.4% 늘어난 데 비해 농업예산은 17.8% 증액에 머물렀다. 예산 증가율을 적용하면 2020년 농업예산은 4.4%수준은 되어야 하나, 실제로는 3%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둘째, 농가소득 안전망 확충을 위해 점진적으로 직불제 예산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수준인 5조원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나라 직불제 예산은 18%수준인데 EU는 70%, 미국 58%, 일본 32%에 달하고 있다.

셋째, 정부는 농업분야 보조금 제도를 WTO가 인정하는 공익형 직불제로 전환하기에 앞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헌법 반영이 선행되어야 한다. EU·미국·일본 등은 식량안보, 농촌개발, 대기 및 수질 정화 등의 환경보전, 경관보전, 전통문화 계승 등을 조건으로 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연방헌법에 농업의 역할과 연방정부의 의무, 농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근거 및 농업정책 수단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넷째, 수입보장보험, 자동시장격리제,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대체법안 등의 제도적 보완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일례로 2015년 한·중 FTA국회 비준을 앞두고 정부는 시장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농업·농촌을 지원하겠다며 미봉책으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만들었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의 기업 기부금을 모아 농어촌 복지사업에 사용하고 자발적으로 민간 기금이 조성되지 않으면 정부가 부족분을 충당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2017년 기금조성에 첫발을 뗀 후 2019년 9월말까지 조성된 상생기금은 모두 624억원 규모에 그치며 3년 목표치인 3,000억원의 20%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사장된 거나 다름없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확대는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가 농업분야의 위기가 아닌 기회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농업인의 소득안정 버팀목을 촘촘히 준비하고, 농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병국 한국농업연구소 소장(전 농협중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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