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의열단 조직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대일 무장투쟁에 앞장 섰던 독립투사. 해방 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6.25전쟁 이후 김일성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친북 인사. 북한에서 요직을 지냈지만 김일성 체제 수립과정에서 숙청되면서 남북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비운의 인물. 약산(若山) 김원봉의 일생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명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1운동 100주년이자 김원봉이 의열단을 창단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한길사가 김원봉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을 펴냈다. 국내에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김원봉에 대한 기록을 찾기 위해 저자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의열단을 창단한 중국의 지린(吉林), 조선의용대 투쟁 현장인 타이항산(太行山) 등 독립운동과 관련된 중국 지역을 20여 차례 답사했고, 미국·러시아·일본 뿐만 아니라 북한 로동당출판사가 발간한 ‘김일성 저작집’까지 참고했다. 북한에서 촬영된 50대 김원봉의 모습 등 저자가 수집하고 촬영한 116장의 사진도 함께 실렸다. 이러한 노력으로 역대 출간된 김원봉 관련 책들 가운데 가장 많은 2,500매 분량의 원고를 써 내려갔다.
책 속에는 김원봉과 독립투사들의 대화, 투쟁 과정 중에 느끼는 갈등과 고뇌, 러브스토리, 월북 이후 행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김원봉 개인의 일대기에 그치지 않고,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던 젊은 독립운동가 200여명의 활동상도 함께 다루고 있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빈자리는 김원봉의 가족, 독립투사와 후손들의 증언으로 채워졌고, 작가의 상상력도 일부 가미됐다. 한길사는 이번 평전이 소설적 형식을 띄고 있지만 픽션(Faction)이 아닌 자료나 증언을 바탕으로 한 팩션(Faction)이라고 소개했다.
김원봉의 정체성 논란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담겨 있다. 저자는 김원봉이 사상적으로 사회주의를 따랐지만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한 점과 월북 당시 백범 김구 선생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로 약속한 점 등을 이유로 들며 김원봉을 민족주의자이자 중도좌파로 규정한다.
책은 작가가 2005년 출간한 ‘약산 김원봉’을 보완해 다시 낸 두 번째 책이다. 저자 이원규 작가는 지난 6일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평전을 쓸 당시에는 관련 논문이 10개 정도에 불과했고, 북한 자료가 없어 소설적인 요소가 강했지만 이후에 10배나 많은 자료가 확보됐다”며 “소설은 그냥 둬도 되지만 평전은 잘못된 부분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책을 내게 됐다. 내 인생의 마지막 책이란 생각으로 썼다”고 말했다. 2만2,000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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