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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24/7]'잃음의 슬픔' 보듬어…현재를 찾습니다

■경찰청 '실종자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

지난달 31일 실종자 가족들과 피해자전담경찰관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에서 열린 ‘실종자 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경찰청




“그때 그 아이는 두 달쯤 있으면 마흔다섯이 돼요. 길을 걷다 비슷한 나이의 여성이 보이면 딸 생각부터 납니다. 먼 타국에 있는 내 아이가 아프거나 잘못될까봐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발 뻗고 잠든 날이 없었어요.”

지난달 31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에서 열린 ‘실종자 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 시행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김길순(71)씨는 기자와 43년 전 잃어버린 딸 이야기를 하다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지난 1976년 11월 당시 애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애인은 김씨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아이를 아동복지센터에 맡겼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씨가 센터로 달려가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는 이미 미국으로 입양을 갔다는 직원의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김씨는 “딸을 잃은 후 ‘폐인’이 될 만큼 힘들어하던 중 경찰에서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위로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 5주간 진행

참가자들간 감정 공유·마음 인식

슬픔 이겨낸 상상하며 희망 설계

◇심리 치유로 장기 실종자 가족 보듬기=
지난달부터 경찰은 ‘실종자 가족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본격 시행했다.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그들의 정서적 문제를 공유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골자다. 경찰청 주관으로 지난달 31일 첫 삽을 뜬 이번 프로그램은 이달 28일까지 5주간 서울 동대문구 용두치안센터에서 진행된다. 참석자는 실종기간이 1년 이상인 실종자의 가족 10여명과 피해자전담경찰관 2명이다. 그동안 실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왔지만 실종자 가족을 대상으로 한 경찰 정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그램은 매주 목요일 한 회기당 100분씩 총 5회 열린다. 1회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참가자 간 친밀감을 형성하는 오리엔테이션, 2회는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정서적인 지지를 보내는 ‘마음 인식’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찰흙을 이용해 가족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을 다른 참가자들과 나눈다. 3회는 가족에 대한 감정을 역할극으로 표현하는 ‘마음 표현’, 4회는 그림이나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폭력 없는 감정표현을 연습하는 ‘감정 다루기’, 마지막 5회는 슬픔을 버텨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희망 설계’ 시간이다. 특히 마지막 시간에는 참가자가 향후 심리적인 어려움을 느낄 때 찾아볼 수 있는 상담기관 연락처가 제공돼 실종자 가족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수사인력 부족에 실종 매년 늘어

“아픈 과거 가족들 돌보는 첫 단계

더많은 예산·인력 투입해 도와야”

◇‘과거’에 머무는 이들을 ‘현재’로 데려오기=
실종자 가족을 과거로부터 탈출시켜주는 것이 경찰이 정한 이번 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표다. 최숙희 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은 “가족을 잃어버린 과거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계획했다”며 “실종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을 과거에서 현재로 불러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종자 가족의 과거와 현재의 ‘허브’ 역할을 경찰이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는 총 19명의 경찰관이 관여했다. 심리학자 등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아 설계된 이번 프로그램에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허가 아래 1억2,000만여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최 계장은 “민 청장이 실종자 가족을 현재로 데려온다는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에 동감해 경찰 예산을 쪼개어 쓸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매년 실종자 수 증가…“경찰인력·당국예산 증대돼야”=
경찰은 장기 실종자 등 실종자가 해마다 증가하는 현실에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연도별 실종 신고 접수는 2015년 3만6,785건, 2016년 3만8,281건, 2017년 3만8,789건, 2018년 4만2,993건으로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 올해의 경우 10월까지 3만5,881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이 중 발견되지 않은 경우도 2015년 8건, 2016년 15건, 2017년 18건, 2018년 29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 미발견 건 전부와 지난해 미발견 건 중 24건은 1년 이상 장기 실종에 포함됐다. 경찰청이 ‘실종아동찾기센터’를 설립해 매년 상하반기 국내 수용시설을 돌며 수색을 벌이는 등 대책을 마련해왔지만 큰 실효가 없는 셈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딸이 실종된 후 실종아동찾기협회 대표로 나선 서기원씨는 “경찰청에 실종수사팀이 있기는 하지만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 경기남·북부지방경찰청 등 실종수사 전담팀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경찰청에는 해당 팀이 없다”고 말했다. 서씨는 당국인 보건복지부의 실종자 관련 홍보·캠페인에 투입되는 예산 부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복지부 예산이 넉넉지 않다 보니 실종자를 찾기 위한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고 부처와 실종자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실종자와 가족에 대한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실종자 가족들과 경찰은 이번 심리치유 프로그램에 기대를 걸고 있다. 서씨는 “실종자가 점점 늘고 있어 마음이 아프지만 실종자 가족이라도 챙겨주려는 경찰의 시도는 바람직하다”면서 “프로그램을 통해 실종자 가족들의 황망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 계장도 “이번 프로그램은 실종자와 가족을 돌보는 시작 단계일 뿐”이라며 “앞으로 실종 분야에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돼 실종자 수가 줄고 가족들도 더욱 체계적으로 치유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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