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40> "동·서문명의 원류" 동질감 앞세워 밀월…일대일로 확장은 '덤'

■그리스·이탈리아에 꽂힌 중국

美와 무역전쟁 계속되자

서구 문명 중심 찾아 견제

항구·에너지·금융·통신 등

차이나머니 '전방위' 투하

유물 등 문화교류도 확대

'中 = 亞 대표문명' 띄우기

시진핑(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2일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과 함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 주석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의 환수에 대한 파블로풀로스 대통령의 지지 요청에 흔쾌히 동의했다. /아테네=AP연합뉴스




지난 5월15일 오전 ‘제1회 아시아문명대화대회’ 개막식이 진행된 중국 베이징 국가회의센터의 앞문이 열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들어왔다. 동행한 정상은 대회 취지에 맞는 아시아 국가 정상이 아닌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이었다. 파블로풀로스 대통령과 나란히 선 시 주석의 사진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구 문명의 중심은 그리스, 아시아 문명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뜻이다. 시 주석은 대화는 뒷전이고 중국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11일에는 시 주석이 아테네를 찾아 파블로풀로스 대통령을 만났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사업 확장을 위해 그리스를 방문한 것이다. 내각책임제 국가인 그리스에서는 실질적 권한이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에게 있다. 하지만 중국 방송이나 신문은 상징적 국가원수인 파블로풀로스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을 주로 다뤘다. 중국의 그리스 접촉이 정치적 구상에서 시작됐다는 방증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붐을 이루고 있다. 관영매체에서 앞다퉈 특별기획을 내놓는가 하면, 방송 예능에서도 이들 지역을 찾는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기획보도와 방송 내용의 공통점은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서구 문명의 원류이자 중심이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 중국을 부각하기 위해 그리스·이탈리아를 동원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미 1년여를 끌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문명 간 대결로 몰아가면서 중국을 아시아 문명의 대표로 앞세운 것이다.

이와 함께 시진핑 정부의 최대 역점사업인 일대일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서쪽 끝인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부추기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중국은 지난주 시 주석의 그리스 방문에 맞춰 대규모 차이나머니를 투하했다. 협약의 주요 사항은 그리스 최대 항만이자 유럽의 여섯 번째 컨테이너항으로 수도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우스항을 중국이 맡아서 키운다는 것이다. 협약에 따라 중국 국영해운기업인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은 총 6억6,000만유로(약 8,500억원)를 피레우스항에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피레우스항에 대한 코스코 지분은 기존의 51%에서 배타적 소유가 가능한 67%로 확대된다. 앞서 코스코는 2016년 지분 51%와 함께 35년간의 항만운영권을 확보한 바 있다. 이는 유럽 주요국가의 첫 일대일로 사업 참여 결정으로 주목받았는데, 이번에 사업이 더욱 확대되는 셈이다. 시 주석은 미초타키스 총리와의 회담 뒤 “피레우스항의 환적 역할을 강화해 해상과 육로를 통한 유럽으로의 운송능력을 끌어올리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그리스는 피레우스항 투자 외에 에너지·수송·금융 등을 망라한 15개 분야의 경제협력에도 합의했다. 그리스 전력사인 ‘ADMIE’ 지분 일부를 보유한 중국 국가전력망공사는 그리스 본토와 남부 크레타섬 간 해저 전력 케이블 구축 프로젝트에 관심을 표명했고, 중국 공상은행은 그리스 지점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미초타키스 총리의 안내를 받으며 피레우스항을 찾아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시 주석의 그리스 방문 행보에 맞춰 중국 관영매체는 그리스 문명 띄우기에 앞장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2일자에서 ‘중국·그리스 두 문명국가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획물을 내놓았다. 시 주석의 그리스 방문에 맞춰 서구와 아시아 문명국가로서 그리스·중국을 중심에 놓고 현황과 앞으로의 역할을 제시한 것이다. 기사에서 시 주석은 “중국과 그리스의 우호관계는 양국 간 협력일 뿐 아니라 양대 문명의 대화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파블로풀로스 대통령도 “그리스와 중국은 모두 문명의 구동존이(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 추구)와 교류 대화, 평화공존을 주장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스티브 창 영국 런던대 중국연구소 교수는 “시 주석의 정책에 다른 나라들이 점점 불편을 느끼는 가운데 그리스는 중국인의 방문을 환영하는 곳으로 인식되면서, 대부분의 중국인은 그리스에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시 주석은 아시아문명대화대회에서 “고대 실크로드의 교류를 통해 고대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 등이 중국에 유입돼 중화 문명과 융합, 공생하면서 현지화를 실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고대 로마 문명을 태동시킨 이탈리아도 중국의 관심사라는 것이다.



시 주석의 이탈리아 로마 방문은 3월에 먼저 진행됐다. 당시 방문에서 양국은 동유럽을 잇는 요충지인 슬로베니아와 접경한 트리에스테항, 북서부 제노바항과 함께 라베나항·팔레르모항 개발에 협력한다는 조항을 포함해 도로·철도·교량·항공·항만·에너지·통신 등 29개, 총 25억유로(약 3조2,000억원)의 상호협력 사업에 합의했다. 특히 중국은 이들 이탈리아 4개 항구의 지분을 보유하거나 합작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협력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이탈리아는 주요7개국(G7) 중 첫 일대일로 사업 참여국으로도 주목받았다.

문명의 교류답게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 작지 않다. 중국의 주장은 주로 그리스·로마와 중국이라는 양대 ‘원조 문명’이 제국주의 외세로부터 핍박을 받았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시 주석은 파블로풀로스 대통령과 12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을 함께 방문했는데 당시 파블로풀로스 대통령이 대영박물관에 보관된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 환수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요청하자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밝혔다. 시 주석은 “당신은 우리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며 “우리 역시 해외에 많은 (약탈당한) 조각이 있으므로 그러한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거 제국주의 열강에 여러 유물을 분실했는데 그리스를 매개로 이를 되찾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 소식을 전하며 “시 주석이 그리스에 동조를 나타냄과 동시에 중국의 5,000년 문명사를 거론하며 자국 유산의 자랑스러운 옹호자로 스스로를 묘사했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그리스 방문에 맞춰 현지 언론에 게재된 글에서 “(중국의) 공자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는 같은 얼굴을 다루는 2개의 마스크”라고 적기도 했다.

이는 앞서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3월 시 주석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반출된 중국 문화재 796점을 반환하는 내용의 협약을 얻어냈다. 반환된 중국 문화재에는 송나라 시대의 도자기를 비롯해 중국 간쑤성 마자야오촌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후기 유물인 ‘마자야오 토기’ 등이 포함돼 있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3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마=AP연합뉴스


중국의 그리스·이탈리아와의 밀착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서구 문명의 원류를 치켜세우면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동참을 이끌어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그리스 교역액은 63억5,000만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21.4%, 중국·이탈리아 교역액은 410억5,000만달러로 0.2% 각각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국 전체 교역액이 오히려 2.4% 줄어든 데 비하면 양호한 성적이다.

여기에 유럽과의 협력을 통해 비유럽인 미국을 견제하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이 소원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궈내는 성과여서 의미가 깊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이탈리아를 방문해 “중국의 투자나 인프라 사업이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미국의 이런 우려를 반영한다.

다만 ‘아시아 문명의 대표’로 중국을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은 아시아 지역에서 잘 통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급속한 ‘사회주의화’를 진행하면 수많은 전통문화를 파괴했다. 이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가속화됐다. 홍위병이 자금성까지 봉건잔재라며 파괴하려 하자 저우언라이가 울면서 당시 마오쩌둥에게 간언해 막아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같은 행운을 누리지 못한 유산도 적지 않다. 유교와 불교 전통은 정작 중국에서 거의 사라진 지 오래고 오히려 한국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로 보존되는 상황이다. 중국은 최근에서야 전통문화 진흥에 나섰지만 사회주의의 경직성으로 문화유산 복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0년 전통의 허난성 쑹산 소림사가 지금은 ‘무술 비즈니스’로 돈을 버는 것이 희화화될 정도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등 강압적인 대외정책이 이웃 나라로부터 문명 종주국이라는 인식을 옅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5월 아시아문명대화대회는 정작 과거 중국 문화의 영향권에 있었던 한국이나 일본·베트남 등에서 시큰둥한 반응만 얻었다. 베이징의 한 문화계 인사는 “서구의 자부심인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차이나머니를 원하는지 아니면 차이나컬처를 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