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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917년 핼리팩스항 폭발 사건

조급함이 낳은 加 최악 참사

[오늘의 경제소사] 1917년 핼리팩스항 폭발 사건
핼리팩스항 폭발 사고 당시 모습. /위키피디아

1917년 12월6일 오전9시4분35초. 캐나다 핼리팩스항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선박의 잔해가 공중 300m까지 치솟고 폭발 중심부 온도는 5,000도까지 올라갔다. 대포 크기의 선박 구조물 하나는 5.6㎞ 외곽 호수에 떨어졌다. 일산 호수의 1.6배 정도의 면적이 파괴되고 폭심 반경 1.2㎞ 안의 건물 1만2,000채가 주저앉았다. 가장 큰 피해는 사람. 1,600여명이 건물 붕괴와 충격파로 즉사하고 9,000여명이 다쳤다. 중상자들이 목숨을 잃고 눈보라가 불어닥쳐 다치고 집은 잃은 채 얼어 죽은 사람이 속출했다.

식별된 사망자만 1,963명. 실종자와 2차 피해 사망자까지 합치면 2,200여명 선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60㎞ 떨어진 섬에서도 진동을 느꼈다는 초대형 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박 간 충돌과 화재. 적재했던 위험물이 폭발하며 광산 재해를 제외한 폭발 사고로는 유사 이래 세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참사인 핼리팩스 폭발 사고는 피할 수도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입출항하는 선박끼리 서로 비켜주지 않으려다 어처구니없는 충돌과 적재 화약류 폭발, 대참사로 이어졌다.

충돌 선박은 노르웨이 화물선 ‘이모’호(5,043톤·길이 131m)와 프랑스 상선 ‘몽블랑’호(3,121톤·98m). 서로 피하라는 호각 신호를 세 차례나 교환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이모호가 피하려고 엔진을 역회전시키는 순간 뱃머리가 더욱 틀어지며 몽블랑호를 들이받았다. 이때가 오전8시45분.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던 벨기에로 보낼 곡물을 싣고 출항하던 이모호는 떠밀려 나갔으나 화약류를 잔뜩 적재하고 입항하려던 몽블랑호는 화재에 휩싸였다. 결국 선원들이 탈출하고 충돌 20여분 만에 몽블랑호는 폭발하며 항구까지 삼켰다.

폭발과 함께 검은 비와 쇠·불·바람이 닥쳤다. 부상자 중 1,000여명은 유리 파편에 시력을 잃었다. 히로시마 원폭이 터졌을 때 언론들은 핼리팩스 폭발의 7배라고 보도했을 만큼 이날의 사고는 오랫동안 상처로 남았다. 두 배는 왜 좁은 수로에서 양보하지 않았을까. 독일 잠수함의 침투를 막는 방어망이 해제되는 짧은 시간 안에 입출항을 마치려 서두른 탓이다. 선박과 광산·다리·건물과 관련된 대형 재난 사고의 대부분은 부주의와 조급함에서 발생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한국도 구조물 붕괴 부문에서 2위(삼풍백화점), 해양 사고 부문에서 7위(세월호)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더 이상 그런 사고가 없기를 소망한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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