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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세대갈등 치유 해법은 양극화 해소와 공동체의식 회복"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수저계급론은 무한경쟁 내몰린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

20대 핵심 가치는 공정·정의…'조국 사태'로 분노 표출

성공지상주의 완화시키고 협동·배려·이해심 등 길러야

4차산업혁명시대 AI 필요하지만 더불어 사는 자세도 중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압축 성장의 신화에 취해 있던 대한민국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온다.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취업난·전세난·입시전쟁·불평등 등 각종 사회 문제는 ‘헬조선’으로 수렴된 지 오래다. 주력 산업 부진과 경기 침체 지속에 따른 일자리 감소, 저출산·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세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발달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 가르기 식 이기주의, 타협과 양보 없는 투쟁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가 이를 다시 모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우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고착화된 불평등과 공정성 문제, 산업 변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사회안전망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과 공동체 의식 회복을 통해 세대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발달심리학이 전공인데 어떤 학문인가.

△발달심리학은 ‘심리학의 소우주’라고 할 정도로 지각·인지·사회 등 심리학의 여러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영아·아동·청소년·청년·중년·노년 등 모든 발달시기를 다룬다. 인간은 발달단계마다 전환기 성장통을 겪기 마련인데 최근에는 ‘중2병’ 못지않게 ‘대2병’도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대학에 입학한 후 삶의 목적이 뭔지,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등 청소년기에 겪어야 할 고민을 하면서 부모와 갈등을 빚다가 대학 2학년 때 극심해진다. 상당수 학생이 전공이 맞지 않아 휴학을 하거나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입대하는 남학생도 적지 않다. 부모 역시 자녀와의 갈등이 증폭되는 시기에 ‘중년의 위기’를 맞으면서 상황이 더욱 나빠지기도 한다.

-‘조국 사태’가 20대를 광장으로 나오게 한 기폭제가 됐는데.

△조국 전 장관 딸의 부정 입시 의혹은 2030세대의 분노를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확장시킨 계기가 됐다. 몇 년 전 흙수저·금수저로 대변되는 ‘수저계급론’을 통해 우리 사회 양극화에 분노했던 청년들이 조국 사태를 계기로 누적된 불만을 강하게 표출한 것이다. 20대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입 전형을 치렀고 배경에 따른 상대적 불평등을 직접 목격했던 세대라는 점에서 조 전 장관 딸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촛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심리학 용어로 ‘대립감정이론’이라고 하는데 애정이 클 때는 증오의 감정이 표출되지 않다가 애정이 줄어들면서 증오가 커지는 것이다.

-‘90년대생이 온다’는 책이 화제를 모으면서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90년대생 학습 열풍도 일었는데.

△20대는 어릴 때부터 인터넷으로 긴밀하게 연결됐다. 기성세대가 오프라인 공간에 모여 의사를 드러내는 집단성이 강한 세대라면 20대는 개개인이 인터넷상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오프라인에서는 다자간, 양자 간 교류보다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한 세대지만 온라인에서는 구심형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조국 사태 당시 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하는 아테네 식 담론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응집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진영 논리가 자리할 공간은 거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했던 정치적 의혹이 말도 안 되는 이유다. 기성세대는 이들이 ‘자기중심적이고 사회 공동체에 관심이 없다’고 비판하지만 과거 세대에 비해 가치관이 뚜렷하고 자기 주장이 분명하면서 합리적이다. 개인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를 독립된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개인의 가치뿐만 아니라 타인의 가치도 동일선상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편이다. 그런 차원에서 ‘공정’과 ‘정의’는 지금의 20대를 규정하는 시대적 가치라고 볼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N포 세대’ ‘흙수저·금수저’ 같은 수저계급론은 무한경쟁 속에 내몰린 청년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며 “공동체 의식 회복을 통해 세대 갈등을 치유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승현기자


-물질만능주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유산이 너무 빈약한 게 아닌가.

△광복 후 수십 년 동안 압축 성장을 하면서 경쟁적 분위기가 고착화됐다. 고도성장기에 경쟁에서 승리한 일부는 막대한 부를 누렸지만 상당수는 경쟁에서 도태됐다. 타인을 협력의 대상이 아닌 경쟁해 이겨야 할 상대로 여기면서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고 협동·배려·이해 등 공동체를 끌고 왔던 가치관은 무너졌다. 가정과 학교, 회사에서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소통은 말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감정을 주고받으며 공감하는 게 소통이다. 공동체 의식이 희석될수록 언어의 소통이 아니라 감성의 소통이 절실해진다.

-세대 갈등 역시 무한 경쟁이 가져온 부작용인가.



△‘N포 세대’ ‘흙수저·금수저’, 수저조차 없이 태어난 사람까지 포괄한 ‘수저계급론’에 이르기까지 최근 10여년간 청년 이슈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띤다. 부와 빈곤의 세습에 따른 불평등 문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책 기조에서 불거진 공정성 문제, 산업변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와 사회안전망 문제 등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압축 성장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누적된 각종 병폐가 낳은 부작용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부터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세대 갈등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자신을 과도하게 표출하면서 ‘관종(관심종자)’이라는 말까지 생겼는데.

△누구나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어릴 적 어른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노래를 부른다거나 형제자매에게 쏠린 부모의 관심에 섭섭해하면서 사고를 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쓰면서 살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직장 상사와 동료의 인정을 받으려고 기를 쓴다. 그런데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관심의 형태가 변하게 된다. 과거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에 한정됐다면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원래 ‘종자’라는 말이 식물이나 동물에 주로 쓰는 말인데 사람에게 쓰는 것은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부 연예인들은 심각할 정도로 타인의 시선이나 반응에 신경 쓰고 반응이 없으면 조급해하는 등 심리적인 불안 증세를 겪는다. 그런데 이러한 병리적 현상 역시 무한 경쟁시대가 빚은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아야만 뭔가를 성취했다는 보상 심리가 충족되는 것인데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각박하다는 증거다.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여기면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분노 사회’로 치닫기도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N포 세대’ ‘흙수저·금수저’ 같은 수저계급론은 무한경쟁 속에 내몰린 청년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준다”며 “공동체 의식 회복을 통해 세대 갈등을 치유할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승현기자


-현실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인가.

△현대 사회는 급격히 공동화되면서 외로움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사라지고 1인 가구가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가 됐다. 예전에는 가정이나 지역사회 등 공동체에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느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각자가 개인화되면서 공동체 의식을 경험할 수 있는 채널이 사라지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도 외로움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서로가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피상적인 관계만 늘어나고 있는데 SNS가 대표적이다. 현대인은 SNS에 글을 올리면서 일종의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지만 SNS 자체가 특정 사안을 미화하거나 한쪽 측면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의견 차이를 줄여나가는 대면 대화와 달리 일방적 의사 표현에 대한 호감 혹은 반감의 반응으로 극명하게 나뉜다. 의견이 같으면 얼굴도 모르지만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고 미화시키면서 허상을 갖게 만든다. 실질적인 연대감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가상의 공동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최근 들어 ‘편 가르기’ 문화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공격부터 하는 행태도 심각한 문제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지.

△서구에서는 청소년기에 실컷 방황하고 고뇌한 후 대학에 와서 학업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 청소년들은 내적 성장에 신경도 쓰지 못한 채 공부에만 내몰리다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야 자아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취업하기 위해 학점 관리에다 어학연수, 인턴 경험 등 각종 스펙을 쌓으면서 다시 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젊을 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익히면서 내적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의 성공 지상주의가 이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양성과 배려심, 소통하는 능력 등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스스로 성취감을 맛보는데 이러한 ‘사회적 유능감’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연결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She is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서울대에서 심리학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Ed.S 학위에 이어 1992년 연세대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발달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정평이 난 그는 한국심리학회 부회장, 한국발달심리학회 회장, 한국인간발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아이의 사생활’ ‘자본주의’ ‘부모’ 등 교육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심리학 실험을 소개했으며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관한 다수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교과서 외의 대중서로는 ‘도대체, 사랑’ ‘습관의 심리학’ ‘20대 심리학’ ‘마음에 박힌 못 하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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