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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벌목용 트럭 뒤꽁무니 쫓던 소년...자동차의 大家 되다

■ 장성택 BMW코리아 드라이빙센터장

기름쟁이 괄시에도 38년 정비 한우물

국내 유일한 수입차 명장 반열 올라

"언젠가는 영어회화 필요한 날 온다"

회사초년병 시절부터 틈나면 삼매경

현대차 거쳐 BMW와 운명같은 인연

"한국인들은 직접 몰아봐야 차 산다"

8년간 獨본사 쫓아다니며 투자 설득

영종도에 세계 3번째 드라이빙센터

"능력 없으면 기술 배우라는 건 틀린 말

기술 못배우겠으면 공부나 하라가 맞아"

장성택 BMW드라이빙센터장./이호재기자.




지난 2014년 8월 영종도에 ‘물건’이 들어섰다. 주인공은 축구장 39개 크기의 BMW드라이빙센터. 독일·미국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였다. 건설비만 총 770억원이 들었다. 게다가 전 세계 BMW드라이빙센터들 중 유일하게 차량전시와 트랙 주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은 단연 중국이다. 글로벌기업들은 아시아시장 공략을 위한 재원의 대부분을 중국에 쏟아붓는다. BMW는 이런 공식을 뒤엎고 ‘통 큰 결단’을 한 것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한국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큰 프로모션 비용을 들였다”며 “몇 년 안에 센터가 공동화해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걱정의 시선을 보냈다.

5년이 지난 2019년 그 전망은 보기 좋게 어긋났다. 개장 이후 누적 방문객은 89만7,000여명을 넘어섰다. 연간 방문객이 20만여명에 달한다. 인천공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이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중국·동남아 관광객들이 찾는 아시아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장성택(57·사진) BMW코리아 드라이빙센터장(상무)은 바로 이 ‘사고’를 친 장본인이다. 그는 영종도 BMW드라이빙센터의 시작이자 끝이다. 2006년부터 8년에 걸쳐 BMW 본사를 설득한 끝에 투자를 이끌어냈고, 오픈 이후 이런저런 유혹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운영 철학을 지켜내 결국 지역 명소로 키워냈다. 사실 그는 38년 동안 자동차 정비 한 우물만 파온 국내 유일의 수입차 명장이다. 명장은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명예로 기술인에게는 최고의 영예다. 자동차 정비소 기름 냄새가 물씬 나는 그가 BMW드라이빙센터의 ‘레전드’로 올라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처음에는 ‘기름쟁이’라고 괄시도 받았습니다. 편견을 극복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노력을 능가하는 재능은 없고,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도 없다’를 좌우명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11일 인천 영종도 BMW코리아 드라이빙센터에서 장 상무를 만났다. 구수한 첫인상과 달리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대가’의 확신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숱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대가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다웠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미세먼지에 혼탁해졌던 시야가 어느새 또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대여섯 살 때 벌목용 나무를 옮기는 트럭을 보면 너무 신기했습니다. 배기 가스 냄새가 황홀할 정도로 좋아 온종일 쫓아다녔죠.” 1962년 경북 경주시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장 상무는 ‘자동차 덕후’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트럭 바퀴에 묻은 흙을 물에 적신 ‘나일론 바지’로 말끔히 닦아낸 후 어머니께 혼이 나도 마냥 기뻤어요”. 소년 자동차 덕후는 엉뚱하게 포항 수산고에 진학한다. “당시 집이 가난했는데 배를 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길래 지원했었죠”. 운명이었을까. 수산고 내연기관과에서 선박 엔진을 배우던 그는 특별활동 시간에 자동차 내연기관을 만났다. ‘먹고살 일’ 때문에 미뤘던 꿈이 다시 떡하니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결단을 내렸다. 수산고에서 전교 2등을 할 정도로 명석했던 그는 국립중앙직업훈련원(현 폴리텍Ⅱ대학) 내연기관과로 진학했다. 운명 같은 자동차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장 상무는 1986년 현대자동차 수출정비부에 입사했다. 자동차 정비를 맡을 줄 알았지만 입사 후 1년 동안은 유류고 업무만 했다. 그는 “손으로 직접 펌프질해 기름을 채우고 옆 팀 작업반 난로에 기름을 안 채웠다고 맞기도 참 많이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꿈과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지만 “언젠가는 필요한 날이 온다”는 생각으로 참아내며 틈나는 대로 영어공부도 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현대차가 본격 수출에 나서며 해외에서 활동할 인력이 필요해졌다. 장 상무는 “입사 1년 정도 만에 담당 부서장이 내 이력서를 보고는 ‘자동차 정비 1급, 교원자격증까지 너 정비하던 애였구나?’라며 영어로 인터뷰를 보고 중동 담당자로 배치했다”고 말했다.



장 상무는 1987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시작으로, 싱가포르·스리랑카·태국·말레이시아·이집트·피지 등 현대차가 수출되는 세계 곳곳을 누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고객과 영어로 소통이 잘 안 되자 아예 아랍어를 공부했다. 그는 “서비스는 결국 고객과 소통인데 차의 어떤 부분이 고장이고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도 내 일이라고 생각해 1년 정도 독하게 공부했다”며 “지금도 알자지라 방송을 들으면 30%는 알아듣는다”고 전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장 상무는 현대중장비 기술연수센터 설립에 참여했고 현대정공에서 정비교육센터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후 현대차를 떠나 정비소 등 개인 사업장 두 곳을 차렸다.

BMW와 만남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1995년 지인이 “BMW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는데 기술자를 찾는다”며 면접을 제의했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BMW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며 맨 처음 한 일이 판매망 구축이 아닌 기술을 전파할 교육자를 찾는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독일 본사 직원인 닥터 비간트가 왔는데 대뜸 제게 ‘BMW 차량을 고칠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자동차 기술자로서 이해가 되지 않아 되물었죠. 당신 한국에 와서 감기 걸리면 한국인 의사에게 치료받지 않느냐. BMW가 독일 차라도 한국에 오면 한국인에게 정비받아야 한다.” 이 답변을 끝으로 그날 면접은 끝났다. 장 상무는 “면접에서 괜한 소리를 했나 한참을 후회했다”며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5일 만에 BMW코리아에서 연락이 왔다. 그는 그렇게 사번 6호를 달고 BMW코리아에 입사했다.



입사 전 장 상무는 BMW에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독일 본사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영어 교육과 BMW 기술 연수였다. BMW는 이를 받아들였다. 입사 직후 장 상무는 영국에서 4개월간 체류하며 영어와 기술 연수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척박한 국내 수입차 정비 업계에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며 기술 교육에 매진했다.



2006년 뜻밖의 호출을 받았다. 김효준 BMW코리아 회장의 부름이었다. 김 회장은 “BMW드라이빙센터 설립을 맡아달라”는 특명을 내렸다. 무모한 일이었다. 전 세계에 독일·미국 단 두 곳밖에 없던 BMW드라이빙센터를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에 세워야 했다. ‘노력을 외면하는 결과는 없다’는 평소 좌우명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고 작업에 착수했다. BMW 본사를 수차례 방문해 한국 시장의 성장성을 설명하고, 한국 소비자들은 차를 직접 타보고 사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득했다. 무려 8년의 ‘노력’ 끝에 2014년 8월 영종도 BMW드라이빙센터 오픈이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수입차 명장으로 BMW코리아에서 그동안 쌓은 명성까지 더하면 외부 활동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25년 동안 BMW에 몸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장 상무는 “BMW는 연구 개발센터에서 신기술이 나오면 바로 실제 차에 적용하는 브랜드”라며 “교육하기 위해 공부하고 그 교육이 끝나면 다시 또 새로운 기술이 나와 이렇게 발이 묶였다”고 웃어 보였다. 말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천상 ‘기름쟁이’인 그에게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자부심이 삶의 원동력인 듯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공부할 자신이나 능력이 없으면 기술을 배우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기술을 배울 자신이나 능력이 없으면 공부나 하라는 말이 옳은 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 상무는 남들 같으면 ‘안 된다, 불가능하다’고 자포자기할 상황인데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한평생을 자동차 정비에 매달렸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막내로 크며 집안에서는 사람 취급도 못 받았고, 사회에서는 자동차 정비사라는 직업 때문에 무시 당하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더욱 단단해진 그의 의지는 결국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로 올라서는 힘이 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BMW드라이빙센터를 나서던 길. 보름 전 리뉴얼 작업에 한창이던 장 상무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피로에 지쳐 장마에 마른 논바닥처럼 입술이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는 “보기 안 좋다”며 입술을 가렸지만 그 상처는 치열한 삶이 남긴 훈장처럼 반짝였다.
/영종도=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장성택 BMW드라이빙센터장./이호재기자.


He is…

△1963년 경주 △1982년 한국폴리텍대 자동차학과 졸업 △1995년 BMW코리아 입사 △2003년 수입차 업계 최초 차량기술사 자격 취득 △2007년 대한민국 기능한국인 선정 △2013년~ BMW드라이빙센터 총괄 △2016년 수입차 업계 최초 대한민국명장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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