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무기와 철제 농기구를 이용한 생산력 증대는 삼국시대 국가 발전에 있어 최첨단의 산업 분야였다. 따라서 삼국시대 철의 안정적인 조달은 고구려·백제·신라의 각축 속에 한반도의 패권을 잡기 위한 중요한 문제였다.
안정적인 철 생산지 확보와 효과적인 군사 요충지를 고민하던 백제는 그 답을 충주에서 찾았다. 충주는 우리나라 ‘3대 철 생산지’로 지금도 철광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철 생산에 필요한 목탄 재료인 나무도 풍부한 지역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고속도로에 버금가는 물류 효율성을 갖고 있는 남한강을 끼고 있어 백제 수도인 위례성(지금의 서울)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충주는 2000년대에 접어들어 시작된 발굴조사들로 삼국시대 첨단산업단지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충족한 도시였다는 것이 확인됐다. 백제의 대규모 철 생산시설, 그 철을 관리하고 생산했던 관리와 주민들이 살았던 도시유적, 이러한 시설과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토성 등 충주 칠금동과 탑평리 일대를 중심으로 4세기대 국가가 주도한 백제 첨단산업단지의 실체가 확인된 것이다. 남한강변 탑평리의 대형주거지 안에서는 철을 제련한 덩어리가 수북이 발견됐고, 탄금대토성의 수조시설에서는 칠금동 제철유적에서 생산했던 것으로 보이는 철 덩어리 수십 매가 포개진 상태로 나오기도 했다. 남한강을 낀 철의 생산에서 유통까지 일련의 과정을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것이다.
최근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는 삼국시대 제철문화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제철유적에 대한 학술적 발굴조사를 비롯해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백제 제철로의 복원실험 등 철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종합적인 연구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어창선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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