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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이정은의 정점, 그 이상의 '기생충' 이번에도 "리스펙!"

배우 이정은 /사진=양문숙 기자




그를 처음 만난건 2013년 봄기운이 완연했던 날 대학로의 어느 소극장이었다.

뮤지컬 ‘빨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앞두고 바짝 긴장한 참이었다. 대기실 구석에서 웅얼거리며 준비하던 내 옆에 그가 슬쩍 다가와 앉았다. 까만 봉다리에서 귤을 꺼내 하나씩 까기 시작한 그는 먹으면 또 주고 먹으면 또 주면서 여러 가지를 물었던 것 같다. 그 손길과 눈빛이 참 따스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도 이유없이 울컥할 만큼.

오랜시간 지켜보고 전해 들었던 배우 이정은은 따스한 사람이었다. 따뜻한 연기를 잘했고, 본인 눈물 한 방울에도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게 하는 재능이 있었다. 숨죽일 때와 치고나가야 할 때, 강약조절이 확실한 매력 넘치는 배우였다.

업계에서 강약조절이 월등하다는 것은 어떤 장르든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뮤지컬 ‘어쌔씬’에서 맛깔난 욕을 퍼붓다가 연극 ‘너와 함께라면’에서는 황당하게 꼬인 상황에서 툭 던지는 말로 웃음을 끌어내다가. 영화 변호인에서는 웃돈 줄테니 집 팔라는 말에 “쥬씨라도 드릴까”라며 작품의 분위기를 확 바꿔버린다든가. 아니 ‘옥자’의 옥자 목소리까지 돌아보면 어떤 면을 쳐도 탱탱한 소리가 느껴지는 트라이앵글과 같은 느낌이다.

배우 이정은 /사진=양문숙 기자


그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숨죽인 소망을 ‘이제 됐다’로 뒤집은 작품은 ‘미스터 션샤인’이었다. 스물도 되기 전에 역병으로 서방을 잃은 자신 앞에 나타난 곱고 고운 갓난아이, 고애신을 딸처럼 길러낸 어머니이자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함안댁을 연기하며 그는 ‘이유없이 울컥하게 만드는’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을 짜냈다.

고애신을 향한 함안댁의 조건없는 사랑과 든든한 믿음, 그리고 최후의 순간 주저하지 않는 희생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전체적인 메시지와도 연결됐다. ‘고애신은 조선’이라는. 모든 이들이 고애신을 위해 혼란스런 세상에 뛰어드는 이유를 설명하며 판타지 러브스토리의 포장을 뜯어내고 민족과 국가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끌어내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이제 극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단계까지 접어들었다. ‘눈이 부시게’가 김혜자로 늙어버린 한지민의 소동극에서 치매 당사자와 가족의 이야기로, 끝까지 본 뒤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는 드라마로 기억되게 한 데에는 극 초반부터 뭔가 눈빛부터 이상했던 안내상과 이정은의 공이 컸다.

‘동백꽃 필 무렵’의 후반부는 그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정체를 밝혀나가던 흐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동백의 엄마 정숙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입버릇처럼 “내가 너 위해서 딱 하나…뭐든 딱 하나는 해주고 갈게”라며 딸의 주변을 맴돌고 어떻게든 희생하려는 모습은 이야기의 방향 자체를 추리에서 모성애로 돌려세웠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은 보여줄 것 다 보여줬는데 “아직 또 남았지”하는 것과 같았다. 고상한척 하는데 엉성한 걸음걸이를 보고 웃다가 뒤통수 한방 세게 후려치는, 반전의 키를 끝까지 틀어잡고 놓지 않는 모습을 보며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감탄했다. 비를 흠뻑 맞은 채 인터폰에 깜짝 등장한 그 순간, 말마따라 오래 기다려야만 했던 그의 가치가 팝콘 터지듯 파바바방 하고 터져버렸다.



배우 이정은 /사진=양문숙 기자


“아이고 참... 일단 저의 파트너였던 사랑하는 근세씨 상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저보고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너무 늦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제 스스로는 이만한 얼굴이나 몸매가 될 때 까지 그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다고 생각하고, 재능있는 후보들과 함께 있다가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팀워크를 위해 가장 애써주셨던 김씨네 가족 대표 송강호 선배님, 이 작품을 만드신 감독님을 볼 때마다 한 작품이 만들어질때 재능이나 천운이라 생각하는데 매일 24시간을 장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보며 정말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좀 길어도 괜찮겠죠

기생충으로 너무 주목을 받게 되니까 약간 겁이 나서...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기생충 말고 다른 작품에 몰입하려 노력했습니다. 서울에서 좀 벗어나 있었어요. 마음이 혹시나 자만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상을 받고 보니까 며칠은 쉬어도 될 것 같습니다. 배우분들 스태프분들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처럼…. 배우 이정은은 그런 사람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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