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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코로나 바이러스와 유람선의 태극기

깨진 유리창에 비친 코로나 명암

56개국 최초 자국민 물자공급 속

전파 막을 착한 사마리안법 제정

특수직역 연금 개혁 필요성 절감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사회의 진면목은 위기에서 드러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늘 푸를 것 같던 나뭇잎도 혹독한 겨울에야 모습이 달라진다. 조상들이 세한도(歲寒圖)에 소나무와 잣나무를 즐겨 그린 데도 변하지 않는 충절과 상록(常綠)의 염원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의 무게중심이 잘 잡혀 있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림이 없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대하는 우리의 자화상은 팔랑개비에 가깝다. 극과 극을 오간다.

야권은 정부의 ‘늑장 대응’을 비난하기 바쁘다. 비판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정부 여당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문재인 의원은 추경예산 편성을 비판한 적이 있다. 한국적 정치 환경은 여전히 정책의 내용보다 누가 하느냐가 우선이다. 정파 간 소원(疏遠)관계의 정도에 따라 갈등의 폭과 시기가 결정될 뿐이다. 싸우다 보니 악한 감정이 쌓이는 악순환의 반복에 빠지기 마련이다. 명분도 양심도 잊어버린 것 같은 정치권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곳곳이 그렇다.

확진자가 날로 늘어나는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현주소를 새삼 일깨워주는 깨진 거울이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장단점이 한계상황에서 잘 보이듯 종종 깨지거나 금이 간 창을 통해 세상의 단면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부분부터 보자.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걸린 태극기를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온상으로 지목받아 일본 요코하마항에 묶인 거대한 크루즈선에 타고 있는 3,711명의 출신국 56개국 가운데 자기 국민을 위해 물품을 별도로 공급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잘했다. 자랑스럽다.



명(明)과 암(暗)은 같이 가는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깨어진 거울의 다른 조각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국부 유출이 엿보인다. 한국인 승객의 대부분은 생활권이 한국이 아님에도 한국인이기에 어느 나라 탑승객도 받지 못한 대우를 받았다. 역시 좋은 일이다. 다만 한 발짝만 더 들어가 손익을 따져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생활권은 한국이 아니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해외에서 한국 국적으로 사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요즘은 은퇴한 사람들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인 승객들의 크루즈선 탑승 비용은 어떤 기준으로도 우리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이든 이전에 쓰던 지표인 국민총생산(GNP)이든 이들의 소비는 국내 경제활동과 무관하다. 원론적으로 자기 돈을 어디서 쓰든 공적인 관심사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공적 연금으로 해외에서 소비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체 재원을 소진해 국민 세금으로 내주는 공무원·교원·군인 연금이 국내 경제의 순환에 환원되지 않고 외국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내 권리만 주장하는 행위는 우리 사회 도처에 깔렸다. 수그러져 가던 코로나19의 슈퍼전파자로 의심받는 31번 확진환자가 고열이 나면서도 두 번이나 검진을 거부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대구·경북 지역에 감염 사태를 낳았다. 같이 예배드린 특정교단의 몇 명이 감염됐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본인은 악의를 품지 않았겠지만 행위의 결과로만 보면 사회심리학의 ‘방관자’나 마찬가지다. 악행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말리거나 고발하지 않은 방관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자 주요 선진국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구조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가장 좋은 대안은 시민사회에 있다. 독일의 경제가 유독 탄탄한 이유도 불의에 대한 고발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건강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민사회의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감염 의심자가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했어도 규제할 규정이 없는 게 현행법의 한계다. 공적 연금으로 외국에서 생활해도 막을 방도가 없다. 방관자로 인한 사회적 폐해를 막을 ‘착한 사마리안법’의 도입과 아울러 연금개혁이 필요한 때다. 가뜩이나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특수직역 연금을 손보지 않고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위기 속에서 국가의 내일을 생각한다. 국민의 안전과 국민경제의 존속을 담보하지 못하는 국가라면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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