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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영민 "'사랑의 불시착'은 행운처럼, '부부의 세계'는 운명처럼"

‘부부의 세계’에서 손제혁 역을 연기한 배우 김영민 / 사진=매니지먼트 플레이




‘사랑의 불시착’의 귀때기로 뜨고 ‘부부의 세계’의 손제혁으로 날았다. 배우 김영민은 상반기 화제작마다 굵직한 역할을 맡으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대한민국 배우 중에 제일 운 좋은 사람”, 올해만 따지면 그 말이 딱 맞다.

약 2개월 동안 화제의 중심이었던 JTBC ‘부부의 세계’를 마무리하고 22일 만난 김영민은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2월 종영한 tvN ‘사랑의 불시착’과 촬영이 겹치면서 쉴 틈 없었지만, 작품과 캐릭터가 큰 사랑을 받으면서 배우로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잘 될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어요. 이런 작품들을 동시에 같이 찍는 영광도 있고, 보람도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내가 제일 운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실 극 초반에는 시청자분들이 손제혁을 보고 귀때기를 떠올렸다고 한 반응도 알고 있어요. 연기하는 데 있어서 하나하나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제 부족함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분위기의 장르와 캐릭터 두 가지를 같은 시기에 할 수 있던 것은 좋은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부부의 세계’는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가 원작으로, 김영민이 연기한 손제혁은 원작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원작도 미리 챙겨 봐야 했고, 리메이크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서사를 표현하는데에도 집중해야 했다.

“원작보다 확장된 부분이 있었어요. 작가님이 한국적으로 잘 바꾼 것 같아요. 원작의 시즌 1,2를 합하다 보니까 손제혁이라는 인물도 확장됐고요. 원래 원작의 손제혁은 시즌1에 나오다가 시즌2에서는 없어져요. 또 작가님이 고예림(박선영)과의 관계를 통해서 지선우(김희애), 이태오(박해준)와는 다른 부부의 세계를 펼쳐주신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어요.”

작품은 단순한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파격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남편의 바람을 알고 나서 뒷조사를 위해 남편의 친구와 잠자리를 갖거나, 이혼한 부부가 서로를 증오하다가 잠자리를 하기도 한다. 김영민은 이런 이야기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 존재할 법한 이야기라고 여겼다.

“충격적인 장면이었지만 이태오와 지선우가 이혼 후에 자는 장면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봤어요. 부부의 관계는 일반적인 것들과 다른 것 같아요. 아이 때문도 있고, 서로 사랑했던 관계, 우리의 생각으로는 생각될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잖아요. 이혼 과정도 쉽지 않고, 이혼 후 힘들어하는 주변 지인들을 봤었는데, 우리한테 분명히 있는 일들이지만 그동안 건드려지지 않는 부분인 것 같아요. 처음 대본 리딩 할 때도 작가님이 ‘이야기되지 않는 본능 같은 것들을 건드려서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걸 통해서 세상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요.”

“손제혁이 용납 안 되는 부분은 많죠. 당연히 욕먹어도 싼 인물이지만 배우 스스로는 정당성을 갖기 위해 나름 사랑하면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연기하면서 내 안의 나쁜 것을 끌어내려고 노력했죠. 의외로 남성 시청자들도 많던데 찔리는 게 있나 싶기도 했어요. 부부의 관계나 아이나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이 그려지기 때문에 남자들도 배우는 것 같아요. 아마도 서로에 대한 배려나 존중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진=매니지먼트 플레이


‘부부의 세계’는 폭력성, 선정성 등의 이유로 19금 편성을 받았다. 그중 김영민과 김희애의 베드신은 특히 파격적이었다. 김영민은 베드신을 앞두고 걱정이 앞섰다. 일반적인 베드신이 아닌 지선우의 욕망과 욕구, 손제혁의 지질함과 못난 욕망이 보이길 원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합이 잘 맞았어요. 김희애 선배님, 모완일 감독님, 촬영 감독님의 호흡이 다 잘 맞았죠. 그 장면은 그냥 불륜의 장면이 아니라 지선우가 가장 중요했어요. 이혼을 하기 위한 정보를 얻으려는 욕망이나 욕구도 보여야 했죠. 작가님의 지문은 ‘서로 주도권을 갖기 위한’ ‘서로 이겨먹으려고 하는’이었어요. 여성 주도적인 장면이었는데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는 지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김희애 선배님이 잘 표현하신 것 같아요. 여성적인 가녀림과 강함, 목표, 인간적인 욕구도 보인 것 같아요. 비록 편집 과정에서 제가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나는 것처럼 됐지만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신이에요.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운동도 많이 했는데 그런 것보다 작품의 흐름에 맞게 잘 표현된 것 같아요.”(웃음)



데뷔 26년 차 베테랑 배우 박선영과의 연기 호흡 또한 완벽했다. 고예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박선영 덕분에 미묘한 감정과 긴장감이 가득한 두 사람의 관계가 잘 묘사됐고, 두 사람의 결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작품 속 두 사람은 재결합을 했지만, 결국 깨진 신뢰를 다시 봉합하지 못하고 이별을 택했다. 김영민은 이런 결말에 크게 만족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는 박선영 배우와 호흡이 너무 잘 맞았어요. 제일 밀도가 집약된 장면이 아닌가 싶은데 그동안의 아픔이 다 느껴졌죠. 박선영 배우는 진짜 고예림이 돼서 슬퍼하더라고요. 13, 14회를 넘어가면서 밝은 장면에서도 애잔하고 슬픈 느낌이 느껴졌어요. 촬영하면서 카메라 세팅을 할 때마다 감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저절로 그런 게 풍겨 나오니까 상대역으로서 멋있고 고마웠어요. 안타까운 부부로 만나서 헤어졌지만, 다음에는 다른 관계로 만나서 연기하고 싶어요.”

“결말은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요. 사실 손제혁은 이태오의 함정에 빠지기 전까지는 고예림과 잘해보려고 했어요. 극 중에서는 2년간의 세월이 안 보여서 갑작스럽게 보일 수는 있지만 충실하려고 하는 게 있었을 거예요. 고예림의 용서가 부부 사이를 또 다른 사랑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특히 ‘남자들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 뒤에도 다시 재결합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던져졌고, 그런 행동들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사랑해도 다시 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결말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사진=매니지먼트 플레이


대세 배우로 떠오른 김영민은 일찌감치 차기작으로 하반기에 방송될 JTBC 드라마 ‘사생활’을 선택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남의 사생활을 짓밟는 악역으로 또다시 ‘국민 욕받이’가 될 예정이다. 괄목할만한 성적과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을 남긴 만큼 차기작에 대한 부담도 있다.

“다음에는 이렇게 못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을 텐데 너무 잘 되니까 걱정도 생기더라고요. 저를 채찍질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겸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죠. 배우는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가야지 과거의 영광을 누리는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 잘 됐으면 좋겠지만, 시청률의 높고 낮음보다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에요. 운명이 있다면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했는지에 따라 그런 운명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김영민은 마지막까지 작품의 성공은 자신의 ‘운’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자신보다는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공을 돌렸다. 무엇보다 지금 받고 있는 관심과 사랑은 어느 다른 방법도 아닌 작품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저는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불시착’은 행운같이 온 작품이라면, ‘부부의 세계’는 운명적이었어요. ‘사랑의 불시착’은 밝고 즐겁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부의 세계’는 어떤 홍보도 없이 리딩도 굉장히 조용히 시작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낸 것 같아요. 같이 했던 분들에게 감사할 뿐이에요. 절대 제가 잘나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돌이켜 보게 됐어요. 또 다른 ‘사랑의 불시착’ ‘부부의 세계’로 좋은 모습 보여 드리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진=매니지먼트 플레이


/추승현기자 chu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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