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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손발...청동 피부 아래로 피가 꿈틀거린다

[구상조각의 거장 류인 회고전]

'파란에서 부활로' 소마미술관 10월4일까지

작가 사후 첫 공개작 5점 등 귀한작품 총망라

예술의전당 등 외부 소장품 한 자리에 모아

류인 1993년작 ‘부활-그 정서적 자질’




높이 7.5m에 달하는 대형 청동 조각과 이를 떠받치는 1.6톤짜리 고흥대리석 4개까지 합치니 무게만 9톤이나 됐다. 구상조각의 독보적 작가로 명성 높은 류인(1956~1999)의 유작 중 최대 규모인 ‘부활-그 정서적 자질’을 옮기기 위해 50톤급 이동식 크레인이 동원됐다. 지난 1993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앞에 설치된 이 작품이 ‘출장’ 전시 길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초대형 카고차량에 실려 도착한 곳은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 일정이 미뤄졌던 기획전 ‘류인-파란에서 부활로’가 오는 10월 4일까지 열린다. 지병으로 43세에 요절한 작가가 남긴 총 70여 점 유작 중 대표작 30여 점과 자료 등 100여 점이 선보인 전시다.

류인 ‘부활-그 정서적 자질’의 부분.


그간 건물 모퉁이에 가려져 일부만 보였던 ‘부활’을 사방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된 덕에 마치 승천하는 듯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위를 향한 남성 인체 조각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한 ‘동방의 공기Ⅰ’도 미술관 앞뜰로 잠시 옮겨왔다. 전시를 맡은 정나영 학예연구부장은 “작가 사후 처음 공개되는 4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흩어져 있는 주요 작품을 한 공간에서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1984년작 ‘파란Ⅰ’이 관객을 맞는다. 일반적으로 ‘파란’은 고난이나 시련을 뜻하지만 작가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의미로 연작을 만들었다. 정 학예부장은 “작가는 ‘파란’을 기점으로 자아를 속박하는 것에서 벗어나려 한 깨달음을 담아 인체를 생략·왜곡함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형상화했다”고 설명했다. 출품작 중 가장 오래된 1980년작 ‘자소상’은 러닝셔츠 차림의 대학생인 작가의 풋풋함이 묻어난다. 대학원 때 만든 ‘여인입상’도 작가 사후에 처음 공개됐다.

“인간의 모습은 나의 사고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다. 관객과 불필요한 설명 없이 명료하고 정직하게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체 자체의 형태적 신비로움에 매료됨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왜 그토록 인체를, 그것도 아름답지도 않은 몸뚱이를 표현하는지에 대해 조각가 류인은 이 같은 말로 “소극적인 자기만족적 취향을 떠나 인체를 하나의 표현도구로 물질화시키는” 작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류인 1987년작 ‘입산Ⅱ’


그는 격정적이고 뒤틀린 듯한 인체를 특정 부분만 잘라내 표현하며 ‘입산’ ‘입허’ 혹은 ‘하산’이라는 제목들을 붙였다. 힘줄 솟은 팔로 몸 없는 머리를 버티는 손이나 핏줄까지 드러날 정도로 힘주어 선 두 발등에서는 유난히 솟은 뼈마디가 눈길을 끈다. 작가의 미망인인 이인혜 씨는 “어려서부터 관절이 좋지 않았고 통풍으로 손발가락의 마디가 불거진 탓에 직접 본떠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이 작품에 담겼다”고 회고했다.

‘삶의 무대’라 제목 붙은 3전시실에는 설치작업 ‘흙-난지도’가 전시됐다. 작품을 위해 자신의 벗은 등을 내어준 류인의 제자 김송필씨의 작업실 앞마당에서 흙을 가져와 설치했는데, 묻어온 씨앗이 전시장에서 싹을 틔워 자라는 중이다. 문명이 짓밟은 자연에서는 인간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준엄한 목소리가 담긴 작품과 홀연히 날아든 씨앗의 생명력이 생각지 못한 조화를 이룬다. 함께 놓인 1995년작 ‘그들의 속성’은 갈라진 나무 둥치 사이에 몸을 누인 인체의 팔다리에 나무·철근이 등장하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류인은 자연과 인체의 결합 혹은 자연의 일부로서 인체에 대해 고민한 새로운 작업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류인의 1991년작 설치작품 ‘흙-난지도’(앞쪽)와 1995년작 ‘그들의 속성’




류인 1995년작 ‘그들의 속성’


류인 1991년작 ‘급행열차-시대의 변’


기차 선로 위에 줄지어 선 9개의 인체 조각이 속도감과 의지를 느끼게 하는 ‘급행열차-시대의 변’, 두상 위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연기에 사회비판 의식을 담은 ‘푸짐한 식사’, 활시위를 당기는 듯 팽팽한 긴장감이 온 몸 근육을 타고 흐르는 ‘부활-조용한 새벽’, 작가 사후에 처음 공개되는 1993년작 ‘망각의 그늘’ 등은 언제 또 실물을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꼭 봐야 할 작품들이다.

마지막 제5전시실은 작가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아카이브로 꾸며졌다. 작가인 아내가 자신의 설치작업을 위해 ‘손 석고 좀 떠달라’고 한 것이 의도와 달리 조각가의 손을 가까이서 보게 하는 자료로 남았다. 서양화가 류경채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류인의 드로잉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수채화를 빌려왔고, 대형 조각을 만들기에 앞서 사전제작 성격으로 만들었던 소형 작업들도 선보였다.

작가 부부는 연애하던 시절, 아버지의 고향이자 친척들이 살고 있던 여수로 놀러 갔다가 돌산읍의 땅을 사두고 “나중에 여기 와서 살자”고 약속했지만 병약했던 남편은 “마흔을 넘길 수 있을까” 자주 혼잣말 하다 요절했다. 부부가 서로를 그려준 드로잉, 남편이 선물처럼 만들어 준 이마 맞댄 두상 조각이 남았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류인 ‘지각의 주(柱)’


류인 ‘망각의 그늘’


류인 ‘망각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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