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한국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도시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3분의2가량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한 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만 1,00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인천에 머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외국인에게 인천은 그저 서울로 가기 위한 통과점일 뿐이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인천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도시였다. 인천은 서울·부산 다음으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지만 서울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보니 서울의 위성도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늘 서울의 변방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인천 사람들은 인천에는 없는 것을 찾기 위해 서울로 갔고, 서울 사람들은 굳이 인천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지하철이 놓이고 새로운 다리가 생기는 등 서울과의 접근성이 더 좋아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됐다.
하지만 사실 인천은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가진 도시다. 지난 1883년 개항 후 신문물이 전부 인천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대부분 인천을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개항 당시에는 인천에 정착해 그들의 문화를 한국에 소개했다. 실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지역인 중구에는 아직도 140여년 전부터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개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1800년대 후반부터 영국·미국·청나라·일본 등 각국의 조계지였던 ‘개항로’에는 차이나타운과 일본인들이 지은 건축물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난다. 1883년에 개설된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최초의 감리교회인 내리교회가 있다.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도 인천에서 시작됐다. 또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1908년에 준공된 중구 송학동 자유공원 근처에 있는 홍예문도 당시 인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흔적이다. 홍예문은 당시 항구 쪽에 자리 잡고 있던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점차 확장되면서 이동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뚫은 13m 높이의 터널이다. 당시 인천의 경제를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느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다. 또 자유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장군상과 차이나타운 입구에 서 있는 공자상은 인천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사적 배경,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준다.
개항로 곳곳에 남아 있는 옛 건축물들을 통해 과거 인천의 시대상을 그려볼 수도 있다. 한 예로 개항로에는 인천 최초의 카페인 ‘금파’가 있었던 건물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1920년대 지어진 최초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됐지만 1970년대에 지은 새 건물도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과 유사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금파는 러시아혁명 당시 망명한 사연 많은 러시아 여사장이 운영하던 카페다.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에 나오는 글로리호텔처럼 당대의 지식인이나 문인·예술가·사업가 등이 주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의 위성도시쯤으로 여겨지는 인천이 1900년대 초반 동북아시아가 격동을 겪고 있던 시기에 역사의 중심 무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장 먼저 신문물을 받아들인 덕분에 인천은 ‘힙’한 문화를 선도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천 개항로에 있는 한국 3대 라이브 재즈클럽 중 하나로 불리는 ‘바텀라인’이다. 바텀라인은 1990년대 홍대 앞에 라이브클럽이 모여들기 한참 전인 1983년에 문을 연 인천 최초의 라이브 재즈클럽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과거 바텀라인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뮤지션들이 홍대로 많이 넘어가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는 인천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 도시들이 더러 있다. 개항의 역사를 간직한 군산도 인천과 비슷한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인천이 다른 지방 도시들과 다른 점은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천시 인구는 2003년 이후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인천시 인구는 2003년부터 매년 한 해도 빠짐없이 증가했다. 2003년 257만194명에서 지난해 295만7,026명까지 증가해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기간 매해 인구가 늘어난 광역시는 인천이 유일하다. 서울조차도 지난해 인구가 줄었다. 역사적 배경이 비슷한 군산 인구는 30만명이 채 안 된다. 지방 도시들이 풍부한 역사적·문화적 자원을 가지고도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천은 분명 가능성이 큰 도시다. 또한 지금까지는 서울의 변방으로 여겨졌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바로 옆에 인구 1,00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가 붙어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 같은 인천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특히 낡고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만 신경 썼을 뿐 이를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인 개항로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갈수록 뜸해졌다. 1944년부터 75년 동안 개항로를 지키며 3대째 장사를 하고 있는 삼강설렁탕이 개항로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삼강설렁탕은 한때 하루에 쌀 한 가마니씩은 거뜬히 팔았지만 지금은 한 달에 쌀 한 가마니 파는 것도 버겁다. 개항로가 있는 중구 인구는 매년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지난해 기준 13만5,135명으로 도서지역인 강화군과 웅진군을 제외하면 인천시 행정구역 중에서 아래에서 두 번째다. 그나마 최근 영종도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에 인구가 는 것이다. 실제 중구 원도심인 개항로는 인구가 늘지 않고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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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인 2018년 ‘개항로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창길 개항로프로젝트 대표와 뜻을 함께하는 디자이너·셰프·사업가·의사·기획자 등 20여명이 모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개항로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항로의 오래된 병원이나 은행 건물들을 10여개의 개성 있고 멋진 가게로 탈바꿈시켰으며 현재 4개의 프로젝트를 추가로 준비 중이다. 특히 개항로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부수지 않고 활용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이 대표는 “개항로에는 개항 이후 현재까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건축적으로 매력 있는 건물들이 많다. 특히 인건비가 싼 옛날에 지은 건물들이라 지금 신축을 해서는 비용적으로 도저히 지을 수 없는 건물들이 많고,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시대에 지은 건물이다 보니 각각 개성이 뚜렷하다”며 “그게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옛 건축물 자체가 가진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부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최근 오래된 지역의 낡은 건물을 개성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는 개항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가장 최근에 익선동에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익선동이 뜨는 동네가 되면서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임차인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익선동뿐만 아니라 뜨는 지역 어디서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겨졌다. 개항로프로젝트가 타 지역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개항로프로젝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애초부터 건물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개항로라서 가능했던 방식이다. 이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권리금·보증금·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하는 것보다 개항로에서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사고 이자를 내는 게 더 쌀 정도로 저평가된 지역이었다”며 “가게를 계속해서 운영하고 더 많은 투자를 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처음부터 건물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단지 멋진 공간과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으로는 1% 부족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빠르게 따라 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고 경쟁력 있는 프로젝트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항로만의 특징과 강점을 찾아야 했다. 이 대표는 개항로에만 있는 노포에서 답을 찾았다. 그는 “노포는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다른 스마트폰 브랜드들이 아무리 애플을 따라 하려고 해도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는 것처럼 노포가 개항로를 다른 지역과 차별화시켜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노포를 상품화시키는 방식은 지양했다. 그간 대기업들이 상품화한 노포가 시간이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개항로프로젝트와 노포가 상생하면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개항로프로젝트에서 만든 개항면은 전국에서 최초로 쫄면을 만든 곳으로 유명한 광신제면에서 면을 가져다 쓴다. 또 개항로통닭은 1968년부터 개항로를 지키고 있는 전원공예사에 목간판을 의뢰했다. 이 대표는 “개항로가 가진 장점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노포를 운영하는 어르신들에게 일감을 주면서 경제적인 이윤을 돌려주고 그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옛것과 새로운 것의 결합을 통해 개항로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고 지속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박사는 “개항로프로젝트는 동네 노포와 장인의 재발견을 통해 세대 간을 새롭게 연결하고, 점포 단위가 아닌 동네 단위의 브랜딩을 통해 마을 재생을 시도하고 있다”며 “쇠퇴한 원도심 재생의 지속 가능한 운영방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인천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에게도 개항로의 재발견이라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개항로프로젝트는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개항로프로젝트 팀뿐만 아니라 개항로 상인들과 함께 각자가 생각하는 개항로를 즐길 수 있는 ‘개항로 코스’ 아이디어를 만들고 있다”며 “개항로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들이 개항로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며 개항로프로젝트의 외연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또 개항로를 찾는 외지인을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개항로에 거주하는 정주민을 늘리는 것도 개항로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천 개항로=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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