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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배터리'가 '포스트 반도체'가 되기 힘든 이유[양철민의 인더스트리]

2025년 메모리 반도체 규모 추월? "지나친 낙관"

반도체 대비 기술난도 낮아.. 독과점 구조 힘들어

치킨게임 발발하더라도 매년 수조원 투입해야 과점 유지

리튬에어·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도 10년내에 힘들어

LG화학 배터리 팩.




전기차 배터리는 한국의 ‘포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전기차 배터리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반도체 산업 대비 진입장벽이 낮은데다 완성차 업체 중심의 배터리 생태계, 과다 경쟁에 따른 낮은 수익률 등으로 ‘포스트 반도체’가 되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LG화학(051910)·삼성SDI(006400)·SK이노베이션(096770) 등 이른바 한국 배터리 3사 또한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005930)가 보여줬던 ‘초격차’ 전략을 모방하고 있지만 메모리반도체와 다른 시장 환경 때문에 우위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5년뒤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 넘어선다고?


“2025년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설 것입니다.”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은 지난해 10월 개최된 ‘더배터리 콘퍼런스’에서 “2024년에는 전세계 완성차의 15%인 약 1,300만대가 전기차일 것이며 2025년 배터리 가격은 1kWh당 100달러 안팎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김 사장은 2018년 기준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약 1,500억 달러 규모라는 점에서 7년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이를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본 듯하다. 최근 일부 증권사 보고서 등에서도 해당 발언을 근거로 2025년이면 전기차 배터리가 ‘포스트 반도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반면 조금만 계산을 해 보면 이 같은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실제 전기차배터리 1kWh당 가격을 김 사장이 전망한 것 처럼 100달러로 가정할 경우 2025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1,500GWh(1GWh=1,000,000kWh)까지 성장하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 SNE리서치가 추정한 2018년 전기차 배터리 규모가 100GWh라는 점에서 7년만에 15배 성장해야 가능한 수치로 연평균 성장률이 48% 정도는 돼야 한다.

다만 시장 조사기관 IHS마킷이 전망한 향후 7년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25% 내외라는 점에서, 연평균 48%의 성장률을 기록하려면 성장 그래프가 시장 기대치 대비 훨씬 가팔라야 한다. 반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올 상반기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55.3GWh) 대비 뒷걸음친 42.6GWh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25년 시장 규모 1,500GWh 달성이 쉽지 않은 이유다.



무엇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5년 뒤 뛰어넘으려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2025년에도 1,500억 달러 규모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종료로 이익이 급감한 지난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1,115억달러(가트너 기준)로 전년 대비 20% 이상 줄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수요 확산으로 예년 규모의 매출 회복이 가능할 전망이다. 세계반도체시장 통계기구는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1,75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추산하기도 하는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꾸준한 성장세가 예상된다. 특히 자율주행차·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보급 활성화로 오는 2025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는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모든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5년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뛰어넘기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독과점 어려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설사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만큼 성장한다 하더라도 주요 사업자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000660) 같은 글로벌 D램 시장 1·2위 사업자만큼의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D램 시장점유율은 지난 연말 매출액 기준 삼성전자(43.5%)·SK하이닉스(29.2%)·마이크론(22.3%) 순이다. 여타 업체의 점유율은 5% 내외로 3개 사업자가 이끄는 확실한 ‘독과점’ 시장이다. 이 같은 독과점 구조 덕분에 ‘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기에는 이들 3개 사업자의 D램 부문 영업이익률만 40%대에 이르며, 불황기에도 20% 정도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독과점의 힘이다.

반면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자(35.5%), 키옥시아(18.7%), 웨스턴디지털(14.7%), 마이크론(11.3%), 인텔(9.7%), SK하이닉스(9.6%) 순이다. 낸드플래시는 6개 사업자가 이끄는 과점시장 구조로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지난해부터 모두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영업손실을 기록중이다. D램과 달리 6개 사업자가 과점하고 있는데다, D램 대비 기술 진입장벽이 낮아 가격 차별화가 쉽지 않은 것 등 이유는 다양하다.

테슬라 모델 3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 또한 낸드플래시 시장과 구도가 비슷하다. 올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LG화학(24.6%)·CATL(23.5%)·파나소닉(20.4%)·삼성SDI(6.0%)·BYD(6.0%)·SK이노베이션(3.9%) 순이며 올 2·4분기 기준 LG화학을 제외하곤 여타 업체 모두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서 영업손실을 기록중이다. 이들 상위 6개 사업자를 제외한 나머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점유율이 15.6%에 달한다는 점에서 상위 사업자들에겐 오히려 낸드플래시 시장 대비 상황이 좋지 않다. 여기에 중국 CATL이 자국 전기차 시장이 되살아나며 올 하반기에는 1위를 탈환할 기세이며 유럽 노스볼트 등 상위 10개 업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다크호스’도 여전히 많다. 전기차 배터리 주요 사업자들이 D램 시장에서만큼의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치킨게임' 벌어지더라도.. 승자될지는 미지수




D램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치킨게임’이 벌어져 몇몇 업체가 파산하고 독과점 구조가 고착화 된다면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10여년 전 전개된 D램 치킨게임에서 독일의 키몬다(2009년 파산)와 일본의 엘피다(2012년 파산) 등이 쓰러지는 와중에 살아남아 독과점에 따른 막대한 수익을 누리고 있다. SK하이닉스 또한 마찬가지다.

D램 치킨게임 역사를 살펴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모진 풍파속에서 과감한 투자 등으로 결국 승자가 됐음을 알 수 있다. 1차 치킨게임은 2007년경 대만 업체들이 D램 생산량을 늘리며 2년만에 관련제품 가격이 10분의 1수준까지 떨어지며 발발했다. 한때 세계 2위의 D램 생산업체이자 차량용 반도체 업체의 절대강자인 인피니온의 자회사이기도 했던 키몬다가 대규모 손실에 허덕이며 파산을 선언한다. 당시에도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D램 업체들은 모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누구든 치킨게임의 패배자가 될 수 있는 구도였다.

D램 시장의 2차 치킨게임은 대만과 일본 업체들의 잇딴 생산라인 증설로 2010년께 발발한다. 1차 치킨게임 당시 일본 정부의 지원과 채권단의 자금 지원 등으로 살아남았던 엘피다는 2012년 D램 가격 급락과 ‘엔고’라는 파고에 쓰러지고 만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


전기차 배터리는 이제 막 태동한 시장이라는 점에서 ‘규모의 경제’를 갖춘 몇몇 업체를 중심으로 수년내에 치킨게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한국 배터리 3사와 자국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은 CATL, 도요타 등 자국 완성차 업체와 협업이 가능한 파나소닉 등이 승자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물론 이들 사업자 또한 수년간 낮은 영업이익 또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문제는 반도체 대비 진입장벽이 낮은 배터리 업계 특성상 치킨게임이 상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후발 사업자가 아예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반도체 부문에만 매년 수십조원을 투자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27조3,456억원), 2018년(23조7,196억원), 2019년(22조5,649억원)을 합쳐 최근 3년간 반도체 부문에만 73조원이 넘는 투자를 집행했으며 올해는 이재용 부회장의 ‘초격차’ 전략 기조 강화에 따라 30조원에 가까운 투자가 예상된다. SK하이닉스 또한 2017년(10조3,000억원), 2018년(17조원), 2019년(12조7,000억원) 등 매년 매출의 3분의 1 가량을 설비투자금액으로 집행하며 중국 등 후발업체가 진입하지 못하도록 확실히 진입장벽을 쌓았다.

테슬라 모델 3


반면 주요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투자금액은 매년 수조원에 불과한데다 부채규모가 최근 급속히 늘어나며 투자 확대가 쉽지 않다. 실제 올 1·4분기 기준 LG화학의 부채 규모는 19조7,050억원으로 2018년 말(11조6,220억원)과 비교해 15개월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의 올 1·4분기 부채는 22조1,665억원으로 2018년(16조6,791억원) 대비 대폭 늘었으며 올 상반기 영업손실만 2조2,149억원에 달한다. 이들의 이익이 빠르게 증가하지 못하면 추가 설비투자가 더딜 수밖에 없으며 향후 ‘빅5’ 업체만 살아남는 과점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이익의 대부분을 설비투자에 쏟아 부어야 한다.

범용제품 아닌 배터리팩.. 완성차 업체가 주도권 쥘 수밖에 없어


반도체와 다른 전기차 배터리 특유의 산업 생태계도 문제다. D램 등 대부분의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제품으로 스마트폰·PC·클라우드 업체 등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서 관련 제품을 구매해 자사 제품에 탑재하면 된다. 메모리 반도체 업체 입장에서는 3세대 10나노급(1z) D램 등 초미세 반도체 생산에 역량만 집중하면 판매처가 알아서 확보되는 구조다.

반면 전기차 배터리는 완성차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해당 차량에 최적화된 배터리팩 등을 별도 만들어야 한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유럽·미국 등 완성차 업체 근처에 배터리 공장을 준공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전기차 완성차 업체가 일단 시장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는 니켈·망간·코발트 등 양극재에 들어가는 주요 화학물 비율을 비롯해 음극재·전해질·분리막 등 4대 요소간 혼합 기술 및 양산 수율이 가장 중요하다. 국내 배터리 3사의 해당 부문 경쟁력이 중국 등 여타 업체 대비 매우 높은 수준이긴하지만 ‘나노(10억분의 1m)’ 단위의 제품을 양산중인 메모리 반도체 업계 대비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내 3사가 제작한 배터리 제품은 여타 업체 대비 밀도가 높다는 강점이 있지만, 향후 전기차 충전 인프라 등이 확충돼 현재 내연기관 차량이 기름을 넣듯 ‘언제 어디서든’ 쉬운 충전이 가능할 경우 이 같은 기술 우위의 장점도 상당부분 희석될 전망이다.

기술격차 확보도 쉽지 않다. ‘전고체 배터리’나 ‘리튬에어 배터리’ 등은 아직 상용화까지 10여년 가량 걸리는데다 LFP 배터리 등 일부 기술은 베트남의 빈그룹이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기술 난도가 낮다. 설립된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스웨덴 노스볼트가 폭스바겐의 지원을 등에 업고 최근 독일 BMW와 20억 유로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 또한 전기차 배터리 진입장벽이 생각만큼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테슬라가 자체 배터리 생산을 계획하는 등 완성차 업계의 배터리 내재화 움직임도 주요 변수다. 아람코와 일부 내연기관 업체들이 중심이 돼 전기차 수준의 친환경성을 갖춘 내연기관 차량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로서는 향후 메모리 반도체 수준의 수익을 기대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지나치게 많은 셈이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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