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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24시] 마르크스 망령이 맴도는 한반도

홍관희 전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1848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한 말이다. 그들이 창시한 공산주의가 서서히 태동·확산하는 것을 자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수십년 전에 폐기 처분된 이 낡은 이데올로기가 사자(死者)의 망령처럼 21세기 한반도를 맴돌고 있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자생적 질서’라고 불렀는데 시장을 통한 교역활동이 역사와 더불어 인간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려왔음을 통찰한 것이다. 인간은 시장활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자유시장은 재화의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의 역동성을 신호등으로 삼아 경제생활을 효율적이고 힘차게 영위하게 하는 절묘한 창조물이다. 가격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권력으로 시장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주택문제 등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는 그 대표적 사례일 듯싶다.

자유시장은 부득이 부의 불평등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시장 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앨 수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된다. 자칫 자유가 가져다주는 행복과 생산성 자체를 말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원칙을 견지하면서 결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제·임대차법 등 일련의 급진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시장 원리를 거스르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몰이해가 이 정권 최대 문제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시장을 가장 혐오한 사람은 아마 마르크스일 것이다. 그는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이 불평등을 초래한다며 자본주의 자체를 만악의 근원으로 규정하고 이를 ‘혁명’의 이름으로 철폐할 것을 주장했는데 인류에 끼친 해악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의 오도된 확신은 인민민주주의 독재와 계획·명령경제의 무모한 추진으로 이어져 수천만의 인명이 희생됐고 결국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을 자초했다. 특히 기존 ‘상부’ 구조의 타도를 혁명으로 정당화하면서 법치와 절차적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풍조를 배태시켰다. 후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후 시민사회운동 형태로 공산 체제로의 사회변혁을 도모하는 전술도 발전시켰다.



마르크스·레닌을 계승한 스탈린식 소비에트 체제로 출발한 북한 정권이 세습왕조로 타락하면서도 70년 이상 존속한 것은 역사의 수수께끼이다. 다행히 폭정이 몰락을 향하면서 단말마적 행태를 보이는 것은 역사의 섭리다. 김정은이 코마 상태인지 여동생에게 권력을 위임했는지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붕괴가 여부가 아닌 시기의 문제이며, 그날이 머지않다는 것이다.

경제의 급속 추락도 체제 몰락의 가속화 요인이다. 올 성장률이 -8.5%까지 예상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생명줄인 북중 교역이 95%나 감소해 상황이 최악인데 체제 생존에 필수적인 개혁·개방은커녕 군사 강성대국을 향한 신형 전략무기 개발에 올인한다. 그런데도 우리 통일부는 비핵화와 급변 대비는 제쳐놓고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물물교환 방식까지 동원해 북한 지원에 몰두한다. 북한 기업의 국내 영리활동을 보장하는 남북관계법 개정도 어불성설이다. 북한이 민간을 앞세운 침투공작을 벌일 때 속수무책일 것이다.

나중에 이런 실정의 책임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그 폐해는 권력자 한 사람 또는 권력 그룹에 한정되지 않고 전 국민에게 미친다. ‘나라가 네 것이냐’는 절규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현 정권의 근본 문제는 단순히 편 가르기식 정치공학 차원이 아니다. 현실과 괴리된 비합리적 낡은 이념·노선에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속성상 완전을 추구하나 결코 완벽한 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라인홀드 니부어는 갈파했다. 현실을 외면하는 극단적 이상주의·근본주의는 그래서 위험하다. 그릇된 이념에의 맹신은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을 촉발하는 마약과 같다.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이라는 헤겔의 지적에 유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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