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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구겐하임으로…'행위예술'은 어떻게 미술관 소장품이 될까?

세상 떠들썩했던 카텔란의 1억8,000만원 '바나나'

구겐하임미술관에 보증서와 설명서 만으로 '소장'

경기도미술관, 1970~80년대 행위예술 2점 소장

개념미술 시대의 결과 못지않은 '과정' 의미 강조

지난해 12월 갤러리 페로탱이 아트바젤마이애미에 참가해 선보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코미디언’ /서울경제DB




지난해 연말, 세계 최정상급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선보인 바나나 하나 때문에 전 세계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두꺼운 은색 테이프로 진짜 바나나를 벽에 붙여 놓은 작품명 ‘코미디언’. 풍자의 대가로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15년 만에 선보인 신작 조각으로 주목 받았고, 3개의 에디션을 가진 이 작품이 각 12만 달러에 2점이나 순식간에 팔려 화제였으며, 이 작품을 미국의 한 행위미술가가 “배가 고프다”면서 먹어버려 파란을 일으켰다. 이 문제적 작품이 최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소장품이 됐다. 뉴욕타임즈 등 외신은 19일(현지시간) “익명의 수집가가 15만 달러(약 1억8,000만원) 짜리 조각 ‘코미디언’을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바나나가 미술관 수장고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은색 테이프도 없었다. 미술관에 입고된 것은 ‘진품 보증서’와 “땅에서 175㎝ 높이에 바나나를 설치하고 7~10일에 한번씩 교체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14장 짜리 설치 안내서가 전부였다.

작가 성능경이 1976년에 벌인 행위예술 ‘신문읽기 퍼포먼스’ /사진제공=경기도미술관


변기를 뒤집어 전시장에 내놓은 마르셀 뒤샹 이후 현대미술이 점점 더 난해해지는 가운데, 미술관은 이 같은 개념미술이나 행위예술을 어떻게 소장품으로 확보할까?

최근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이 국내 국공립미술관 최초로 행위예술인 ‘퍼포먼스 분야’의 작품을 구입했다. 1970년~80년대 국내에서 개념미술로 독보적인 활동을 보여준 성능경의 ‘신문읽기’, 홍명섭의 벽에 종이 찢어붙이기 등의 당시 현장의 사진들을 미술관이 소장품으로 확보했다.

작가 성능경은 지난 1976년 서울 안국동의 서울화랑에서 진행된 ‘4인의 이벤트’에 참여했다. 여기서 성 작가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읽은 부분만을 면도칼로 오려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벌였다. 작품 ‘신문읽기’의 시작이다. 작가는 당시에 대해 “전시 약 2개월 전부터 전시기간 종료 시까지 매일 발행되는 동아일보를 집으로 배달 받거나 전시장에서 구입해 기사 부분은 오려내 바닥에 설치한 반투명 청색 아크릴 통 속에 투하하고, 기사가 제거된 너덜너덜한 신문은 벽면에 부착해 놓은 흰색 패널에 다음 날까지 전시하면서 당일 신문이 새로 발행되면 하루가 지난 벽면의 신문을 떼어내 청색 아크릴 통 옆에 위치한 투명 아크릴 통 속에 분리 안치하며, 새 신문으로 교체하는 같은 행위를 매일 계속 반복 수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신문읽기’는 1970년대 당시 ‘이벤트’라 불린 행위예술이며, ‘S.T(Space&Time)’에 참여한 성능경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경기도미술관 측은 “작품 ‘신문읽기’에 주목하는 것은, 행위와 행위의 결과를 구분해서 나눌 수 없는 일체형 퍼포먼스라는 점”이라며 “신문을 구입해서 낭독하고, 낭독 부분을 오려내고, 다시 낭독과 오려내기를 반복하는 ‘수행성’이 퍼포먼스의 핵심이기 때문이고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성능경은 지난 2010년 12월 경기도미술관에서 열린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 전시 개막식에서 1976년의 ‘신문읽기’를 2010년 버전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홍명섭의 1978년 행위예술 ‘de-veloping ; the wall’ /사진제공=경기도미술관


작가 홍명섭은 1978년 대전문화원의 첫 개인전에서 개념적 설치미술로 종이를 찢어 벽에 붙이는 ‘de-veloping ; the wall’을 발표했다. 당시 작가는 “잊혀진/무의식적 공간현실과 벽면 현실을 양성화하여 생생한 시각현실로 회복시킬 수 있을 때, 인식 저 너머의 새 현실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고, 1986년에는 “그것은 대체로 보존 될 개체성의 의미가 없는 것들이어서 생활을 궁리하듯 끌어나가고 용변을 보듯 수월히 행하며 집착 없이 끝나며 쓰레기처럼 결과물들은 폐기되곤 한다. 이렇게 생명의 주기와 닮은 ‘일시성(temporality)’의 본성과 함께 형식의 파기 또한 흥미로운 것”이라고 선언했다. 1970~80년대 개념적 설치미술을 집중적으로 수행한 홍명의 작업은 “결과로서의 ‘품(品)’이 아닌, ‘작(作)’에 집중한 결과”였고 작가 역시 “생명의 주기와 닮은 ‘일시성’의 본성과 함께 형식의 파기 또한 흥미로운 것”이라거나 “마음에 갇혔던 신체, 정신에 갇혔던 물상, 의식에 갇혔던 물성에서 해방되는 자재의 수평을 향해 흐르는 감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설치작품 ‘de-veloping ; the wall’은 그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작품에 대한 작가의 조건이 “전시 후 작업 잔여물은 파기 되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간 어느 미술관도 소장할 수가 없었다. 경기도미술관 측은 “그럼에도 작가는 여러 기획전에서 그 스스로 설정한 설치 매뉴얼에 따라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고, 그것은 ‘개념적 설치미술’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고 의미를 밝혔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들 작품을 포함한 신소장품 28점을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안미희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경기도미술관은 도립미술관으로서 앞으로도 우수한 소장품의 확보로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소장품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도 기획하고, 또한 퍼포먼스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및 수집으로 이 분야의 의미있는 컬렉션을 구축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경기도미술관의 설립취지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우수한 소장품을 지속적으로 수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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