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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트럼프의 미국, 반도체와 군사력

김영필 뉴욕특파원

韓, 中에 경제의존도 높다지만

美가 제재 땐 무너질 '사상누각'

대만의 對美 구애 짙어지는 때

'전략적 모호성'으론 국익 놓쳐





지난 4월 유가가 폭락하고 있을 때 미 경제방송 CNBC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아지즈 빈 살만 에너지부 장관을 인터뷰했다. 얼마 전 “유가를 두고 게임을 벌이는 이들에게 지옥에서처럼 비명이 나오게 해주겠다”고 한 인물이다. 당시 빈 살만 장관은 CNBC에 감산 규모가 예상보다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 살만 사우디 국왕의 넷째 아들인 그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형으로 왕가 실세기도 하다.

미국에 와서 자괴감을 느낀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언론 가운데 평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에게 유가를 물을 수 있는 곳은 장담컨대 없다. 그동안의 취재경험으로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아무 때고 사우디 왕가 실세에게 “너네 감산하느냐”고 쉽게 물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런데 CNBC는 가능했다. 물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라는 뒷배 덕이지만 말이다.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중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한국의 존재는 미국이 허락하는 데 달려 있다”는 부분이 많은 이를 불쾌하게 한 것 같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삼성과 현대자동차, 방탄소년단(BTS)이 있는 나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상대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는 국가를 트럼프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장사꾼의 허풍이라고 흘려들을 수만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나 SMIC 같은 중국 기업에 붙이는 ‘블랙리스트’ 딱지가 우리를 향한다고 생각해보자.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삼성과 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최강자지만 퀄컴과 인텔을 비롯한 미국 업체의 부품과 기술 없이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에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쓰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자동차를 비롯한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양해군이 없는 우리나라는 중동산 원유 수송로인 말라카해협만 봉쇄당해도 경제가 몇 달 내에 완전히 멈춰 선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치 자신이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댄 것은 이 같은 미국의 힘을 염두에 둔 것이다.

2020년, 미국의 힘은 반도체와 군사력에서 나온다. 중국도 뾰족한 수가 없다.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지만 며칠 전 유엔 총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은 냉전이나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다”며 한발 물러서고, 화웨이 회장이 “퀄컴칩을 주면 기꺼이 쓰겠다”고 구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론은 명확하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공식은 미국이 우리나라에 반도체와 기술공유, 수출입을 위한 항해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하다. 이것 없이는 경제도 없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낮지 않다. 민주당도 중국에는 강공책을 펴기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하나 더. 미중 갈등 와중에 대만과 미국 사이의 반도체 동맹이 더 두터워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고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아예 미국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요구하고 나섰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ARM을 품은 엔비디아의 창업주는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이고 앞으로 인텔을 넘어설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AMD의 최고경영자(CEO)는 대만계 리사 수다.

대만이 미국에 다가가고 있는 동안 미중 사이의 전략적 모호성은 우리의 입지를 더 좁게 만들 수 있다. 12억 중국 시장은 보기 나름이다. 화웨이가 비틀거리면서 삼성이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에 8조원에 육박하는 5세대(G) 통신장비를 따냈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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