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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발모리천하(拔毛利天下)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정강이 털 뽑아 천하 이롭게 하는것도

정도 차이 있지만 희생의 본질은 같아

코로나 장기화 영향 기본권 제한 논란

방역 수칙 지키고 책임질 땐 보장돼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논점이 드러난다. 초기에 코로나19 전파를 관리할 수 있는 의료자원 부족이 큰 문제가 됐다. 특히 대구·경북지역의 확진자가 급증할 때 의료붕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료자원은 현실을 따라가기에 버거웠다. 이어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수칙을 제시했지만 마스크 착용과 자가격리 준수를 지키지 않은 사례가 논란이 됐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과 자가격리 준수는 감염을 예방하는 백신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어기면 집단감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를 두고 의견이 크게 갈리기도 했다. 방역에 치중하면 자영업을 비롯해 경제가 위축되고 경제를 활성화하려 하면 방역이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확연히 줄어들지 않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헌법의 자유권이 논란이 되고 있다. 추석과 개천절 그리고 한글날에 집회와 시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일어났다. 몇몇 단체는 헌법의 권리로서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방역을 위해 집회를 제한하겠다고 맞섰다. 또 대부분의 국민이 국외만이 아니라 국내여행까지 자제하는 상황에 고위공직자의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올바른 처신인가를 두고 말들이 많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라면 집회와 시위의 권리, 여행을 비롯한 이동의 권리는 보장해야 하며 이를 제한할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이 어떻게 어느 정도 제한될 수 있는지가 문제 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양주(楊朱)는 개인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쳐 크게 문제를 일으켰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으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생명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물질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경물중생(輕物重生)으로 표현했다.

동시대 사람들, 특히 맹자는 이러한 양주의 주장을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양주의 말을 인용하면서 제 부모도 모르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비난했다. “양주는 자신을 위하는 주장을 펼치며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양주취위아·楊朱取爲我, 발일모이리천하·拔一毛而利天下, 불위야·不爲也.)” 맹자가 생각하기에 정강이의 털 한 올을 뽑는다고 해서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런데도 양주가 털 한 올을 뽑지 않겠다고 하니 이는 자기 자신만이 소중한 줄 알 뿐 자신의 부모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제자백가 중에 양주의 책은 전해지지 않는다.



양주의 입장은 맹자와 다르다. 정강이의 털 한 올이 사소할지 몰라도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일부분을 나의 생명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용한다면 더 큰 희생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강이의 털이 팔이 되고 다시 팔다리가 되고 결국 사망으로 이어진다. 이때 사소할지라도 정강이의 털이 희생이라고 한다면 죽음도 희생이다. 희생의 정도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그 본질에는 어떠한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맹자가 양주를 짐승 같은 이기주의자로 볼지 몰라도 양주는 자신의 신체 중 일부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수 없다며 위아(爲我)를 주장하는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양주의 사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둘러싸고 엄청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방역수칙이 특정 개인이나 정부만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면 헌법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은 동의를 받기 어렵다. 방역수칙이 집단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이라고 공감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라 기본권의 제한을 받아들이고 있다. 방역을 이유로 기본권을 무조건 제한하는 것도, 기본권 보장을 이유로 방역수칙을 위반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혹시 모를 사안에 책임을 명확하게 질 경우 기본권은 보장돼야 한다. 자유는 제한할 수 있지만 억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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