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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전 '알파칩'서 쓴맛 본 삼성...대형칩 제조기술 1등 넘본다

[이상훈의 재미있는 반도체 이야기-모바일AP' 만들던 삼성, CPU·GPU도 수주]

1990년대 '알파칩' 생산했던 삼성

경쟁사 인텔의 견제로 꿈 접었지만

최근 IBM·엔비디아 물량 잇단 수주

생산라인 현황 등 종합 경쟁력 입증

프로세서 핵심기술 습득 기회까지

"TSMC 독점체제 깨뜨렸다" 분석도





최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엔비디아의 암페어 그래픽처리장치(GPU)인 지포스(GeForce) RTX 시리즈를 삼성전자가 가져간 것이다. 앞서 삼성 파운드리는 IBM의 서버 중앙처리장치(CPU)도 수주했다. 이번에 따낸 물량은 이전부터 삼성 파운드리가 만들어왔던 칩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보다 큰 칩이라는 데서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엔비디아 암페어 다이의 경우 크기가 최대 627㎟로 상대적으로 더 크다. 다이는 웨이퍼에서 구현되는 각각의 칩 하나하나를 뜻한다. 삼성이 이런 엔비디아 칩, IBM의 칩을 맡았다는 얘기는 한 마디로 파운드리 기술 수준이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칩이 크다는 것은 칩 안에 기능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더 복잡하다. 파운드리 입장에서 보면 큰 칩은 작은 칩에 비해 구조적으로 더 복잡해 만들기 어렵다. 당연히 수율 잡기도 더 까다롭다.

그래서 삼성 파운드리가 모바일 AP에서 더 나가 CPU·GPU를 수주한 의미는 각별하다. 이번 엔비디아의 GPU만 해도 코어가 많게는 만개 넘게 들어가 있다. 칩 공간에 연산을 담당하는 코어가 많다는 것은 자동차에 전자장비가 많이 배치된 것과 같다. 칩도 복잡한 기능을 많이 담게 되면 고장 나기 쉽다. 100개 기능 중에 1개 기능이 탈이 날 확률과 10만개 중에 1개가 고장 날 확률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버그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파운드리의 능력이다. 이번 수주를 통해 삼성 파운드리가 엔비디아가 원하는 기술 수준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기술력이 받쳐주지 못하던 과거에는 칩을 여러 개로 쪼개 한 인쇄회로기판(PCB) 안에 박아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면 칩의 성능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칩 안에서 데이터 정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PCB 안에서 데이터 정보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고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칩에 모든 기능을 욱여넣고 큰 칩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칩을 작게 만드는 이유는 스마트폰과 같은 작은 정보기술(IT) 기기에 넣어야 해서다. 작은 칩의 장점은 공간을 조금만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IT 기기에서는 공간이 협소한 만큼 칩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칩을 작게 만들면 칩 내에 있는 소자 간 간격이 좁아져 전력 등의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칩이 공간 제약을 덜 받을 수 있다면 칩 안에 연산을 담당하는 코어도 더 집어넣을 수 있고 열 방출에도 유리해 고성능으로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바일 AP와 같은 작은 칩은 성능보다는 저전력에, CPU와 GPU는 성능에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 있다. 삼성 파운드리가 이제 이전보다 큰 칩을 제작하는 기회를 잡은 만큼 TSMC가 독점하던 대형 칩 시장을 깼다는 분석이 나올만하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점은 삼성이 8나노 공정으로 TSMC의 7나노와 경쟁해 엔비디아의 칩 수주 경쟁에서 이겼다는 점이다. 반도체에서 공정 전환이 가장 빠른 분야가 파운드리라지만 삼성이 8나노로 TSMC의 7나노를 꺾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단 공정이 더 최신이라고 수주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는 게 엔비디아 수주 건에서 드러났다. 팹리스의 설계도에 맞춰 칩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은 기본이고 납품 단가, 활용 가능한 생산 라인 현황 등 총체적 경쟁력을 따져야 한다는 게 새삼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CPU·GPU의 삼성 수주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TSMC의 생산 라인에 여유가 없어 삼성이 물량을 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낙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삼성의 기술력이 받쳐주니까 가능한 것이다. 삼성의 파운드리 라인이 거대 팹리스의 프로세서 물량을 소화할 만한 여유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장점이라는 얘기다.



사실 삼성은 과거에 CPU를 만든 적이 있다. 바로 알파칩이다. 반도체가 4차 산업혁명의 총아가 되면서 이전보다 덜해지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메모리는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메모리를 하게 되면 이미지센서·CPU·GPU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경기 변동에 실적 부침을 줄이고 메모리와 시너지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삼성은 일찌감치 CPU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미국의 덱과 손을 잡고 지난 1997년부터 ‘알파칩’을 생산했다. 덱이 설계하고, 삼성이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은 이때 파운드리 사업의 물꼬를 텄고, 설계 인력이 덱에 파견도 가면서 설계 기술도 배웠다고 한다. 당시 알파칩의 성능은 인텔 CPU보다 연산 속도가 4배나 빨랐다.

삼성은 이듬해인 1998년에는 본격적으로 CPU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덱과 API라는 합작회사까지 만들었다. 삼성이 지분 75를 갖고 덱이 25를 갖는 조건이었다. 인텔이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문제는 알파칩이 차세대 윈도 운영체제인 ‘윈도’와 호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정악화를 겪었던 덱이 알파칩용 윈도 개발지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덱은 1998년 개인용 PC 제조업체 컴팩에 인수된다. 가뜩이나 알파칩을 경계하던 인텔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인텔은 컴팩의 알파칩 사업부를 2001년 통째로 사들인다. 알파칩의 싹을 자르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인텔이 설계자산 등 알파칩 원천기술을 손에 넣자 삼성전자도 손을 들었다. API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삼성의 CPU 사업에 대한 꿈은 물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런 과거를 알고 이번 삼성의 IBM 서버 CPU와 같은 프로세서 수주 소식을 들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삼성으로서는 IBM과의 작업을 통해 CPU, 엔비디아를 통해 GPU 제조의 핵심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1990년대 알파칩을 만들어 봤던 삼성이 다시 CPU·GPU 제작에 참여해 레퍼런스를 쌓게 된다는 뜻이다.

흔히 CPU·GPU 수주 경쟁에서 TSMC가 삼성보다 나은 점으로 거론되는 게 이전에 이런 칩들을 만들어봤다는 경험이다. TSMC는 엔비디아·AMD와의 거래를 통해 최고의 프로세서를 만들어봤다는 것이다. 이제 삼성도 IBM CPU, 엔비디아 GPU를 경험하면서 같은 조건에 서게 됐다. 앞으로 진짜 인텔이 CPU와 GPU를 외부 파운드리에 내준다고 할 때, 그리고 TSMC에 모든 프로세서를 의존하고 있는 AMD가 다른 대안을 찾을 때 IBM CPU, 엔비디아 GPU를 만들어본 삼성의 경험은 큰 장점이 될 것이다.

앞으로 수주 단가를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를 두고 TSMC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TSMC로서는 고객층을 다양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펴고 있는 삼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팹리스가 찾는 영순위 파운드리는 바로 자신’이라는 점만 강조하기에는 치고 올라오는 삼성의 기세가 무섭다. TSMC로서는 웃돈을 쳐줘서라도 자신에게 칩을 맡기려는 팹리스에 생산 라인을 우선 배정하면서 미세 공정 개발 경쟁에서도 삼성을 제치기 위해 바짝 고삐를 죌 게 확실하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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