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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1.000프랑에 산 피카소 작품 6년 뒤 12배로

■예술가, 그 빛과 그림자- 예술가의 성공과 컬렉터의 역할

=이연식 미술사가

佛 평론가들에게 조롱받던 인상파

딜러 뒤랑뤼엘이 美전시 계기 인기

앙드레 르벨 등 투자자들 경매 후

피카소 전위예술 대표주자로 명성

데미언 허스트는 英컬랙터 전시로

현대미술 주도하는 유명인 자리에

파블로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 (1905년)




앨런 보니스는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라도 주변의 몇몇 동료, 눈 밝은 소수의 평론가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또 평론가의 인정을 받은 후 컬렉터에게, 마침내 대중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평론가를 건너뛰고 컬렉터에게 선택되면서 예술가와 사조가 부각된 예가 적지 않다. 19세기의 인상주의 그룹 예술가들은 프랑스 평론가들에게 조롱에 가까운 반응을 얻었지만 딜러 폴 뒤랑뤼엘이 미국으로 가져가 전시한 인상주의 작품들을 미국인들이 열광적으로 사들이면서 인상주의의 명성은 프랑스로 역수입됐다.

1914년 3월 파리 오텔 드루오에서는 ‘곰의 가죽’이라는 미술품투자자 집단이 주최한 미술품 경매가 진행됐다. 사업가 앙드레 르벨이 주도한 이 집단은 10년 전인 1904년부터 앙리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한 전위예술가들의 작품을 사들였고 마침내 그동안 모은 작품을 경매에 부쳤다. 이 경매로 투자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이들이 1908년에 1,000프랑을 주고 구입했던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은 1만2,650프랑에 낙찰됐다. 이 경매를 거치면서 피카소는 전위예술의 대표주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피카소를 줄기차게 옹호했던 시인이자 평론가 기욤 아폴리네르 또한 르벨의 사업과 수완이 지닌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7년에 열린 센세이션 전시 포스터


영국의 컬렉터 찰스 사치 또한 이런 쪽으로 유명하다. 광고재벌 사치는 1980년대부터 현대미술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사모았으며 1985년 ‘사치갤러리를 열더니 1997년에는 자신의 컬렉션으로 ‘센세이션’ 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 전시를 기점으로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유명인이 됐고 사치 또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컬렉터가 됐다. 딜러와 컬렉터가 주도한 이런 결정적인 국면에서 평론가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예술가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무엇이 예술가의 성공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 대중이 좋아하면 좋은 예술인가. 좋은 예술과 성공한 예술은 종종 어긋난다. 유행과 감성과 명성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살아서 명성을 누리고 죽은 뒤 잊히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살아서는 외면받고 죽은 뒤 사랑받으면 성공인가.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최소단위로 규정하자면 스스로의 만족이나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바깥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감정도 달라지고 자신이 추구하는 긍정적 가치를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작업도 이어가고 생활도 할 수 있을 테니 크게 바라지는 않더라도 돈과 명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술가로서 돈과 명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90세를 맞은 영화배우이자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성공의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그처럼 길게 눈부신 성공을 거둬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운에 대한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오랜 성찰의 결과물이다. 자신의 성공에 대해 겸손을 떤 게 아니라 성공의 불가해하고 모순적인 성격 앞에서 찾은 신중한 대답이다.

예술가의 성공이란 천재성이든 자질이든 품성이든 ‘맹아’가 있고 그게 어떤 계기를 맞아 발화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 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언젠가 운이 트일 날을 기다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까. 하지만 기다리더라도 잘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운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며 저마다 가진 자원이 다르고 출발점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률적인 기준에 사로잡혀 주변을 괴롭히고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을 피해야 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소녀들’(1892년)


오늘날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누군가는 처지가 괜찮았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았다. 처지에 따라 스타일도 달랐다. 궁핍했던 클로드 모네와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푸근한 그림을 그렸고 부잣집 아들들이었던 에드가 드가와 구스타브 카유보트는 냉담하고 세련된 그림을 그렸다. 가장 가난했던 르누아르는 가장 따뜻하고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 그 때문에 르누아르의 다소 지리멸렬해 보이는 화법을 동료 화가들조차 깎아내렸고 오늘날에도 세련된 취미를 지닌 이들은 르누아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르누아르는 본원적인 감각을 건드리면서 여전히 사랑받는다. 아웃사이더였던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서로 질시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각자의 미학을 추구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 시장이 개척되면서 명성을 얻었고 중년 이후로는 형편이 확 풀리는 행운을 누렸다.

이연식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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