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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노동운동 1세대의 쓴소리…"전태일 정신, 노조 밖 사람들과 조건없이 나눠야"

■한석호 전태일50주기행사준비위원회 실행위원장

노동계 '기승전임금인상' 투쟁 관성에 매몰

비정규직 등과 나눔·연대로 '노동분단' 해소를

한석호 전태일50주기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전태일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11월13일은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기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인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와 비교하면 노동과 경영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디지털전환 등이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확산하면서 일자리에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나타나고 있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전태일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가.

전태일 정신을 묻기 위해 12일 서울경제가 찾은 사람은 한석호 전태일50주기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 ‘노동운동 1세대’인 한 위원장은 자식이 공무원이 되기를 원한 부친의 요구에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운동권이 됐다. 지금은 실행위원장으로서 전태일50주기 행사의 기획과 집행을 총괄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995년 주 5일제 쟁취 시위,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 등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노동운동 선배로 남을 수 있었지만 2018년 민주노총을 떠났다. 지금은 자신을 ‘실패한 노동운동가’로 설명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투쟁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절된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담겨 있다. 한 위원장은 “전태일 정신은 실천·풀빵·모범업체 세 가지로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며 “그동안 실천 정신에 가려져 있었던 풀빵 정신을 불러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노동조합이라는 담을 넘어 비정규직 등 일하는 모든 사람과 내가 가진 것을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이 지금의 ‘전태일 정신’이라는 답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김정곤 사회부장 mckids@sedaily.com

-전태일 50주기 행사를 통해 시민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태일’을 다시 불러내고자 했다. 전태일 기념 동판, 가상현실(VR)을 활용한 노동미술제 등 시민이 접근하기 좋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계획한 이유는 전태일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고 산화한 사건만 알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옅어지고 있는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불러내고 싶었다.

-전태일 정신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1970년에는 노동법이 준수되지 못한다는 자각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 등 노동의 기로에 섰는데. 전태일 정신을 어떻게 재평가해야 하나.

△전태일 정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 첫째는 실천 정신이다. 전태일은 시다와 미싱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와 삼동회를 만든다. 노동청에 근로감독을 청원했지만 이뤄지지 않아 집회 과정에서 분신 항거했다. 둘째는 ‘풀빵’ 정신이다. 전태일은 시다와 미싱사를 거쳐 재단사가 됐다. 시다로 일하는 아이들이 하루 15시간이나 일하고도 도시락 사 먹을 돈이 없으니 차비를 털어서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뛰어서 집에 갔다. 마지막은 모범업체 정신이다. 전태일은 납세와 임금 지급 모두 제대로 하는 태일피복의 건설을 꿈꿨다.

한석호 전태일50주기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전태일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그동안 노동계에서는 실천 정신이 주로 드러났는데.

△진보는 전태일의 실천 정신과 분신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풀빵 정신과 모범업체 정신이 감춰져 있었다. 이제는 모두 드러내고 각자가 취사선택하면 된다.



-풀빵과 모범업체 정신을 이야기하면 노동계 내부에서 수정주의자로 비난받는데.

△일부에 의해 자본의 앞잡이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다수에 ‘투쟁’ 관성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특히 모든 투쟁이 ‘기승전임금인상’으로 매몰된다. 나는 나 자신을 ‘실패한 노동운동가’로 규정한다. 노동운동을 해왔던 것은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노동자의 평등마저도 완전히 무너졌다. ‘노동의 분단’이다. 소득격차가 자산격차로 이어지니 상위 10%와 하위 50%는 현재 상태로는 20~30년 안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필요한 문제이기도 한데. 전태일 정신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연대 대타협이 필요하다. 양대 노총은 나눔과 연대를 기초로 세워야 한다. 양대 노총 조합원의 상당수가 상위 10%의 노동자다. 노조 밖 사람들의 손을 잡기 위해 자신의 몫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사회연대를 말하면 노동계 내부의 반응이 어떤가.

△조합원은 수용하지만 노동계 지도부가 겁을 낸다. 지난해 부산 지하철노조가 통상임금 소송 승소로 받아야 할 임금으로 청년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했다. 1인당 1,000만원꼴이다. 노조 쪽에서 1,000명을 요구했지만 사측에서 100명을 제시하니 규모를 늘리라고 했다. 결국 540명의 신규 일자리를 따냈다.

노동계가 사회를 위해서 연대를 요구해야 한다. 스무 살 청년 전태일이 시다에게 풀빵을 준 것은 가진 게 많았기 때문이 아니다. 더 나아가 재단사인 전태일은 지금으로 보면 정규직이었지만 비정규직인 시다와 미싱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다.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처우 개선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한석호 전태일50주기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전태일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마지막으로 한 말씀.

△전태일 정신의 정수는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라는 유서 속 표현에 있다.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양보할 수 있지만 나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어렵다. 전태일은 자신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전태일은 정규 교육을 받은 기간이 2년에 불과했지만 한자투성이 근로기준법을 독파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성공한 기업가가 됐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를 모르는 모든 나’를 위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바라본 것이다. /정리=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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