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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덕도?…선거가 띄운 신공항, 줄줄이 경착륙[관점]

■공항의 정치학

17일 총리실 결과발표…여권, 도 넘은 가덕도 군불때기

文, '24시간 공항' 공약에 발목잡혀 검증지시 '화근'

동남권공항 필요성은 공감, 정권따라 춤추는 잣대 논란

예타면제 남발·차기 대선서 신공항 요구 분출할 듯

동남권관문공항추진 부울경범시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19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해 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YS)정부는 출범 첫해인 지난 1993년 12월 14대 대선 공약을 자체 검증하고 임기 내 실현 가능한 사업을 추렸다. 1,000여개 대선 공약 중 걸러낸 ‘장밋빛’ 공약은 부산 신공항과 영동권 국제공항, 동서고속철도 등 129개. 이들을 ‘장기 검토 과제’로 돌려 사실상 백지화했다. 하지만 지금의 양양국제공항인 영동권 국제공항은 선거로 되살아났다. YS정부는 15대 총선을 5개월 앞둔 1995년 12월 공항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임기 막판 첫 삽을 떴다. 서울~강릉을 잇는 동서고속철도를 짓겠다는 약속이 경부고속철도에 밀려 공수표가 된 마당에 강원도 민심을 또다시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양양공항은 2002년 개항 이후 승객 감소로 지금도 ‘유령 공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양양공항의 지난해 국제·국내선 이용객은 고작 5만4,233명. 여객터미널 수용인원(317만명)의 1.7%에 불과하다. 김대중(DJ)정부 때 추진한 무안국제공항 역시 사정이 다를 바 없다. 한때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려 유명세를 탔다.

이른바 ‘1987년 체제’ 이후 새로 만든 국제공항 4곳 가운데 동북아 허브공항인 인천을 제외한 청주와 양양·무안 등 3곳은 만년적자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경제적 타당성을 무시한 채 선거 바람을 타고 정치가 만든 탓이다. ‘신공항 정치’는 30여년이 흐른 현재도 진행 중이다.

정부가 2018년 8월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안 중간 보고회에서 공개한 김해 신공항 조감도. 왼쪽의 신활주로가 공항 북쪽 산을 피해 비스듬하게 짓도록 돼 있다. /사진 제공=국토교통부






김해공항 확장(김해 신공항)이 타당한지 여부를 가를 국무총리실 검증 결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여권의 부산 가덕도 띄우기가 점입가경이다. 여당은 김해 신공항의 검증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예산안에 가덕도 신공항 타당성 연구 용역비 20억원을 편법으로 반영했다. 총리실 검증 결과 김해공항 확장 불가로 판정 나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여권의 대선주자들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달 4일 부산을 방문해 “부울경 희망고문을 빨리 끝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른 잠룡인 이재명 경기지사도 지난달 “김해공항 확장은 과거 정부의 부당한 결론”이라며 가덕도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신공항 선심 공세가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문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차기 대선까지도 연결됨은 물론이다. 신공항의 정치적 휘발성이 얼마나 큰지는 제1 야당조차 호의적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5일 부산에서 가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정부가 가덕도로 결정한다면 우리도 조속히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월13일 부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의 부산시 국정감사에 앞서 부산시 공무원노조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동남권 신공항은 이 대표의 말마따나 ‘부산·울산·경남의 희망고문’이었다. 멀리는 노태우 대선후보 시절부터 공약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밀양과 가덕도를 후보지로 선정했지만 두 곳 모두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2016년 기존 공항 확장으로 결론을 냈다. 현 정부 역시 김해공항 확장 외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활주로 1본과 여객터미널 등을 오는 2026년까지 짓는다는 ‘김해 신공항 기본계획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핀 장본인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김해 신공항을 검증대에 올릴 것을 총리실에 지시했다. 김해공항 확장이 안정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셀프 검증한 부울경 광역자치단체장의 압박에 굴복한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24시간 관문공항’을 약속한 데 발목이 잡혔다고 지적한다. 김해공항은 확장해도 소음 등의 문제로 심야에 항공기 운항이 불가능하기에 공약 파기의 덫에 걸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주요 공항조차 24시간 운영하지 않는다. 런던 히스로, 파리 드골,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역시 ‘커퓨타임(curfew time·항공기 통금제)’을 실시하고 있지만 허브공항의 지위에는 흔들림이 없다.

강호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해진 국책 사업이 지방자치단체의 요구로 검증을 받아 뒤집힌다면 어떤 사업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며 “나쁜 선례를 남기면 거버넌스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2016년 6월 프랑스 전문기관의 용역 결과를 토대로 김해공항 확장을 선택할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을 맡았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착잡한 표정이 역력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김해공항을 확장해도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검증위에 충분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 경제·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016년 6월21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이날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2016년 6월21일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장마리 슈발리에 수석 엔지니어가 동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정치권의 동남권 신공항 논의가 김해 신공항은 안 된다는 프레임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국책사업 계획의 번복이 어떤 후유증을 낳을 것인지, 김해공항 활용 방안은 무엇인지, 유일한 허브공항인 인천공항과 김해 대체공항의 위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 정작 중요한 항공·공항 정책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없다. 정부가 연내 마련할 예정인 제6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2021~2025년)은 동남권 신공항 변수로 오리무중이다.

총리실 검증 결과는 엄청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총리실 안팎에서는 부산시에 손을 들어준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를 토대로 김해 신공항 백지화 쪽에 무게감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국책사업 뒤집기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고 지역 갈등과 공항 위계의 충돌 등 막대한 혼란이 불가피하다. 가능성이 낮지만 ‘이상 무’ 판정이 나면 부울경의 집단 반발과 당정 갈등이 우려된다. 대선주자들의 반발로 조기 레임덕 현상도 야기할 수 있다. 안정성을 보강하라는 어정쩡한 결론도 마찬가지다. 총리실은 17일 오후 검증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가덕도 신공항이 현실화한다면 대구통합 신공항과 경합하다 두 공항 모두 공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울경 3광역단체장이 2019년 4월24일 부산시청 대회의실에서 김해 신공항 계획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셀프 검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송철호(왼쪽부터)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부울경 3광역단체장이 김해신공항 셀프검증 결과를 발표하자 곧바로 입장문을 냈다. 국토부는 “사실관계 확인이 부족함에도 부울경 검토 의견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국민에게 혼란을 초래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설령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한다 해도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문턱부터 넘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덕도는 이미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평가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부울경이 진작부터 가덕도 신공항 예타 면제를 요구한 연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전례도 있다. 2019년 새만금 신공항이 그랬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가덕도에 새 관문공항을 짓는다면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한 ‘원 포트’ 시스템의 전면적 수정을 의미한다”며 “‘투 포트’ 시스템이 우리 실정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총리실 검증은 결과에 상관없이 차기 대선에서 신공항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군 공항 이전과 맞물려 신공항을 지어달라는 요구는 이미 분출하고 있다. 경기도는 수원 군 공항의 화성 이전과 경기 남부권 거점공항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대구·경북은 부울경의 김해공항 확장 불복을 지렛대 삼아 대구통합 신공항을 필요 이상의 대규모로 건설해달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광주공항 국내선의 무안공항 이전 작업은 지역 논리에 막혀 난항을 겪고 있다. 서남권(호남) 공항의 난맥과 지역 갈등은 가덕도 신공항이 현실화하면 맞닥뜨릴 미래일 수 있다. 총리실 검증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 될 수 있다. ‘정권에 따라 국책사업 검증 결과가 춤을 춰도 되느냐’는 지적들이 쏟아진다면 정부가 어떻게 뒷감당할지 모르겠다.

지방공항 개발 잔혹사…승객 끊겨 문닫고 '배추밭' 공항 오명도


선거를 앞두고 표를 구걸하며 내놓은 장밋빛 공항건설 공약은 막대한 혈세를 삼켰다. 14개 지방공항 가운데 김포와 김해·제주·대구 등 4개 공항을 제외한 10개 공항이 만년 적자의 늪에 빠졌다. 심지어 수요 부족에 공항을 짓다 말거나 다 지어놓고 폐쇄한 사례도 있다.

노태우정부 시절인 지난 1989년 군 비행장을 민간에 개방한 예천공항은 2004년 문을 닫고 원래의 군 공항으로 회항했다. 이 탓에 여객터미널 건설에 투입된 386억원의 혈세만 축냈다. 예천공항은 고향이 예천으로 6공화국의 실세였던 유학성 전 의원이 밀어붙여 ‘유학성 공항’으로 불렸다.

김대중정부 때 만든 울진공항은 외신에서 ‘황당뉴스’로 다룰 정도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예산 1,300억원이 투입됐으나 정작 취항할 항공사가 없어서 AFP통신이 비꼰 것이었다. 울진공항은 수차례 개항을 연기한 끝에 2010년 공항 간판을 내리고 현재 한국항공대의 비행훈련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DJ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중권씨가 영향력을 행사해 ‘김중권 공항’으로 통한다.

16년째 공사가 중단된 김제공항은 ‘배추밭 공항’으로 불린다. 김제공항은 2003년 감사원으로부터 ‘수요 예측이 과도하다’며 평가를 받아 땅만 사놓고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2005년 공사가 중단된 데 이어 2008년 공항 건설 계획이 공식 취소됐다. 하지만 10년 넘도록 적정용도를 찾지 못해 지역 주민들이 공항부지에 배추와 고구마 등 농작물을 심고 있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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