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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팝아트 거장 올든버그서 서도호까지...미술로 만나는 '신세계'

[조상인의 로비의 그림]■신세계백화점(상)

1963년부터 백화점서 '신세계화랑' 운영

젊은작가 발굴하고 예술가 숨통 틔워줘

붓터치 힘있는 김미영 '선라이트 하우스'

은은한 색감 매력적인 김혜나 '무제' 등

계단 따라 오르며 다양한 작품 감상 가능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정문 앞에 설치된 클라스 올든버그 ‘건축가의 손수건’. /사진제공=신세계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정문 앞에 설치된 미국의 팝아트 예술가 클라스 올든버그의 ‘건축가의 손수건’.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이 슈트 앞가슴 왼쪽 주머니에 꽂는 손수건은 멋이자 잘 갖춘 예의를 상징한다. 고전주의 미학과 근대 산업사회의 소재를 절묘하게 접목했던 독일 태생의 미국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1886~1969년)는 거의 항상 그런 차림이었다. 가깝게 지내며 자주 교류했던 팝아트 예술가 클라스 올든버그(91)는 과하게 멋 부리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모습의 미스 반데어로에를 존경했고 그런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서울 중구 소공로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정문 앞에 설치된 올든버그의 1999년작 ‘건축가의 손수건(Architect’s Handkerchief)’에는 그들의 인연이 담겨 있다. 이 대형 조각은 볼 때마다 신세계백화점이라는 ‘사람’의 양복 윗주머니 손수건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건물 앞면이 얼굴이라면 작품이 마침 윗가슴께 자리에 놓여 그렇고, 요란하게 장식하지 않고도 격식은 모두 갖췄기에 그러하다.

올든버그는 담배꽁초와 재떨이, 빨래집게, 숟가락, 햄버거, 톱, 다용도 칼 같은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택하는데, 돌·나무·금속 같은 단단하고 반영구적인 재료가 아닌 비닐이나 천 같은 흐물거리는 재료로 제작한 ‘부드러운 조각’ 연작과 작은 것을 집채만 하게 키워 기념비적 크기로 만드는 ‘커다란 조각’ 시리즈로 유명하다. 신세계백화점 정문에 놓인 ‘건축가의 손수건’은 작은 생활 속 물건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그 옆에 서면 마치 몸이 줄어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초현실적인 착각이 든다. 곧 당신이 들어가 만날 백화점의 일상적 물건들이 상당히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건네는 듯하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올든버그 작품 중 하나인 청계천 초입의 다슬기 모양 작품인 ‘스프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김미영 ‘선라이트 하우스(Sunlight House)’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에 설치돼 있다.


미술의 관점에서 보는 신세계는 백화점 그 이상의 공간이다. 신세계는 지난 1963년부터 신세계화랑을 운영했고 이후 신세계미술관·신세계갤러리로 이름을 바꿔가며 1970~1990년대에 보여준 활약상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궤를 같이한다.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1970년에 문을 연 현대화랑 등 당시 우리나라에 막 생겨나기 시작한 현대적 화랑·미술관과 더불어 신세계화랑은 작가를 발굴하고 예술가들의 숨통을 틔워주며 애호가들의 갈증을 해소해준 곳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추상미술을 연마하던 김환기의 국내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숱한 근대 거장들의 전시가 열렸고, 월북작가로 잊힌 이쾌대의 발굴된 유작들을 전시해 화가를 다시 살리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는 미술 애호가였던 호암 이병철 회장의 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혜안과 후원이 크게 작용했다.

김혜나 ‘무제’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에 설치돼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은 계단을 따라 오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때는 힘 있는 붓터치 속에 경쾌한 발걸음이 느껴지는 화가 김미영의 ‘선라이트 하우스(Sunlight House)’를, 2층과 3층 사이에서는 은은한 색감 속에서 풍기는 자연의 향기가 내면까지 스미는 김혜나의 ‘무제’를 만날 수 있다. 한때는 이곳에서 김환기·유영국 등의 작품을 만날 수도 있었지만 젊은 국내 작가를 전면배치했다는 점에서 유서 깊은 신세계갤러리의 자신감과 작가 발굴·지원을 위한 의지가 엿보인다.

4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주하게 되는 세로 244㎝의 초대형 그림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미국과 유럽 등을 누비며 활약해온 추상미술의 거장 숀 스컬리(75)의 ‘거울’이다. 엄격하게 색면을 분할하면서도 인간의 붓질임이 역력한 작업을 하는 그를 두고 평론가들은 “추상을 가장한 휴머니스트 거장”이라고 말한다. 캔버스 위에 캔버스가 덧붙어 돌출돼 있기에 그림 자체가 촉감과 무게, 형태와 그림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추상미술의 거장 숀 스컬리의 ‘거울’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3층에서 4층으로 향하는 계단부 중앙에 설치돼 있다.


5층으로 향하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오로라가 내려온 듯 영롱한 무지갯빛이 계단부 중앙을 원형으로 감싸고 있다. 샹들리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엿한 작품이다. 백남준·이우환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현대미술가 서도호(58)의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다. 벽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손가락만큼 작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목말 태우는 방식으로 줄줄이 이어져 천장에까지 닿아 있다. 누구도 혼자 힘으로 저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없음을 깨우치게 하니, 제목을 ‘인과응보’라 번역해 불러도 될 작품이다. 투명한 합성수지로 만든 군상 1만8,000여개로 이뤄진 작품으로 2007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리모델링 후 새롭게 선보일 때 함께 공개됐다. 서도호는 무수한 인간군상을 소재로 획일화·몰개성의 시대를 비판하는 동시에 인연과 업보에 대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4층과 5층 계단 연결부를 둥글게 에워싸며 설치된 서도호의 ‘원인과 결과’.


서도호의 설치작품 ‘원인과 결과’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의 5층으로 향하는 계단부에 샹들리에 형태로 설치돼 있다.


서도호 ‘원인과 결과’.


서도호의 설치작품 ‘원인과 결과’의 세부 모습.


솔 르윗의 ‘드로잉 #592’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 6층 에스컬레이터 끝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본관 건물의 꼭대기 층인 6층에 다다르면 오른쪽 벽면이 노란 금빛으로 화사하게 다가온다. 개념미술의 거장 솔 르윗(1928~2007년)의 작품이다. 르윗은 미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개념과 실천을 달리 보고 접근했는데, 작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작품을 시도했다. 1968년 이후 시작한 ‘벽면 드로잉’ 연작은 르윗이 내놓은 ‘작업 지시문’에 기초해 작가의 조수나 타인이 작업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이곳에 설치된 1989년작 ‘드로잉 #592’도 그중 하나다. ‘1개의 꼭짓점을 공유하는 5개의 삼각형이 모두 다른 색깔로 칠해져 있다’는 작업지시문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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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친절한 금자씨는 예쁜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대미술은 날 세운 풍자와 노골적인 패러디가 난무합니다. 위작 논란도 있습니다. 블랙리스트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착한미술을 찾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미술관, 박물관으로 쏘다니며 팔자 좋은 기자. 미술, 문화재 전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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