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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560년 시공간 기억담은 '나무 섬'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경남 칠곡 신포리 느티나무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퇴계·남명 태어날 때쯤 뿌리박고

마을공동체 구심 역할 해왔을 그

긴가지 땅으로 뻗으며 넓어진 품

마치 섬처럼 보이는 특이한 자태

천연기념물로 지정은 못 됐지만

끝까지 지켜줘야할 소중한 자산

경남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에 자리 잡은 560년 수령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주목(宇宙木)’이다. 우주의 ‘우’는 상하·전후·좌우 6합(合)의 공간을, ‘주’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의미한다. 중국 춘추시대 관중(管仲)의 ‘관자(管子)’에 따르면 우주를 ‘주합(宙合)’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나무를 우주목으로 생각한 것은 뿌리를 땅에 내리고 줄기를 하늘 높이 뻗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나이가 많은 노거수 느티나무가 아주 많다. 노거수 느티나무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마을 어귀에는 노거수 느티나무가 아주 많다. 경남 의령군 칠곡면 신포리의 느티나무도 우주목이지만 다른 느티나무 우주목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신포리 느티나무는 지난 1982년 의령군에서 ‘군나무’로 지정한 보호수다. 지정 당시 나이는 520살, 높이는 25m다. 신포리의 느티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 느티나무의 나이와 비교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군나무로 남아 있는 것은 국가 문화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거수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더라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 특히 신포리의 느티나무는 아주 독특한 모습이라서 무한한 상상을 자극한다.

일본의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1862~1957)가 붙인 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느티나무의 학명(Zelkova serrata (Thunb.) Makino)에는 톱니 모양의 잎을 소개했다. 1527년 최세진(1473~1542)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느티나무를 푸른 느릅나무인 ‘청유수(靑楡樹)’ 혹은 잎이 누른 느릅나무인 ‘황유수(黃楡樹)’라 불렀다. 느티나무를 느릅나무에 비유한 것은 이 나무가 느릅나뭇과이기에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정초(1104~1162)의 ‘통지(通志)’에 따르면 느티나무를 느릅나무류로 본 것은 이 나무의 열매가 느릅나무의 열매, 즉 ‘유전(楡錢)’을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대부분 느티나무를 알지만 느티나무의 열매 혹은 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괴(槐)’지만 중국에서 ‘괴’는 콩과 갈잎큰키나무 회화나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의 회화나무를 느티나무라 부른 것은 느낌이 닮아서이기도 하고 학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대신 느티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느티나무를 의미하는 한자는 괴 외에 ‘거’ ‘거’ ‘귀’ ‘규’ 등이 있다.

길고 넓게 뻗은 신포리 느티나무의 가지들. 가지의 폭이 넓다 보니 마치 하나의 섬을 보는 것 같다.




신포리 느티나무의 특징은 국내 천연기념물 느티나무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높지만 줄기만큼이나 긴 가지를 뻗었다는 점이다. 어떤 가지는 무척 길어서 위로 뻗지 못하고 땅에 닿아 있다. 그래서 신포리 느티나무는 그 어떤 천연기념물 느티나무보다 품이 넓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섬처럼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신포리 느티나무를 ‘느티나무 섬’이라 부르고 싶다. 필자는 아직 신포리 느티나무처럼 한 그루 나무가 섬을 만드는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신포리 느티나무가 하나의 섬처럼 넓은 삶의 공간을 만든 것은 수직적인 삶만큼 수평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신포리 느티나무의 나이가 1982년 기준 520살이라면 조선 시대 성리학자를 대표하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태어날 때부터 현재의 땅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포리 느티나무가 사는 동안 의령군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아주 많았다. 나무는 한번 똬리를 틀면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으니,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신포리 느티나무의 시간은 ‘연륜연대학(年輪年代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느티나무의 미래 삶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신포리 느티나무가 지금까지 우리 곁에 살고 있는 것은 인간이 느티나무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만약 의령군민들이 신포리 느티나무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지 않았다면 이곳의 느티나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거수 나무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나무들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한 덕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류는 끊임없이 나무들의 공간과 시간을 빼앗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바로 인간이 나무들의 공간과 시간을 빼앗은 업보다. 앞으로 신포리 느티나무의 삶은 의령군민들이 나무의 공간과 시간을 얼마나 존중하느냐에 달렸다. 특히 나무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밤은 나무의 시간이다. 나무가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정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밤낮 가리지 않고 나무의 시간을 탈취한다. 심지어 야간 산행과 둘레길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산길을 내 나무들의 공간과 시간을 폭력적으로 훔친다.

나무를 생명체로 존중하는 ‘수목문화’는 선진국의 핵심 지표다. 신포리 느티나무의 건강한 삶은 의령군민의 의식 수준이자 건강의 척도다. 신포리 느티나무의 건강한 삶에서 중요한 부분은 주변 환경이다. 그래서 느티나무 옆의 벼 논은 아주 소중하다. 벼 논은 느티나무에게 적당한 물을 공급할 뿐 아니라 느티나무가 자신의 자존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도 아주 유리하기 때문이다. 느티나무가 한국인의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듯이 벼는 1만 년 전부터 한국인의 밥 문화를 만든 귀한 존재다. 우주목 느티나무와 벼 논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이 코로나19를 가장 잘 대처하고 있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신포리 느티나무와 주변 벼 논의 생태 여부는 곧 의령군민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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