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장 자격으로 지난해 미국 대선 결과를 인증하는 상·하원 합동 회의를 주재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6일 오후 8시(현지 시각)가 넘어 “안전이 확보됐다”며 회의 재개를 선언했다. 앞서 친트럼프 시위대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최종 당선 승인 작업을 방해하기 위해 난입하자 회의를 중단했고 오후 5시 30분쯤에야 이들을 해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회의에서는 공화당이 예고한 대로 애리조나주의 선거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적지 않은 공화당 의원들이 입장을 바꿨음에도 애리조나주 결과를 문제 삼는 이들이 121명이나 나왔다. 거부한 이들(303명)이 압도적이지만 지난해 11월 대선 논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의회가 바이든 당선인의 당선을 승인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질서 정연한 권력 이양을 약속하면서도 “선거 결과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 이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우편투표 허용 논란을 거치며 미국 사회는 크게 분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백인 우월주의자의 시위를 두둔했고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는 도둑맞았다고 주장해왔다. 대선을 앞두고는 극우 무장 단체가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살해하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날 시위대 사이에도 프라우드 보이스 같은 극우 단체와 백인 우월주의, 신나치주의 소속 인사들이 끼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의회 점거를 지지하는 게시물이 ‘#내전(#civilwar)’이라는 문구를 달고 이미 우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팔러에 퍼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은 지난달 말 미국 성인 1,115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의 39%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 그의 낙선을 바라는 배후 세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믿는다고 답했다. 또 여전히 31%는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흑인 시위가 폭력적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47%로 절반에 육박했다.
이중 배후 세력에 의한 선거 방해는 음모 단체 ‘큐어넌(QAnon)’이 퍼뜨리는 것이다. 큐어넌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 등이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한다. 조너선 그린블랫 미 인권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 회장은 “시위대의 움직임은 음모론 집단 큐어넌의 입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며 “큐어넌은 수년간 이런 광란을 부추겨왔다”고 설명했다.
이는 음모론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주장을 믿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7,422만 표를 받았다. 지난 2016년 선거 때보다 1,000만 표가량 많다. 여론조사와 달리 플로리다에서 선전하면서 승리를 따내기도 했다. 최대 수천 만 명의 유권자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4년 동안의 독성 있는 정치와 의도적인 허위 정보가 의사당 점거를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당선인이 취임한 후 국민 통합이 중요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지아주 상원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서 민주당이 백악관과 하원·상원을 모두 차지하는 ‘블루웨이브’를 달성했지만 이번 의회 폭력 사태로 뿌리 깊은 갈등이 드러난 만큼 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바이든 당선인도 통합을 주요 과제로 제시한 상태지만 민주당과 공화당, 공화당과 트럼프 지지자 사이의 골이 크다는 얘기가 많다. 워싱턴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불복과 공화당의 동조 혹은 묵인 움직임을 보면서 공화당에 의해 내전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미국이 내란과 테러리즘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갈등이 계속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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