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해외칼럼] 美 공화당이 길고양이 된 사연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반민주적 왜곡 세력이 공화당 장악

악의적 종족주의만 골몰한지 오래

사회로부터 유리된 채 버려진 신세

美민주체제에 적대적 과격집단 변질

폴 크루그먼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늘 있었다. 이들은 규범을 무시한다. 규범은 힘없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힘없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공화당은 미국 현대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철부지 같은 존재다. 미국의 양대 정당 가운데 한 곳이 민주주의와 진실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믿지 않던 유권자들조차 선거 이후에 전개된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적잖은 심경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앞세워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드는 트럼프의 시도에 과반수에 달하는 공화당 하원의원들과 상당수 상원의원이 가세한 것은 공화당이 저지른 만행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화당 후보로 조지아 상원 결선 투표에 나섰던 데이비드 퍼듀와 켈리 레플러도 정책 대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이들은 아무 근거 없이 민주당 후보인 라파엘 워녹과 존 오소프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거나 아동 학대에 연루돼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공화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시발점은 트럼프가 아니다. 공화당의 변질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 2003년 필자는 공화당이 선거를 요식행위로 전락시키는 단일 정당 국가를 추구하는 등 미국의 민주 체제에 적대적인 과격 집단으로 변하고 있다는 칼럼을 쓴 바 있다. 토머스 만과 노먼 온스타인 역시 2012년 공화당이 “사실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멀리하고 “정치적 반대의 합법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선거 부정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근거로 합법적인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공화당 의원들에게 놀랐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당을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엘리트들에 대한 대중주의자들의 반발 때문일까. 급변하는 경제로 인해 고학력자들이 밀집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이 고속 성장하는 반면 도시 밖 지역이 침체하는 현상에 불만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석권한 지역은 전체 카운티의 46%였지만 경제 생산력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29%에 그친다. 이와 함께 점차 늘어나는 인종 다양성에 백인들이 불만을 표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두 달은 민초들의 분노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지도자에 의해 조직화됐음을 보여준 객관적 사례다.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턱없는 주장을 그대로 믿는 실질적인 이유는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 공화당 정치인들은 선거 결과를 둘러싼 광범위한 회의론을 선거 불복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거짓 주장에 기름을 끼얹는 정치인들 역시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들이라는 사실에 경악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의회의 선거인단 인증에 이의를 제기했던 조시 하울리 의원은 스탠퍼드대와 예일대 법대를 졸업했다. 공화당의 의회 내 선거 결과 불복 캠페인을 이끌었던 테드 크루즈 의원 역시 명문대인 프린스턴과 하버드 출신이다.

하울리와 크루즈는 미국의 현 시스템으로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존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 안간힘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이 단지 공화당 지지자의 비위를 맞추려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부분 당 엘리트들로부터 신호를 받아 행동한다. 문제는 공화당 엘리트들의 광기가 단순한 시늉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화당은 사회로부터 유리된 채 버려진 고양이 같은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지금의 공화당을 범죄 조직이나 개인숭배 집단에 비유한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 비친 공화당은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에 나오는 길 잃은 소년들과 흡사하다. 그들은 외부 세계의 뉴스를 듣지 못한다. 불편한 사실을 감추는 당파적 뉴스 제공자로부터 정보를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점차 눈길을 안으로 돌려 자신이 속한 종족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기괴한 노력에 몰두하게 된다. 당은 여전히 부유층에 감세 혜택을 제공하고 저소득자들에게 벌을 준다는 확고한 의지를 고수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이슈를 다루지는 않는다. 단지 내집단(in group)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국외자들을 벌주는 데 골몰한다.

정말 큰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이 이처럼 악의적인 종족주의를 과연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반민주적인 사실 왜곡 세력이 공화당을 계속 장악한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입각한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언젠가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