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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박태준 생활산업부장]

자영업 무너지고 일자리 사라질 때

정치는 갈등·분열·침묵만 되풀이

'나만 옳다'라는 맹목적 오만 벗고

미래 위한 성장 전략 함께 고민을

박태준 생활산업부장




지난해 1월 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었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CES 현장에서 성큼 다가온 미래를 한발 먼저 만나며 설렜던 기억이 선명하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5세대 이동통신(5G), 클라우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초(超)연결의 세상은 강렬했다. 자동차, 로봇, 드론과 공장까지 사람과 교감하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14일 폐막한 ‘CES 2021’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기업까지, 미래 산업의 주도권 경쟁 속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자신의 기술을 뽐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열광해야 할 20여만명의 관객은 라스베이거스에 없었다.

지난해 CES 출장에서 돌아오고 일주일 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오면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유보됐다. 그리고 봄을 맞으며 전 인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20년은 마스크와 재택, 거리두기와 집합금지로 철저히 ‘단절’된 시간이었고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숨막히는 순간순간에 자영업자들은 무너져 내렸으며, 직장인은 일자리를 잃어갔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통지서를 받아 든 취준생은 출근 하지 못했다.

그 지난한 시간에 우리에게 정치는 없었다. 갈등과 분열, 침묵만이 있었을 뿐이다. 2019년을 관통했던 ‘조국 사태’로 지친 국민들이 코로나와 함께 마주해야 했던 것은 ‘秋-尹 갈등’이었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에 동의했던 국민 10명중 6명까지도 진저리를 치게 한 분열의 시간에도 대통령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통합은 나의 역할이 아니다’라는 듯한 그의 침묵 속에 더욱 견고해진 진영의 위세는 하늘을 찌른다.

‘나와 다른 견해를 펴는 자들을 무조건 적으로 모는’ 이상한 속성 속에 나온 이 정권의 정책들은 검찰 개혁이던 부동산 안정이던 양극화 해소이던 하나같이 헛발질이었다.



이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최근 펴낸 <싸가지 없는 정치>에서 문정권의 오만과 독선, 무능의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며 “무능의 본질은 오만, 자신들이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맹목적 오만”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12일 신년 기자회견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주거문제에 송구하다”며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겠다”고 선언한 것은 집권 3년6개월 동안 24번의 부동산정책이 나오고, 서울 아파트 가격이 58%(경실련 2020년 11월11일 발표)나 오른 후였다.

35년만이었다는 한파 속에 광화문을 지나며 2016년 겨울의 촛불이 떠올랐다. 하지만 ‘살맛 나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의 희망으로 피어올랐던 그 촛불이 꺼진지 이미 오래다. 그리고 광화문 거리에는 지금, 마스크를 눌러쓴 소시민들의 절망스러운 걸음만 분주하다.

강교수는 책의 마지막을 “대화와 타협을 하는 ‘싸가지 있는 정치’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정치를 보고 싶다”는 간곡한 제언으로 맺는다.

가능할까. 나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4월 보궐선거에 이어 연말 즈음 대선국면에 이를 때까지 올 한해도 정권연장을 위한 정치공학만이 백신도 없는 감염병처럼 온 나라를 덮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민생 정책과 달라진 시대를 준비할 성장 전략을 기대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우울한 얘기다.

‘미스터 션사인’에서 1900년도의 고애신은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 이었다”고 독백한다. 드라마 대사 한줄에 이토록 마음이 시린 것은 시대는 다르나 불안함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촛불의 어제는 이미 멀고, 갈갈이 찢어진 오늘은 낯설며, 아무런 대비 없이 맞이할 내일은 두렵다.

/박태준 기자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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