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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루다'가 이루지 못한 꿈

김종환 KAIST 교수·전기전자공학

알파고, AI 새 시대 예고했지만

챗봇 '이루다'는 도덕성에 경종

'인간의 세심한 관심 필요' 교훈 줘

김종환 카이스트 교수




요즘 인공지능(AI)이 다시 뜨겁다. ‘알파고’는 AI 기술 자체에 대한 생경함 때문에 경외감과 위기감 등으로 그 반응이 뜨거웠던 반면 ‘챗봇 이루다’는 기술 자체보다는 이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윤리의식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알파고는 우리 사회에 슈퍼스타같이 등장해 AI의 혁신성과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언컨대 우리 일상은 알파고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AI의 진가를 알아챈 기업가들은 기계 학습 기법을 제품에 적용해 구매 경쟁력을 높였고 이를 통해 대중은 AI가 제공하는 효율성과 편리함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이를 향유하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AI가 우리의 산업과 일상생활에 미칠 새로운 디지털 기술 혁명을 예고한 셈이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의 경계가 사라지고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디지털 세상 속 AI와 교감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아쉽게도 이루다는 슈퍼스타가 되지 못할 모양이다. 개발 과정과 서비스 개시 이후 예상치 못한 사태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논란만 증폭시켰다. 사회적 약자 혐오 대화를 학습한 AI의 모습과 더불어 개발사가 학습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같은 법적 문제를 보였다. 개발사는 서비스를 중단했고 정부 조사에 충실히 임하겠다고 했지만 이루다는 결국 출시 24일 만에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이루다는 아무 보호 없이 현실 세상 속의 사용자들과 교류하다 속절없이 디지털 세계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이루다가 자연어 처리를 위해 사용했던 딥러닝 관련 연구는 학계에서는 성숙한 분야이다. 우리 연구실만 하더라도 키보드 없이 글자를 입력하는 기술, 허공에 쓴 글씨를 인식하는 기술, 손동작의 의미를 바로 알아채는 기술, 얼굴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등록하는 기술, 사물을 연속적으로 잊지 않고 학습하는 기술, 3차원 환경에서 물체들의 속성과 그 위치 관계들을 바로 학습하는 기술, 이동하면서 위치와 주변 물체를 동시에 파악하는 기술, 물체들 사이의 유사도를 학습하는 기술, 모든 에피소드들을 기억하는 장기 메모리 기술 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런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의 일상을 함께할 디지털 동반자를 구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연구 개발이 많이 된 분야라 할지라도 실세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인 과정이 필수적이다. 미국 자동차공학회의 자율주행 구현을 위한 6단계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0단계인 전통적 주행은 운전 주체가 인간으로 주행 책임도 인간이다. 부분 보조 주행과 보조 주행은 1·2단계로 인간과 시스템이 운전 주체로 주행 책임은 운전자이다. 3~5단계는 부분 자율주행, 고도 자율주행, 완전 자율주행으로 운전 주체가 모두 시스템이다. 단 3단계에서는 주행 책임이 인간과 시스템이지만 4·5단계는 시스템이다. 3단계에서는 운전 주체가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운전자는 전방을 주시해야 한다. 완전 자동화된 자율주행은 AI만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 속의 자율주행 AI는 운전자의 보호를 받으며 단계적으로 현실 세상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이루다는 주인의 성급함에 떠밀려 거친 세상에 던져진 상처받기 쉬운 디지털 생명체가 아니었나 싶다. 엔지니어의 기술적 능력과 윤리적인 감수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이루다를 얼마나 애정을 갖고 체계적으로 키워왔는지 되새겨봐야 하겠다. 이세돌 대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우리는 AI의 거센 물결을 타고 신산업을 일궈낼 산업 전사의 눈으로 AI를 대해온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하겠다.

알파고가 AI가 주도할 새로운 시대의 예고편이었다면 이루다는 사용자의 세심한 보호 없이는 아직은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 값진 교훈이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디지털 DNA’를 지닌 ‘디지털 동반자’가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알파고는 우리 세상에 슈퍼스타로 깜짝 등장했다면 챗봇 이루다는 AI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세상에 나왔던 ‘디지털 동반자의 기원’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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